오래 전 즐겨 하던 다마고치라는 게임이 있다.
다마고치가 열풍일 즈음 첫째 아이가 뱃속에 있었는데, 태교보다 이것에 빠져 하루에 대여섯 시간은 가지고 놀았다.
태교를 해도 못 할 판에 종일 잠만 자고 나와 놀아주지 않는 다마고치에게 서운했고, 깜박 잊고 밥을 주지 않아 굶어 죽은 다마고치를 보면서 통곡했던 기억도 있다.
다마고치는 주인의 사랑과 관심을 준 만큼 자라주는 사이버세상의 또 다른 내 자식이었음이 분명했다.
다마고치를 만나다
그를 만나게 된 것은 강의를 통해서였다.
그 기수 반장이었는데, 첫 느낌은 어리버리해 속으로 '반장은 제대로나 할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수업을 마치고 뒤풀이하러 가는 날이면 조용히 다가와 뒤풀이 장소를 조용히 전달했고, 나는 그를 따라 뒤풀이 장소로 걸었다. 그 몇 분 안 되는 동안 그도 나도 땅만 보고 걸었다.
그게 끝이었다.
별다른 기억에 남을만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거니와 늘 비슷한 모습의 풍경들이 지나가는 시간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걱정했던 것 보다 덜 어리버버했던 기억, 생각보다 동기들을 챙기려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강의를 마치고 한 두 달이 지났을까?
그 기수 동기생 수십명이 나를 서울의 어느 곳으로 초대했다.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제법이었다. 음식을 준비하고, 가벼운 파티와 게임, 미니특강으로 이루어진 행사. 그리고 돌아가면서 자기 생각들을 전달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간들. 사이사이 이 남자는 멋진 멘트를 통해 행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재주가 좋았다.
잠자는 다마고치를 깨워라
어느 날 나는 그에게 괜찮은 경매 물건을 추천해 주었다. 동기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 이 정도의 선물은 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는 받지 않았다. 현장조사와 물건분석은 마쳤으나 너무 공으로 받는 것 같아 염치없다고 입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고.
이후에도 그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패찰만 반복하며 공부를 위한 공부를 계속하고 다니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사려던 빌라를 추천했고 큰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 한번 공부삼아 해보라고 했다. 그는 많은 고민을 한 후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큰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전세를 끼고 중·장기 투자로 해볼만한 물건이어서 급할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물건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곳이어서 나는 그에게 계약금을 크게 넣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에 지진이…
어렵게 계약금 1천만 원을 넣고 며칠 후 잔금일에 그는 반차를 내고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기 넘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계약 안 한대요. 어떻게 해요?"
그랬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나 동네에 돌고 있는 재개발·재건축 소식을 매도자가 이제야 접했던 것이다. 알고 나니 입장을 바꿔 계약을 안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계약금 1천만 원만 쓰윽~ 내민다는데… 어떻게 하긴. 배액배상 받아야지.
그렇게 그는 계약 불발이 되었지만, 일주일 만에 1천만원을 벌었다. 재테크를 배우고 처음 얻은 수익이었다.
얼마 후, 그는 작은 선물을 가지고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달뜬 모습으로 재테크에 대해 뭔가 알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이 일 이후 그는 더 적극적이 되었고, 추천하는 물건에 대해 여전히 의심은 했으나 극구 사양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배운 것을 토대로 현장에 가서 조사하고 매입하는 형태로 수천만원의 시세차익을 내기도 했다.
다마고치를 세상 밖으로
그는 그런대로 괜찮은 회사에 다닌다. 경력도 10년은 넘으니 안정성도 있을 것이고 급여도 제법 되리라고 추측된다.
얼마인지는 안 물어보았지만 언젠가 밥을 먹으면서 그런 소리를 했다. 연봉 동결된 지 3년이 넘었다고. 연봉 올리는 것 기다렸다가 지쳐서 재테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바로 내가 한소리 했다.
"왜 월급을 자꾸 회사에다 올려 달래? 그냥 내가 벌면 되지!"
그렇게 다마고치 키우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내가 그들처럼 걸어 봤다. 그 삶은 전부가 아니다'라고 일깨워주기 위해 그를 다마고치로 키워보기로 했다.
그는 과감하게 집을 전세주고, 자신은 월세로 살면서 종자돈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며 밤낮으로 입지를 조사해 내게 보내면 입지분석하고 컨펌 해주는 형태로 한참을 보냈다. 새벽에도 궁금하다 싶으면 한시간을 넘게 달려가 남자와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공들여 찾아낸 곳을 계약할 때도, 공사를 할 때도 그가 없는 동안에는 내가 대신 있었다.
다마고치를 세상 밖으로2
몇 명의 다마고치가 더 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조금만 도와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게임 속 다마고치처럼 그들은 알에서 나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처음엔 이것까지만, 요것까지만 하다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가르치고 있다.
다마고치의 시간, 짧게는 1년에서 2년.
그들은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다. 매일 눈 뜨는 아침이 설레고 기대가 된단다.
어쩌면 나는 그들의 말처럼 그들의 삶을 만들고 개척하면서 힘들지만 짜릿함도 있음을 알게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제자들에게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끌고 가는 주도적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늘 푼돈에 목메고 회사에 눈치 보며 미친 듯이 걸어왔지만, 보상으로는 암 진단이라는 것을 준 회사조차 당당히 놓지 못하는 나였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도록, 나의 과거 같은 다마고치들을 돕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부디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아서 건강하고 든든한 다마고치가 되어주길….
부동산 경매 스테디셀러 '싱글맘 부동산 경매로 홀로서기' 저자
이선미(쿵쿵나리)님의 칼럼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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