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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재테크 Dec 18. 2024

곧 사라질 나의 제주 아파트 이야기

재건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기대감 또는 서운함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가 재건축될 때 일부 주민들은 '기억 여행'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곧 철거할 아파트단지를 함께 돌아보고 저마다의 추억을 나누며 정식으로 작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다. 


당시 아파트에는 내가 보기에도 멋지게 자란 나무들이 많았다. 이를 살려 '상징'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사람들에게는 '공사기간 늦추는 행동'으로 보였겠지만…



제주특별자치도 구남로43 이도주공아파트


이도주공아파트는 수년 전 내가 제주에 살았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이다. 언제나 같은 모습, 같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던 그곳이 이번 방문에 흠칫 놀랄 만큼 바뀌어 있었다. 


낮에도 서너 대 주차공간만 있던 자리엔 서너 대만 주차되어 있었다. 

인사성 좋던 꼬마가 살던 아랫집엔 관리비 미납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을 찾았더니 텅 비어있었다. 


지난번 제주를 찾았을 때 사장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찾아왔는데 내가 없거든 집이랑 작별인사 하세요."



2010년대 중반, 세 번이나 육지와 섬을 오간 끝에 겨우 이도주공아파트 1층을 전세로 얻었다. 


제주는 보통 연세(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지불하는 방식)를 선호하기에 전셋집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전세가격은 7000만 원이었는데 부동산에서는 2억 2천만 원에 매입하기를 권했다. 나는 '육지에서 왔다고 호구로 보나' 하고 생각했다.


첫 집은 남향이었으나 1층이라 앞동과 큰 나무에 막혀 볕이 들지 않았다. 음습했고 외로웠다. 


앞동 두 번째 집은 남향에 4층이라 창문만 열면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따스했으나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번째 전셋집(좌)과 두번째 전셋집(우)


재건축 절차에 들어가면서 전세가는 계속 낮아졌다. 집이 나가지 않아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이 집은 한 달에 한번 청소하고 관리비 내러 '일부러' 찾아야 하는 별장이 되었다. 


결국 나는 제주에 정착하는데 실패했다. 


그새 집값은 3배나 올랐다. 부동산 말을 듣고 사뒀으면 피땀흘려 10년은 모아야 할 돈을 앉아서 벌었을 것이다. 


그 이후 부동산을 찾을 때도,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을 찾을 때도 웃다가 집 이야기가 나오면 한번씩 굳어지고는 했다. 바보라고…


덕분에 나는 이도주공아파트가 빨리 철거되길 바라는 사람이 아닌, 조금이라도 더 그대로였으면 하는 편에 섰다. 


살구색 사이 회색, 제 살색을 드러낸 외벽을 보면서

베란다를 다 가린 바람에 일주일에 한번 빨래방에 가게 만든 나무를 보면서

오르내릴 때마다 3층부터는 어질어질하던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눈이 소복이 내린, 비바람이 몰아치던, 햇살에 타들어갈 것 같던 이곳에서의 사계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싫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정말 작별해야 할 때가 왔구나. 


거주당시 찍은 벚꽃(위)과 최근(아래) 모습


수익은 추억을 먹고 자란다.


뉴스에서 떠드는 반포동, 개포동, 대치동, 도곡동, 한남동은 그곳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싼지, 앞으로 돈이 될 것인지로만 보일 수밖에 없다. 


대치동 구마을의 느티나무, 개포주공1단지의 메타세쿼이아나무, 노량진 학원과 컵밥집, 반포동 토끼굴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곳은 '끝까지 남아있었으면 하는 옛 일기장'과 같다. 언제든 꺼내보고 추억할 수 있는.


어쩌면 그 마음들 덕분에 동네는 오래오래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지 않았을까. 


그리고 동네가 천지개벽할 때, 추억을 수익으로 보상했을 것이다. 


이도주공은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누가 봐도 구제주에서 가장 입지가 좋은 신축단지로 탈바꿈한다. 


현재 이도주공 2단지 모습(좌)과 재건축 조감도(우)


7억 5000만 원까지 올랐던 아파트는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이제 4억 원 아래에서 매수협상을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제주 지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한 채 사둘까'라고 물었다.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이미 수익이 추억을 다 먹어버렸어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머무는 곳, 그들이 끝까지 지키고 싶은 곳을 찾으면 큰 수익을 얻는 투자를 할 수 있다.

반포동과 개포동, 그리고 곧 사라질 나의 제주 집처럼. 






위 글은 재테크·창업 커뮤니티 '행복재테크' 행크알리미 님의 글을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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