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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프면 못 놀아요

by MJ


놀기로 결심했을 때, 나를 가로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빼고) 하지만 그 생각은 나의 체력 연대기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허약 체질이었던 나는 감기, 배앓이 등 각종 질환을 달고 살았다. 이후로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사회인이 될 때까지는 자주 피곤하기는 했지만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하지만 혼자 살게 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독감이 여러 종류인 줄도 몰랐던 나에게 독감을 비롯 장염, 위장병 등 질환 등이 줄줄이 사탕처럼 손을 잡고 내 앞에 등장했다. 아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저 일시적인 피로함인 줄만 알았던 증상이 정확한 병명으로 판명될 때, 생활의 우선순위는 바뀐다. 오로지 이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당연히 다른 것들은 뒤로 밀려나게 된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몇 년 전부터도 나는 꾸준히, 매해 겨울에 독감에 걸렸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신년 모임, 연말 여행 등 행사는 당연히 빠지기 일쑤였다. 전기장판을 켠 침대에서 무거운 이불을 덮고 누워 마른기침을 하고 있노라면 남들은 놀러 다니는데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여행 가서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응급실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숙소에서 몸져누워있었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렇다. 아프면 못 논다. 코로나 3년을 지나며 놀아야 할 때 놀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아직 조금이라도 젊을 때 몸이 부서 저라 놀아보자 다짐했더랬다.


시작은 좋았다. 오랜만에 콧구멍에 바깥바람을 쐬어주니 도파민이 분출되었는지 놀아도 피곤한 걸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리해서 주말 이틀을 모두 약속을 잡거나, 집 밖에 오래 돌아다니거나, 평일 약속을 무리해서 다녀오면 그만 맥없이 골골대고 마는 것이었다. 나이가 드니 한 번 아프면 빨리 낫지를 않는다. 당연히 노는 스케줄은 모두 취소, 취소, 취소. 회복에 힘쓰다 보면 어느새 좋은 계절은 저만치 뒤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길 여러 차례.. 아파서 못 노는 것은 퍽 서러웠더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프기 전에는 모두 전조 증상이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춥거나, 약간의 근육통과 함께 몸살기가 있거나, 목이 붓거나, 온몸에 힘이 없거나. 그냥 지나가겠지 했던 가벼운 증상들이 독감이 되거나, 몸살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전조 증상이 나타날 때 미리 대비를 한다. 목이 붓는 것 같으면 배도라지 즙을 들이붓거나, 으슬으슬할 땐 한 겹 더 입고 목도리 두르기, 몸살기가 있으면 따뜻하게 잠을 푹 자기 등. 시간이 날 뒤쫓아 바싹 따라오는데 이 좋은 계절을 아프다고 누리지 못하면 억울하지 않은가.


올 겨울 목표인 감기 걸리지 않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며 옷장 문을 열어 조금 더 두꺼운 외투를 꺼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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