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2달 살기

걸으며 사람을 배우다.

by 정미선

제주 2달 살기를 시작했습니다. 오직 올레 27길 완주를 목표로 시작한 2달 살기를 안전하고, 건강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주는 걷기의 천국인 것 같습니다. 올레길뿐만 아니라 바닷가도 있고 곶자왈도 있고 걸을 수 있는 곳이 사방에 널려있는 느낌입니다. 도시에서는 만 보를 걷기 위해서는 큰 결심을 하고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잠깐 산책하고 올까 하고 나서면 만 보를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으니 걷기의 천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배우 하정우는 자신의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걷기 위해 제주도나 하와이를 간다고 했는데 저는 걷기 위해 제주를 왔습니다.


올레길은 한 코스가 대략 30,000보 이상으로 5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첫 코스로 올레 9코스를 걷고 올레길에 반했습니다. 완주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집니다. 그동안 제주가 좋다며 다녔던 시간은 그냥 겉만 보고 스치는 시간이지 않았나 생각하게 했습니다. 숲속 깊이 들어간 제주는 얌전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혼자서 올레길을 어떻게 완주할까 걱정도 많이 되고, 두렵기도 했는데 막상 제주에 들어와 보니 혼자 온 사람, 특히 혼자 온 여자를 위한 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져 있습니다. 올리패스 앱을 이용하면 한 달 동안 자원봉사자가 안내하는 코스가 안내되어 있습니다. 하루 평균 3~4코스가 안내되니 마음에 드는 코스를 신청하고 코스 시작점으로 아침 9시 30분까지 가면 자원봉사자(이하 자봉)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봉님을 따라 걷기만 하면 코스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아침 9시 30분에 시작하면 대략 3시 30분 전후에 종착점에 도착합니다. 중간에 점심도 자봉님이 안내해주는 식당에 가서 그날 걷기에서 처음 만난 이들과 함께 먹습니다. 낯선 이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걷기를 좋아하는 공통점 때문일까요?


점심은 10,000원 정도의 소박한 식사로 선택하고 식사비는 각자 냅니다. 제주 음식의 특징은 대체로 슴슴한 맛입니다. 특별히 양념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지인과 먹었던 순두부도 아무런 양념이 없는 순두부를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한 그릇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슴슴한 맛 덕분입니다. 신기하게 그 슴슴함이 또 그립게 만듭니다. 강한 맛은 먹을 때는 맛있는데 먹고 나면 뒤탈이 나기도 합니다. 말도 지나치면 반드시 뒤탈이 납니다. 감정이 쌓여 어딘가에 쏟아야 하는데 쏟고 나면 후회할 것 같아 스트레스를 매운 음식으로 대체하나 봅니다. 그나마 다행이지요. 몸에 난 뒤탈은 약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기도 하지만 말로 난 뒤탈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수습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지나친 감정도 강한 맛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슴슴한 맛도 슴슴한 감정도 사랑하는 이 나이를 좋아합니다.


자봉님들은 자신의 시간을 하루 종일 허비하는데 수당을 얼마나 받을까 궁금했습니다. 단돈 10원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비 오는 날에도,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에도 자원봉사는 진행이 됩니다. 육지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자원봉사를 며칠하고 돌아가는 분, 비상약까지 가지고 다니시면서 걷는 중 물집이 잡힌 더러운 발을 치료해 주어 감동을 주는 분, 미국 국적의 한국인인데 제주에 반해 제주에서 살면서 자봉을 하고 계신 분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올레길을 어마나 사랑하면, 제주를 얼마나 사랑하면 이런 행동이 가능할까? 그분들의 대답은 함께 걸으면서 자신도 올레길을 완주하려고 한다는 것뿐입니다. 어떤 자봉님은 36번을 완주했다고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잠시 만들어진 단톡방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면 함께 걸어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합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배웁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걸으러 오는 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여자 혼자 오는 분이 많다는 것도 나를 놀라게 하는 일입니다. 나만 용기 있게 혼자 온 게 아니라는 위안도 받습니다.


걷는 사람들은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모두 좋은 분들일 거라는 딸의 말이 맞습니다. 퇴직 후 올레길 완주를 첫 번째 하고 싶은 일로 선택한 자신을 칭찬합니다. 걸을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하며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할까를 생각해 보는 제주 생활이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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