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남은 한 장 중에서도 벌써 절반은 지나가 버렸다. 이 절반이 지나고 나면 나는 환갑이 된다. 환갑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태어나서 60년 만에 맞는 생일을 가리키는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갑진년에 태어난 내가 다시 갑진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나이 60이 되면 세상 사는 이치를 훤히 꿰뚫을 줄 알았는데….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위치에서 처신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 줄 알았는데….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도 넓게 품을 줄 알았는데….
걱정거리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다른 이의 이상한 행동도 너그러이 이해할 줄 알았는데….
돈에 대해 걱정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20살의 내가 갈팡질팡했던 것처럼 나이 60에도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두려움은 왜 이리 커지는지. 나이가 들수록 사는 일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무탈한 하루가 이리도 감사하게 받아들여지는가 보다.
가장 큰 두려움은 치매이다. 요양병원에서 하루씩 자신을 잃어가는 친정엄마를 보면서 나의 남은 삶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날마다 오락가락하는 엄마의 정신은 엄마를 향한 우리의 마음도 안쓰러움과 미안함과 미움으로 오락가락하게 한다. 여섯 자식 한 부모 거두지 못하고 요양병원에서 지내시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 위에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은 미움마저 얹어 버린다. 엄마도 자신이 그러는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답함과 함께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절반의 유전자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자식이 부모를 부인하는 이 힘든 마음을 나는 자식들에게 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85세까지 건강하게 살다 2~3일 아프다 세상을 뜨고 싶다는 야무진 소망을 갖는다. 작가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도 잘 살기 위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남은 인생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가장 두려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외국어 배우고 있다. 가장 익숙한 외국어인 영어를 매일 읽고, 듣고 있다. 배운다는 말 보다고 놀고 있다는데 더 정확한 표현이다. ‘젊은 날에 이렇게 열심히 영어와 놀았다면’ 가정해 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어찌하겠는가. 지금은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 가성비 제로에 가까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영어원서를 읽는 행위가 즐거움을 주는 이유가 영어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치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또 에스페란토까지 배우고 있으니 치매는 예방이 되기는 될 것 같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어떤 언어이든 내게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언어가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 믿으며 열심히 배워보련다. 에스페란토의 목표는 치매 예방은 아니다. 한번 배워보라는 후배의 권유를 36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단숨에 받아들였다. 배워보라는 말을 들은 그날 기초반을 위한 수업이 개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운명처럼 훅 에스페란토는 내게 들어왔다.
순간 훅하니 들어 온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춤이다. 고등학교 시절 ‘유연성이 없다’라는 무용 선생님의 말씀이 뇌에 새겨져 춤은 나와는 별개인 영역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퇴직하면 춤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점점 굳어가는 몸이 생각마저도 굳어버리게 하여 몸과 마음의 유연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라인댄스 공연을 보고 ‘저 춤은 몸치인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하여 10개월째 라인댄스를 배우고 있다. ‘인생은 국·영·수로 시작해서 음·미·체로 끝난다’라는 댄스 선생님의 명언이 떠오른다. 잘하고자 한다면 나는 단 하루도 댄스 수업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영역이 아닌 댄스 그룹에 속해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니 춤을 추는 것이 즐거워졌다. 사실 추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기억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지만 일단 즐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또 나이가 들어가는 일은 예민함을 잊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 날은 예민함으로 힘들었는데 60이라는 나이에는 예민함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예민함은 아직은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 아닐까. 살아있어야 즐거움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나면 걸으려고 노력한다. 걸을 때 보이는 작은 것에서 잃어가는 예민함을 찾고 싶어서.
남은 생,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살면서 걷고 읽고 쓰면서 마무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