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 파스타

by 정미선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책의 일부분이다.


자기 긍정의 힘을 키워라


혼자 있는 시간에는 과감하게 자신을 절대적인 대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보통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와 비교하게 된다. ‘저 친구나 선배에 비하면 나는....’ 하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비교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지만, 대신 자기 긍정의 힘은 약해진다. 때론 그런 비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잘못되지 않았다‘고 등을 토닥이며 함께 싸워줄 든든한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가장 좋은 동료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내가 나의 동료가 되어주어야 한다. 특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세상에 자기편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에도 ’나만은 내편‘이라는 생각을 잃지 않도록 훈련해야 한다.


평일 낮 집에 있는 시간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혼자서 점심을 먹는 일도, 아침에 일찍 눈을 뜰 필요가 없는 것도, 눈을 떠서 갈 곳이 없는 것도,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 없는 것도. 저녁에 내일을 걱정하며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이런 상황들이 좋은 것인지 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 혼자라는 사실에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FIRE 족을 꿈꾼다는데 나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어쨌든 FIRE 족이 되어 평일 낮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항이 낯설어서 어리둥절하니 나 자신도 어리둥절하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는 유시민 작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그토록 강조한 내가 원하는 일을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다는 황홀한 사실 말이다. 그런데 전혀 익숙하지 않고 심지어 약간 우울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맞기는 하는가 보다. 혼자로 동떨어진 느낌이 주는 두려움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내 앞에 붙는 수식어는 이제 온전히 내가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오직 나이 60세가 넘은 여자라는 것뿐인듯하다. 나는 나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것일까? 고작 한두 단어만 나의 의지로 붙일 수 있다면 만족하리라는 마음으로 지난 1년 열심히 낭독을 공부했던 것일까. 오디오북 내래이터, 작가. 육십 평생 사는 동안 이렇게 집착하며 한 일이 있었던가. 나의 이름 앞에 간절히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이 두 가지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수식어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아니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평일 낮의 이 고요의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고독의 시간임을 알아야 한다. 감사하다. 36년 같은 일을 한 덕분에 그래도 수월한 마음으로 평일 점심을 즐기고, 내 이름 앞에 간절히 붙이고 싶은 이름을 붙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음이....


지금부터는 건강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어제 점심은 혼자서 밥 한 공기에 달걀 후라이 2개를 넣어 간장 조금 넣어 비벼 후루룩 먹어버렸다. 그 식사(실은 식사랄 것도 없이 해치운 것이었지만)가 나의 소중한 하루도 후루룩 말아버린 것 같아 오늘부터는 혼자서 먹는 점심도 정성껏 차려먹어보리라 결심했다. 진정한 고독의 시간이 되기 위한 기초 스텝. 혼자 먹는 식사도 정성스럽게 해서 먹기.


문득 제주도 더본 호텔에서 먹었던 단호박 크림 파스타가 떠올랐다. 비투숙객에게도 저렴한 가격에 호텔 조식을 제공하는 호텔의 정신에 감동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많지 않은 종류였지만 하나같이 정성스러운 맛에 반했었다. 유독 입맛에 남아있는 것이 단호박 크림 파스타이다.


냉동실의 늙은 호박을 꺼내 찌고 양파를 잘게 썰어 버터에 볶아 찐 호박과 우유를 넣어 믹서에 갈아준다. 냄비에 이 내용물을 끓이고 조개 모양의 파스타면(이름은 모른다. 더본호텔에서 보았던 그 모양)은 8분 정도 삶아 이 속에 퐁당 빠뜨린다. 비슷한 맛이 날 줄 알았는데 기대한 맛이 아니다. 단호박이 아니어서일까. 단호박 수프는 이렇게 끓이면 맛있게 되는데. 치즈를 넣으면 좀 더 맛이 깊어졌을까. 기대했던 맛이 아니라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정성을 들인 시간이었음에 만족한다. 곁들임 메뉴로는 오방색 샐러드. 상추, 양송이버섯 볶은 것, 파프리카, 당근 볶은 것, 블루베리를 예쁘게 접시에 담고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 후추를 조금 뿌려주니 모양 뿐만 아니라 맛과 영양이 훌륭한 샐러드가 완성이다.


우울한 기분이 날아간다. 고독의 시간이 주는 선물을 최대한 즐겨보리라. 내일은 나를 위해 또 무슨 요리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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