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머위잎

감사한 봄날

by 정미선

봄기운이 가득한 화창한 주말입니다. 주말은 혼자 조용히 카페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오늘 날씨는 카페를 가기에는 너무 화창합니다. 모처럼 화순군 수만리를 가 보겠다고 결심하고 서둘러 점심을 먹습니다. 설거지하는 동안 남편에게 청소기를 밀어주라고 말했는데도 남편은 설거지가 끝나도록 소파에 누워서 휴대전화만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만가지 행동(김형경)’이 아니었다면 또 기분이 잔뜩 나빴을 것입니다. ‘적응하거나 해결하거나’라는 구절이 있었기에 적응하기로 하고 청소기를 돌리기로 결정합니다. 수만리를 다녀왔을 때 더러운 집보다는 깨끗한 집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한참을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니 무안한지 그냥 두고 가라고 합니다. ‘다 하고 나니 이제야.’ 걸레질까지 완료하고 커피만 챙겨 수만리로 향합니다.


집 근처 산도 있지만 굳이 수만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 보를 채우고 싶은 욕심만은 아닙니다. 수만리 숲은 나만의 퀘렌시아입니다. 특히 마음이 편치 않은 날은요. 오다가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결코 방해되지 않는 느낌이 좋아 아주 좋아하는 곳입니다. 오늘은 한참을 걸어도 사람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무서움보다는 온 산을 내가 차지한 느낌이 좋습니다. 답답한 마스크도 잠시 벗어버리고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밀어 넣으며 걸어갑니다. 한참을 가니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 날씨에 사람이 없을 리가 없지.


산에는 진달래가 피어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불쑥 진달래가 피어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가 가득한 산에 혼자 분홍빛을 띠며 수줍게 피어있습니다. 듬성듬성 보이는 진달래의 수줍음에 나도 웃음이 나옵니다. 참으로 예쁩니다.


종착지인 쉼 센터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옵니다. 로컬 냉장고에 머위잎이 보입니다. 봄이 시작되면 쑥 다음으로 맛을 보는 어린 머위잎입니다.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으면 쌉싸름한 봄 내음을 몸 한가득 넣어주는데 어린 머위잎은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하니 좋아할 수 밖에요. 마지막 한 봉지 남아있는 것을 얼른 챙기고 달걀도 삽니다. 농민들이 무인으로 운영하는 로컬이라서 물건이 많지 않아 진열된 물건들이 빨리 소진됩니다. 자연을 살리면서 살아가는 농부들의 손길이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소망합다.


돌아오는 길 변에는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있고 벚나무도 한창 물이 올라 있습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온 힘을 다 모으고 있는 나무의 끙끙거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서로 격려하고 있는 듯 나무마다 꽃망울이 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설렘이 일렁입니다. 다음 주에 오면 터져있겠지.


나무들도 잎을 틔우기 위해 한껏 애쓰고 있습니다. 힘을 잘 모은 가지들은 벌써 새순을 삐죽이 내밀고 있습니다. 자연의 질서 앞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김없이 돌아와 주는 계절의 순환 덕분에 겨울 같은 우리의 삶에도 봄이 숨어있다는 것을 믿으며 견딜 수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저녁 밥상에 머위잎을 무쳐 먹으려고 머위잎을 손질하는데 딸이 파스타를 먹자는 것입니다. 씻은 머위잎을 비닐봉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고 파스타를 먹으러 갑니다. 자식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기에 가능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 이렇게 오붓하게 외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또 생각보다 일찍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머위잎은 내일로 미루고 자식들을 앞세워 집을 나섭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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