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일기

by 초코은

11월 00일


약을 바꿨다. 잠은 들기가 어렵지 일단 자면 몇 시간은 자는데 안정제를 먹어도 학교에서 특히 오전에 가슴 두근거림이 심하다.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뛰고 시야가 흐려져서 교탁에 기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기도 했다. 마치 여기가 교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A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B도 결석이 잦다. 민사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A와 B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 경찰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고소당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차라리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면 직위해제가 되니 고소라도 당했으면 하는 망상까지 생긴다. 집에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이 들어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약속에 불러 내지만 사소한 대화를 하는 것도 어렵고 억지로 웃다 보면 식은땀까지 흐르기도 한다.

왜 내가 이런 일에 휘말렸을까 생각하는 것을 멈추라고 상담사가 조언했다. 원인도 결과도 없는 그저 사고였다고 생각하라고 한다. 그 사고로 내 5년 교직인생은 무너졌다. 나는 학교에 피해를 끼치는 민폐교사고 학부모들의 안주 거리고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무능련한 교사가 됐다.

하루하루 달력에 날짜를 지워 가며 이번 학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11월 00일


수업시간에 영어 독해를 하는데 "attack"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몇몇 남학생이 눈을 맞추며 기분 나쁘게 웃는다. 그냥 지나갔어야 하는데 왜 웃냐고 하니 선생님 A 엄마한테 attack 당하셨잖아요!라고 하고 웃음이 번진다. 학생들이 내 고통을 알아주기를 바란 적도 없고 중학생 철없는 나이에 그런 일을 목격했다는 것에 약간의 안쓰러움도 느껴졌는데, A엄마라는 말이 붙잡고 있던 신경의 끈을 끊어 버렸다.

그게 웃을 일이냐고, 예의가 없다고, 적어도 중학생이라면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어느새 진정되지 않을 정도로 흥분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마치 A엄마에게 소리치고 싶었던 마음이 폭발한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저 여자 왜 그러냐는 눈초리로 바라 보고 어떤 학생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어색해진 침묵이 가득 찬 교실에서 겨우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수업을 마저 하는 데 눈앞이 흐려지면서

어지러워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약까지 먹으면서 억지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학기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를 위해서? 아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명예,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 오히려 피해자라고 위로받고 이해받기를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오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한 사고였다면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휴식을 했어야 한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 처럼 말이다. 사고에 명예나 증명 같은 것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하루하루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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