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종례

by 초코은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 가지가 가늘게 깎아 놓은 연필 끝을 닮아 위태롭다. 칼 끝으로 누군가를 찌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거꾸로 자신의 가슴을 향해 칼을 겨누며 학기말을 맞았다.


약은 내성이 생겼는지 증량을 해도 안정되기까지의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학교에서는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5년 동안의 관성으로 입력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 하루를 버텼다.


A와 B는 민사재판의 진행과는 관계없이 교육청의 권고로 서로 다른 반으로 학급 교체가 되었다. 둘의 새로운 담임교사는 왜 학기말에 새로운 학생을 받아야 하냐며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A와 B의 반 수업을 들어가는 일이 고역이었지만 적어도 담임이 아니라는 점에 숨통이 조금 틔었다. 교장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며 교장실로 불러 잘 마무리 됐으니 걱정 말라고 뒤늦은 위로를 건넸고, 일부 동료교사들은 지나친 특혜를 준다고 대 놓고 불평했다.

" 박선생이 너무 멘탈이 약해서 그래"

" 교직경력에 그런 비슷한 일 겪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요즘 젊은 교사들은 나약해"


복도를 지날 때 A와 B가 저 멀리 보이면 일부러 돌아서 반대쪽으로 갔다.


학교에서 언제 비난의 화살이 등 뒤로 날아올지 몰라 웅크리면서 수업을 했고 교무실에서는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더욱 웅크렸다.


반 교체 과정에서 A, B엄마의 통화기록은 일주일에 스무 통이 넘었다. 되도록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문자로 답신하면 장문의 카톡 폭탄이 이어졌다.


<애초에 담임 자질이 없었다.>

<A와 B의 사이를 중재할 노력을 하지 않았다>

<고소 안 한걸 다행으로 알아라. 학생들 앞에서 학부모를 폭행했다.>

<학기 초부터 A를 편애해서 A가 B를 만만히 봤다.>


박선생은 메시지를 출력해 교원단체 소속 변호사에게 법률상담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학부모를 고소한 교사는 거의 없다는 대답이었다. 일회성의 신체접촉으로 일주일 이상의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전화기록과 문자는 학부모상담과정에서 오고 간 것이기 때문에 협박이나 명예훼손의 기준에 미흡하다고 했다.


다행히 약을 먹은 덕분에 분노가 오래가지 않았고, 두려움, 불안, 실망도 겨울나무가 잎을 떨구듯이 박선생에게 오래 달라붙어 있지 않고 스러졌다. 감정 없이 갖고 노는 사람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인형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퇴근 후에는 일부러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다 잠들었고, 이주일에 한번 꼬박꼬박 정신의학과에 가서 상담과 약봉투를 받았다.


방학식날

들뜬 마음으로 빨리 집에 가려는 학생들의 열기가 교실에 가득하다.

3월 첫날에는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앉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 일 년이 지났으니 여러분들도 성장했기를 바라면.."


"선생님! 집에 빨리 가요! "

"선생님도 집에 가고 싶잖아요!"


"그래, 선생님이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일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선생님이 생각만큼 너희들을 격려하고 도와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몇몇은 귀를 기울이고 몇몇은 옆에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어수선한다.


"여러분들도 어려운 일 잘 헤쳐나가 줘서 고맙고, 학년이 올라가서도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A엄마의 방문 이후, 수업이나 담임 업무나 최소한의 역할만 하는 데도 힘이 들었고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느라 솔직히 부담스러웠던 학급 아이들의 얼굴이 오늘따라 하나하나 들어오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왜 마지막인 것처럼 얘기해요?"


갑자기 교사로 5년 동안 지낸 시간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겨우 방학식을 마무리하고 학생들이 빠져나간 텅 빈 교실에서 한참 있었다.


웃지 말아야 할 3월에 웃으면서 시작한 한 해

웃으면서 보내 줘야 할 방학식에 체면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A, B, 그들의 부모,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학생과 교사들은 이제 기억의 한 편에 묻어 두고

당분간 꺼내 볼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박선생은 오늘 교문을 나서기까지 아주 무거운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옮길 것이다.

5년 동안 선생질을 하면서 애썼던 시간의 추가 발걸음을 더디게 붙잡겠지만

교문을 벗어나기만 하면 끝이다.


집에 가서 약을 먹고 깊은 잠을 잘 것이다.

꿈의 끝에 보이는 모습이 학교가 아닌 곳이기를 바란다.

교사라는 꿈을 꾸고 교사로서 지내왔던 시간들은 5권의 교무수첩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오늘이 그 5년보다 더 긴 하루가 될 것이다.









이전 09화11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