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셨어요?"
동그란 얼굴에 은테안경을 낀 의사는 인상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차갑다.
"쳐들어왔어요"
"뭐가요? 일어난 일을 얘기하지 말고 지금 가장 힘든 점을 얘기하세요"
"어떻게 일어난 일 없이 힘든 점을 얘기하나요?"
의사가 손목에 찬 금색 시계를 본다.
"교권침해를 당했습니다. 반 아이 학부모가 제가 하지 않은 일을 걸고넘어지고 고소한다고 합니다."
차트에 모나미 볼펜으로 계속 무언가를 적는 의사의 동작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선생님들 요즘 많이 와요. 그래서 제일 불편한 점은?
박선생은 의사한테 오면 응어리가 다 풀릴 때까지 얘기를 들어줄 줄 알고 수많은 고민 끝에 우주 저 너머의 별처럼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정신과의 육중한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마치 응급실에서 전혀 위중하지 않은 증상으로 방문해서 뒤로 밀려서 대기하다 빨리 응급처치만 받고 사라져야 하는 그런 환자 취급을 받는 듯했다.
입을 열었는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 뜸을 들이자 의사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표정이 스친다.
"....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끝까지 하지 않고 중간에 자르는 의사의 화법에 목덜미를 조여 오는 듯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 쳐들어왔을 때 일이 자꾸 생각나고 힘듭니다."
" 누가 왔는데요?"
"학부모가요".
"학부모가 학교 올 수 있지 않나?"
그 일을 얘기하려니 다시 입술이 떨린다.
"수업 중에 교실로 와서 저를 밀쳤어.."
"알겠습니다. 외상 후 장애가 온 거 같은데 잠 안 오고 자꾸 그 생각나고 식욕도 없고?"
"학교를 나가기가 힘듭니다. 그 학부모의 아이를 계속 봐야 한다는 것도요."
의사가 또 시계를 보더니
" 일단 수면제랑 신경안정제를 처방할 테니 일주일 뒤에 오세요"
"학교를 나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리고 식은땀이.. "
"우리 병원에서 상담클리닉도 운영해요. 나가서 접수에 문의하면 예약 잡아 줄 겁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 책임을 다하면서 타인에게 폐를 안 끼치는 것을 신조로 삼았고 하물며 자신의 어려운 점을 징징거리거나 나 좀 봐 달라고 질척거리거나 하는 사람을 경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 징징거림은 습관이 아니라 마음속에 가득 찬 말들이 툭 터져서 흘러나오는 것이고, 그렇게 소리쳐서라도
그 자리를 지키려는 인간적인 몸부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일 이후 딱 일주일의 병가를 얻었고 이제 다시 학교에 나가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 두근거림은 더욱 심해졌고, 지난 5년간 매일 통과했던 교문에 한 발짝도 들여놓는 것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임용고사 수석, 수업에 대한 열정, 학생들과 나누던 소소한 말들, 그런 것들이 순간순간의 기억으로 뒤섞인 채 커다란 물컹한 덩어리처럼 한 데 뭉쳐서 교문 밖 어디론가 굴러 떨어졌고 그 문 너머에는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책임을 지고 사과하라는 아우성이 또 커다란 물체가 되어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신경안정제를 털어 넣는다.
목덜미를 넘어가는 정방형 흰색 알약에 매달려 본다.
오늘 밤 부디 잘 수 있기를.
악몽 속에 깨어나는 새벽의 한기가 몸속에 파고들지 않기를.
밖에서 나와 올려다본 간판에 나눔 정신건강의학과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병원 이름도 모른 채 동네 가까운 정신과를 검색해서 가장 빠른 예약을 잡아 주는 병원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로만 괜찮다고 하지 않고 약이라도 나눠 주는 게 ' 고. 맙.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