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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쓰니 Jul 04. 2017

"어떻게 하면 너랑 살 수 있을까"

ep9.


그리지_쓰니랑




토옥 토톡.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빗방울에 닿은 옷이 적셔지지는 않을 만큼의 방울비다. 기분이 괜스레 센치해진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지만 그래도 비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는 아니지만 그동안 메말랐던 세상을 숨 쉴 만큼이라도 적셔줄만한 양이다.



“열이 생각보다 심한 거 같은데 많이 아픈 거 아니야?”

“괜찮아. 지금은 안 아파”



얼굴에 나타나는 아픔은 아니었지만 서로 맞닿은 입술, 그리고 그의 혀끝에서 전해진 뜨거운 기운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평상시보다 기운도 없어 보이고 멍 때리는 모습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목에 난 염증 때문에 자꾸 오르는 열과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날 보러 온 거 같아 고마움과 미안함에 가슴이 울렁울렁거렸다.


고마움과 미안함.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가슴 속에서 살고 있는 애기 요정이 주먹으로 오른쪽 왼쪽 손을 뻗으며 가슴을 살짝살짝 밀어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땐 빗방울이 멈췄다. 습한 기운은 가득했지만 더위는 사라졌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공기를 상쾌하게 만들었다.


카페에 가려던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목동 현대백화점 앞에 꾸며져 있는 거의 말라가는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뜨거운 햇빛이 없는 남색 빛의 어두운 하늘을 즐겼다. 옆에 벤치에서 할머니와 그 옆에 앉아서 할머니 폰으로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는 손자의 작은 말다툼이 재밌게 들려왔다.


한동안 그는 조용했다. 나는 천천히 걷는 듯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옆 벤치 할머니와 손자의 말다툼을 듣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그는 날 보고 있었다. 날 보고 있기는 한데 그건 맞는데... 뭔가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픈 걸까. 멍하게 있는 그를 건드려서 정신이 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멍하게 몇 초를 응시했다. ‘흐흐' 그의 얼굴을 멍하게 보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 웃음에 그도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말이 이렇게 흘러나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날 바라보면서 그렇게 멍하게 있었을까. 궁금했나보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거 보니. 이 질문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웃고 있던 내 미소를 잠시 멈추게 했다.



“어떻게 하면 너랑 살 수 있을까. 이 생각”



오늘 그가 아파서 그런가. 처음 만날 때부터 평상시보다 좀 더 강한 애정표현에 쑥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멘트에 내 마음은 또 쿵했다.

‘인연이면 잘 만나게 되고 인연이 아니면 아닌 거겠지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나는 일부러 별거 아니라는 듯이 쉽게 넘기려고 했다. ‘맞아 그러겠지’ 라고 답하는 그는 심하게 흔들린 내 심장을 잘 알겠지만 모르는 척 해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옅게 웃었다.


그의 큰 눈동자 속에서 새초롬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얼굴이 보였다. 순간. 꼭 그의 눈 속에 내가 담겨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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