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무효(無效)의 무게와 의심의 싹

by 고지윤


한남동 펜트하우스에서 강제로 끌려온 지윤은 관리국 내에 있는 특수훈련실 강화유리 안쪽으로 던져졌다. 하진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컨트롤러를 조작하며, 지윤의 목에 채워진 초커의 데이터를 모니터링했다.

"세린 씨가 준 향초, 당장 폐기해. 그리고 다시는 그 여자 근처에 가지 마."

"그냥 호의였잖아요! 팀장님은 왜 그렇게 모든 걸 나쁘게만 봐요?"

지윤의 반항적인 외침에 하진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듯한 서늘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하진은 홀스터에서 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어서 무전기를 끄고 지윤이 있는 격리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호의? 걱정? 강지윤, 너는 아직 네가 발을 들인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는군.”

하진은 훈련실 벽면의 홀로그램을 켰다. **'Adaptive Volition Modification'**이라는 문자가 차갑게 허공에 떴다.

“이게 네 몸속에 흐르는 힘, A.V.M의 진짜 이름이야. ‘적응적 의지 변형’. 인류가 극한의 환경이나 심리적 압박에 적응하기 위해 물리 법칙을 변형시키는 기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지. 네가 방금 말한 그 ‘따뜻한 마음’이나 ‘호의’ 같은 감정들...

우리 같은 이능력자들에게는 그 모든 게 물리 법칙을 뒤트는 **‘의지(Volition)’**로 직결돼. 네가 누군가를 믿고 싶다는 그 사소한 마음조차 네 능력을 오염시키고 비정상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다는 뜻이야.”

하진의 주변으로 푸른빛의 파동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장갑 낀 손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10년 전, 내 아버지는 화염을 제어하는 이능력자였어. 어느 날 우리 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났을 때, 아버지는 자신의 능력을 방패 삼아 화염을 밀어내며 우리를 밖으로 인도하고 계셨지. 불길은 뜨거웠지만 아버지의 능력 덕분에 우리는 안전했어.”

하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겁에 질린 나는 그 비극적인 상황 자체가 멈추기만을 바랐어. 제발 이 모든 상황이 사라지기를. 나의 그 간절한 **‘의지’**가 내 안의 A.V.M을 깨웠고, 내 무효화 능력이 폭주하듯 터져 나왔지. 그 결과... 내 주변의 모든 이능력이 무효화되며 사라졌어. 화마를 막아주던 아버지의 화염까지도.”

하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능력을 잃은 아버지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어. 나의 능력이 아버지의 능력을 없애버리는 순간, 아버지는 무방비하게 화마에 휩쓸리셨지. 내 의지는 아버지를 공격하지 않았어. 하지만 아버지를 지켜주던 유일한 수단을 빼앗아 버렸지. 강지윤, 네가 말하는 그 선한 마음이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아. 때로는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어.”

지윤은 숨을 멈췄다. 하진이 왜 그토록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는지, 그 처절한 사연이 지윤의 가슴을 후벼 팠다. 하진은 다시 냉정한 팀장의 눈빛으로 돌아와 지윤을 쏘아보았다.

“세린이라는 여자, 그녀 주변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파동이 있어. 때문에 난 그녀를 믿지 않아. 네가 그녀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품는 순간, 네 의지는 그 정체 모를 기운에 맞춰 너의 능력을 비틀어버릴 거다. 이제부터 실전 훈련이다. 내 무효화 영역 안에서 압박을 이겨내고 네 공간을 유지해.”

하진의 몸에서 거대한 압박감이 뿜어져 나왔다. 지윤은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려졌다.

같은 시각, 세린은 자신의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와인 잔을 맨손으로 문지르며 지난밤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진의 무효화 영역에 닿았을 때 느껴졌던 그 불쾌한 감각을 곱씹으며.

“서하진... 촉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겁이 많은 건지.”

세린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입가에 치명적인 미소를 뗬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진이 지윤을 억누를수록, 지윤의 무의식은 더 강렬하게 ‘탈출’을 갈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세린은 눈을 감고 지윤의 귓가에 남겼던 그 주파수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찾아와, 지윤 씨. 그 차가운 감옥에서 당신을 꺼내줄 사람은 나뿐이야.”

세린은 스마트폰을 들어 의문의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다.

[관리국 내부의 주파수 증폭기를 가동해. 쥐새끼가 덫을 부술 시간이야.]

다시 관리국 훈련실. 지윤은 하진의 무효화 파동 속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하진의 힘은 지윤의 공간 왜곡 파동을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듯 거셌다.

‘포기해... 그냥 닻을 내리고 멈추면 편해질 거야...’

하진이 내린 ‘억제’의 명령이 지윤의 머릿속을 지배하려 할 때, 코끝을 스치는 환각 같은 향기가 지윤의 폐부를 찔렀다. 잠들기 전 맡았던 그 장미 향초의 잔향, 그리고 정체 모를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이끌림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그 순간, 지윤의 뇌파가 폭주했다. 하진이 강요하는 ‘억제’와 정체불명의 ‘이끌림’이 지윤의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하진의 무효화 영역이 지윤을 압박할수록, 지윤의 뇌는 이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새로운 **‘생존의 의지’**를 불태웠다.

“으아아아악!”

지윤의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번쩍였다. 하진의 무효화 영역이 지윤의 몸 주변에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윤의 의지가 하진의 무효화 영역 안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재적응’**시킨 결과였다.

“말도 안 돼... 무효화 영역 안에서 공간을 지켜냈다고?”

하진의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뒤로한 채, 지윤의 몸은 이미 찢어진 공간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지윤은 반쯤 감긴 눈으로 하진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팀장님... 하지만 지금은,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슈우욱—!

폭발적인 진동과 함께 지윤이 사라졌다. 훈련실 바닥에는 그가 차고 있던 초커만이 과부하로 타버린 채 조각나 있었다. 하진은 허망하게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며 총을 고쳐 쥐었다.

“강지윤... 결국 그 여자에게로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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