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부르지 않아도, 마음이 준비되면 스스로 다가온다.”
2025년 12월 12알 16시경
이 길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신기했다.
학부도, 대학원도
이곳 출신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덧 6년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이 캠퍼스를 다시 찾고 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졸업한 한 최고위 과정의
1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그리고 또 하나,
올 가을까지 1년 동안
동문들의 인연을 잇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책임과
조금의 설렘이 함께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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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자리는
말끔히 정리된 순서보다는
사람들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다니는 공간.
각자의 삶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이
한 그릇에 담겨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섞이고 있었다.
나는 그 하루를
이렇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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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한가운데,
음악이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소리는 급하지 않았고,
앞서가려 하지도 않았다.
한 음, 한 음이
마치 말을 고르듯
천천히 다가왔다.
늦게 시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호흡의 깊이,
오래 버틴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온도 같은 것이
소리 안에 담겨 있었다.
연주 중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설명보다 먼저
가슴에 닿았다.
박수는 어느새 리듬이 되었고,
환호는 화음이 되었으며,
연주자와 관객의 경계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 순간 우리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장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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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끝난 뒤,
나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나는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어떤 인연으로 어딘가에서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간
연결이었을 것이다.
연결은 오래전에 있었고,
만남은 그날에야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짧은 인사,
사진 한 장,
연락처 교환.
그것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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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인연을
자주 보지 않아도,
강하게 붙들지 않아도
어느 날 문득
삶의 방향을 조금 바꾸는 관계.
어제의 음악은
그 개념을
말이 아니라
울림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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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도록
그 소리를 떠올렸다.
어제 나는
또 하나의 약한 연대의 씨앗을
조용히 마음에 심었다.
이 씨앗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날의 온도와 울림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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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사람 사이의 여백을 기록합니다.
일과 인연, 그리고 약한 연대가 남기는 삶의 울림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