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자들의 북토크에서 얻는 가치
오늘은 『자기다움 리더십』의 공동저자인
박정열 박사님과 박선웅 교수님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박정열 박사님의 인연으로 가게 되엇고 박교수님은 이번에 처음으로 인사하고 인연을 맺었다..
눈앞에서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에
설레는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북토크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북토크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밀도를 좋아한다.
책을 읽는 행위가 혼자만의 사유라면,
북토크는 그 사유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책 속 문장들이
저자의 목소리와 표정, 망설임과 웃음을 입는 순간,
문장은 정보가 아니라 태도가 된다.
북토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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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토크에는 SNS친구와 함께 참석했다.
온라인에서만 알고 지내던 분이었고
얼굴을 마주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전혀 낯설지 않았다.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대화가 흘렀고,
그 익숙함에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SNS에서 이어진 **약한 연대(weak tie)**가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텍스트와 공감으로 먼저 이어진 관계는
몸이 뒤늦게 합류해도 이미 충분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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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겹쳐졌다.
이름만 알고 있던 인연,
어디선가 스쳐 지나갔던 만남들이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연은 점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사슬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슬의 시작은
대부분 아주 약한 연결이다.
댓글 하나, 공감 하나,
책 한 권을 함께 읽었다는 사실 하나.
하지만 그 약함이
시간을 만나면
놀랍도록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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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토크를 자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책이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왜 그 표현을 썼는지,
왜 그 문장을 끝내 남기기로 했는지,
그 문장 뒤에 어떤 망설임과 선택이 있었는지.
오늘도 두 저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 속 문장들이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문장을 만든 사람의 결을 직접 느끼는 시간은
언제나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은
다시 책으로 돌아가게 하고,
결국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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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 리더십』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리더십은
무언가를 더 갖추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더 분명히 아는 과정이라는 것.
누군가의 방식을 흉내 내기보다
나의 질문과 가치, 태도를 가지고
사람과 일을 대하는 것.
북토크에서 만나는 저자들은
대부분 이미 자기다움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종종 미래의 나를 상상한다.
‘저런 태도로 나이 들 수 있을까.’
‘저런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고 있을까.’
그래서 북토크는
과거를 정리하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를 미리 만나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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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북토크는
저자와의 만남이었고,
지인과의 만남이었으며,
결국은 우리들의 만남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잠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간.
그 짧은 공감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조금씩 다른 선택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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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토크는
그 두 세계가 가장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이다.
사유와 현장, 질문과 경험,
사람과 사람이 겹쳐지는 자리.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북토크에 갈 것이다.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조금 더 단단하게 느껴졌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