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8] 늦둥이 딸의 중학교 졸업식을 경험하며

마흔에 다시 시작된 시간,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by 낭만기술사

요즘 여기저기에서 졸업식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곤 합니다.

꽃다발을 안은 아이들,
그 옆에서 조금은 어색하게 웃고 있는 부모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조용히 하나 올려 봅니다.


저에게는 늦둥이 딸이 있습니다.
오빠와의 나이 차이는 여덟 살.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습니다.
동생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며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아빠, 나도 동생 낳아 주세요.”


그때 제 나이, 마흔 살.
그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 낳아도 언제 키우지?’
‘하나만 잘 키워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와이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결국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자식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가슴 깊이 와닿았거든요.


첫 달은 실패.
둘째 달에 다행히 성공.


그렇게 12월 15일,
조금은 늦은 겨울에 딸이 태어났습니다.

생일이 늦다 보니 또래 친구들을 따라가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느덧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친구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 속 모습이
이제는 제법 의젓해 보입니다.

사실 이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생후 6개월 무렵,
고열이 며칠째 내려가지 않아
밤새 안고 서 있던 날들.

대학병원에 입원해
결국 가와사키병 진단을 받았고,
치료제 주사를 맞고서야
겨우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두 돌도 되기 전,

사시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원시라는 걸 알게 되었고
두꺼운 돋보기 같은 교정 안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시가 심해 두 돌도 안 된 나이에 수술을 했고,
수술 후 눈을 모두 가린 채
누워 있던 아이를 바라보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참으로 안타까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커서 괜찮아 보이지만
어릴 적부터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자라며
적잖이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도 길을 가다
어린아이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으면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여섯 살 무렵에는


귀에 물이 차는 중이염으로
또 한 번 수술을 했고,
어린 꼬맹이 시절에
병원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를 지나
이제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여덟 해 전,
오빠 졸업식 옆에서 서툴게 서 있던
여덟 살 꼬맹이가 이제는 오빠와 나란히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대학교 4학년이 된 아들과
곧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딸.

지금은 남매 사이도 제법 좋아졌습니다.


중요한 시험 준비로 바쁜 아들이
“동생 졸업식이잖아”라며 서울에서 내려와
함께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형제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부모와는 세대 차이가 나도
둘 사이에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중2병이 벌써 3년째 이어지고,
아빠에게는 틱틱거리며 살갑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엄마와 아웅다웅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흐뭇해집니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딸 하나쯤 있어야 하나 봅니다.


사실 저도 아들이지만, 아들 키워봐야
효도하는 건 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더군요.


앞으로도 우당탕탕한 나날이
계속되겠지만,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

네 식구. 잘 살아보려 합니다.


회사 규정상 은퇴까지는 아직 5년.

그때쯤이면 딸은 대학교 2학년이겠지요.

둘째 대학교 등록금도 벌어야 하는데…
뭐, 어찌 되겠지요.


미래는 미래의 일이고 지금은 지금의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저 현재에 충실하려 합니다.

늦은 나이에 얻은 딸 덕분에
저는 오늘도 조금 더 젊게 살아봅니다.

-낭만기술사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