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공부가 안 맞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어디서 알려 주나요
1화. 열아홉의 나는 왜 그리도 확신에 차 있었나
- 전공 공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2화. ‘탈건’하신 분을 찾습니다.
- 탈 건축을 아시나요
3화. “인생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
- 가치관을 뒤흔든 교수님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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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프롤로그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졸업을 위해 무려 5년을 견뎌야 하는 건축을요. 당시 새내기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바로 "건축학 개론 보고 건축학과 간 거야?"였습니다. 실상은 전혀 아니었지만요. 입학 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대체 어떤 영화길래'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영화를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건축학과를 가겠다고 결심했을까요. 사실 열아홉의 저는 건축이야말로 저에게 딱 맞는 전공일 거라는 이유 없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당시에는 내가 한 번 선택한 전공으로 평생을 먹고살아야 하고 진로 고민은 열아홉 살에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네요.
대체 무엇이 저에게 그런 확신을 줬을까요. 사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한평생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실제로도 무언가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진지하게 미대 입시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받고는 혼란이 생겼습니다. 미대를 가기 위해서는 보통 수학을 버리고 국어와 영어와 사탐에 쏟아부어 최저를 맞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학을 버리면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생 때의 저는 수학을 곧잘 하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수학 성적을 버리고 국어와 영어에 올인한다는 것은 도박과도 같았습니다. 이미 이과에 진학했는데 문과로 전과해서 사탐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도요. 열여덟 살에게는 매우 가혹하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문과로 전과하지 않고 수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그림까지 그릴 수 있는 학과는 없을까? 하던 저에게 건축학과가 눈에 띈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생기부와 진로 탐색 때문에 막막하던 고등학교 2학년인 저에게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내가 하고 있는 공부를 그대로 지속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학과에 진학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마치 건축학과가 저의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부터는 생기부 희망학과 란에 항상 '건축'을 썼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건축학과에 대해서도 입학 후 어떤 공부를 하는지 어렴풋이 찾아본 게 다였습니다. 설계과목 과제를 위해 손도면을 그려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스케치를 얼핏 보고 그림 그리는 학과라는 다소 잘못된 정보를 머릿속에 주입했고요.
고3이 되고 나서는 수시 원서를 접수하는 그때까지도 어느 학과에 갈지 고민하며 갈팡질팡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이미 가고 싶은 학과가 정해져 있다'는 생각과 함께 입학 후 즐겁게 전공 공부를 하는 스스로를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여느 수험생들처럼 그때는 정말 대학만 가면 진로가 정해지고 모든 고민이 해결되고 내가 고3 때 느꼈던 불안감 같은 것들은 마법처럼 사라지는 줄 알았으니까요. 고3 때 느끼는 불안과 걱정이 앞으로 내가 살면서 넘어야 할 모든 불안과 걱정들 중에 제일 작은 것들 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무사히 합격해 대학에 입학하게 된 저는 새내기 때 몇 번의 전공 수업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릅니다.
'아,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