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탈건'하신 분을 찾습니다.

탈 건축을 아시나요

by YOOM

1부. 왜 하필 공대였나.

1화. 열아홉의 나는 왜 그리도 확신에 차 있었나

- 전공 공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2화. ‘탈건’하신 분을 찾습니다.

- 탈 건축을 아시나요


3화. “인생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

- 가치관을 뒤흔든 교수님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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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건축학과 입학 후 몇 번의 전공수업을 듣고 ‘망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동기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탈건은 지능순’이라는 무시무시한 문장이었죠. (건축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으며 제가 들었던 그대로를 썼습니다. 업계에 남아계신 훌륭한 선후배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하지만 새내기 때는 다시 수능공부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진지하게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힘들다는 생각만 하며 일단 버텨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 건축학과는 5년제입니다. 학교에 따라 4년제 교육과정을 택하는 곳도 있긴 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졸업한 학교의 경우 5년제였습니다. 타과로의 전과는 2학년까지만 가능하다는 교칙도 존재했고요. 새내기 시절을 이 정도면 그래도 버틸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나니 더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2학년 때부터 단순 구조물이 아닌 실제 건물 설계를 시작했기 때문이죠. 그 규모가 커지고 커져 3학년 때는 공장 리모델링, 4학년 때는 마을 단위의 커뮤니티 설계로 확장되었습니다. 단순히 설계 규모가 커져가는 게 힘들었다기보다 제가 느꼈던 힘듦은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그저 그림 그리는 이과를 가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선택했는데 실제 공부를 해보니 단순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거든요.


저는 그림을 ‘창작’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모작’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던 거죠. 대지 선정부터 설계 테마를 잡고 정말 맨 땅에 헤딩하듯이 자료를 찾아가며 디자인하고 매주 교수님께 피드백받고 수정하는 과정에 수학처럼 명확한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번외 편으로 건축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는 건축학과의 장단점도 포스팅으로 발행할 계획입니다.)


이미 전과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쳤고 그렇다고 편입을 하거나 다시 재수를 하자니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가장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졸업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쨌든 건축학과도 공과대학에 속하니 버티고 버텨서 졸업하고 나면 내 손에 공대 졸업장이 쥐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남은 3년도 이를 악물고 버텼네요.


이를 악물고 버티며 마지막 설계였던 졸업작품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졸업만 하면 ‘하루빨리 탈건 해야겠다’와 더불어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렇다고 설계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 난 뭐 먹고살지?’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안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몰랐죠. 제가 커리어를 n번이나 전환하며 누구보다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런 정처 없는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해 준 교수님의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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