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퇴사를 했다.(15) - 오징어회를 먹다가

D+111일의 이야기

by 키위열매

아, 110일이 되던 6월 28일에 남편이 갑자기 친구들이랑 윗학번 형들이 근처에 왔다고 놀고 온다고 했다. 일찍 온다고 했었다. 퇴근하던 길에도 내가 전화했더니 일찍 간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는데 11시가 지나자 노래방을 갔다가 온다고 했다. 나는 사실 상황에 따라 달리지기에 일찍 온다는 말을 믿고 있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하하 그 말을 끝으로 "도대체 남편은 왜 중간에 못 나와?", "어차피 일찍 올 거란 기대 안 했어"라고 말하며 그냥 잠들었다. 깨어나보니 1시에 집으로 들어간단 연락이 와있었다. 그리고 111일 되던 날 아침 나는 별말 없이 출근을 했다.


퇴근하던 길 지난주 목요일(D+111, 6월 29일)에는 오징어회가 당겼다. 퇴근하는 길 점심식대를 사용하지 않아서 남은 비용으로 만두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징어회를 사기로 했다. 얼마 안 하지 않냐고 남편은 말했지만 오징어는 언제나 금징어였다. 집 근처에 가게가 있어서 인터넷에 쳐보니 25,000원이었는데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27,000원이랬다. 잠깐 고민했지만 회를 먹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회는 오징어회. 이 날따라 왜 이렇게 먹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기운은 없었다. 기운을 차리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남편도 계속 왜 기운이 없냐고 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오징어회를 먹으며 남편과 술 한 잔을 하다가 결국 털어놓았다. 사실, 마음이 차이가 나서 그랬다. 일찍 온다는 말, 노래방을 간다는 말, 이제 출발한다는 말 이런 연락은 아마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었으면 알겠다고 하고 지나갈 일들이었다. 연락도 잘해주고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지금 현재는 연락을 잘해주어도 공허했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내가 일을 안 해서 그렇지."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나는 내가 드는 생각을 말했다.


기다려줘야 하는데. 내 동반자가 힘들어할 때 보채지 않고 옆에서 할 수 있다고 응원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내가 참 한심하면서도 언제 될지 모르겠는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고 했다. 연애시절 때도 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남편이 "○○야, 네가 생각하는 일들의 99%는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아, 걱정하는 거 알아. 진짜 걱정되니까 네가 이러는 거지. 나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남편은 말했다. "미안하다"라고 얘기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모든 건 오징어회가 쏘아 올린 공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편이 퇴사를 했다.(14) - 게임과 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