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왓슨은 요환을 데리고 자신의 연구소로 돌아왔다.
“워커 박사의 연구소는 기회가 되면 보기로 하세. 그가 먼저 자네를 찾아오다니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
“박사님께서 제 연구에 관심이 있으신가 봐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어쨌거나 저 사람은 그냥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네. 그래 봤자 서로 불편해지니깐 말이야.”
연구소의 안쪽에는 여느 때와 같이 캐서린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캐서린은 요환과 왓슨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요환, 내 딸 캐서린을 잘 부탁하네.”
요환은 캐서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레 고개 숙인 요환을 보고 캐서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동양에서는 정중하게 부탁할 때 이렇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한답니다.”
“그렇군요. 저는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살아서 동양인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에요.”
“그런가요? 보기보다 나쁘지는 않죠?”
“노코멘트예요. 어쨌든 나도 잘 부탁해요. 제가 당신 연구 보조를 전적으로 맡게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 테니 빨리 친해지도록 하죠.”
요환은 방긋 웃는 얼굴로 캐서린을 보았다.
언제 보아도 캐서린의 풍성하고 윤기 나는 검은색 머리칼은 매력적이었다.
또 그녀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볼 때면 그 안으로 마치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런 미녀와 함께 연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요환은 더욱 설렜다.
“왓슨 박사님, 어서 박사님의 실험실을 구경하고 싶어요.”
캐서린과 대화가 끝난 요환이 책상에 앉아서 꾸물거리고 있는 왓슨에게 말했다.
“그렇지, 아직 내 실험실 안을 구경하지 못했지?”
“박사님께서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 정말 궁금하거든요.”
“그래, 하지만 내 실험실은 그냥 들어갈 수 없다네.”
“네? 무슨 말씀인가요?”
“캐서린! 그것을 안 박사에게 갖다 주렴.”
왓슨의 말을 들은 캐서린이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챙겨 요환에게 가져왔다.
요환은 캐서린이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우주복처럼 생긴 옷이었다.
잘 개켜진 우주복 위에는 헬멧도 얹혀 있었다.
“박사님, 이것을 입으라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네. 조금 더울지도 모르는데 입는 게 좋을 거야.”
“입기 싫으면 입지 않아도 돼요. 뒷일은 저도 책임 못 져요.”
옆에 있던 캐서린이 거들며 말했다.
일반적인 하얀색 실험 가운이 아닌 우주복을 입은 요환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헬멧이 무거운지 뒤뚱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박사님, 헬멧까지 꼭 써야 하나요?”
“자네가 여태 다른 박사들의 실험실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지?”
“30분에서 1시간 정도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물어보시나요?”
“자네가 30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다면 헬멧을 벗고 들어가게나.”
아직도 뒤뚱거리는 요환을 바라보던 캐서린이 그에게 다가와 헬멧을 벗겨주었다.
“헬멧은 지금 안 써도 돼요. 어차피 안에 들어가도 실험실이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거든요. 유리관에 갇혀 있는 공간은 공기가 없어서 꼭 헬멧을 써야 해요. 그리고 산소가 공급되는지 확인을 꼭 하셔야 합니다.”
“박사님, 수중 연구를 하고 계시는가요?”
요환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왓슨에게 물어봤다.
“나는 해양학자가 아니라네, 자네와 같은 천체물리학자지. 그리고 수중 연구라면 수영복을 입겠지. 이거 실망이군. 자네의 상상력이 고작 그 정도였다니.”
어느새 자신도 우주복과 같은 복장으로 갈아입은 왓슨이 헬멧을 옆구리에 낀 채 말했다.
왓슨은 요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실험실 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리고 실험실 문이 열리자 요환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요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압도되어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핫산과 바이트만 박사의 실험실 역시 구경할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왓슨 박사의 연구는 차원이 달랐다.
아직 한걸음도 떼지 못한 채 넋을 잃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영접할 수밖에 없었다.
실험실의 중앙에는 큰 유리관이 있었다.
마치 대형 수족관과 같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유리관이었다.
유리관 바깥쪽에는 슈퍼컴퓨터와 각종 연구시설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과학자들이 유리관 안쪽을 보며 연구를 하고 있었다.
유리관 안쪽에는 어둠 가운데서 몇몇 물체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어서 오게나! 이곳이 나의 연구소. 그리고 나의 평생의 걸작 ‘소우주’라네.”
왓슨이 두 팔을 벌려 요환에게 환영의 인사를 했다.
유리관 안쪽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요환은 헬멧을 바닥에 내려두고 유리관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멍하게 유리관 안쪽을 바라보았다.
유리관 안쪽에는 형형색색의 물체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중앙에는 지름이 약 3m 정도의 주황빛을 띠는 구체가 둥둥 떠 있었다.
요환은 그 물체를 보며 소리쳤다.
“맙소사! 설마 저것은 태양인가요?”
왓슨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여러 개의 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었다.
요환은 그것이 태양계의 행성을 표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흡사 우주를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형태였다.
“각자의 크기에 비례해서 만들었고 공전과 자전 주기 역시 계산해서 만들었다네.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해서 각 행성들의 위성들까지는 모두 만들지 못했다네. 그래도 굵직한 위성들은 다 있을 거야.”
요환은 기껏해야 우주와 같은 무중력 상태의 환경을 만들고 중력에 관한 실험 정도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왓슨의 연구는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자전과 공전을 하는 모습이 요환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박사님, 행성이 그런데 행성이 9개네요?”
한참 소우주를 바라보던 요환이 왓슨에게 물어보았다.
명왕성이 행성에서 빠진 이상 행성은 8개가 정상이었다.
“자네가 알듯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 명왕성과 비슷하지 않나?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처럼 우리도 과학계에서 퇴출당한 이단아들이지. 그리고 지하세계의 신인 플루토를 의미하는 것도 지하의 탑인 바벨탑과 연관성이 있어 차마 명왕성을 뺄 수가 없었다네.”
“그 마음 이해가 가요. 저도 카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환은 숙연한 마음으로 다시 소우주를 이곳저곳 훑어보기 시작했다.
“슬슬 들어가 보고 싶지 않나?”
왓슨은 요환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에요!”
요환이 어린아이처럼 흥분했다.
그러자 뒤에서 캐서린이 헬멧을 요환의 머리에 씌었다.
요환의 몸이 다시 휘청거렸다.
“절대 헬멧 벗으면 안 돼요. 잠시라도 절대로요!”
요환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저 안에는 공기도 없을뿐더러 수많은 스타 더스트들이 존재한다네. 그것들은 매우 작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고밀도 고질량이지. 자네가 숨을 들여 마셔서 혹시나 폐에 들어가게 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야.”
왓슨 역시 헬멧을 쓰고 요환에게 말 대신 손을 펴서 앞으로 가라는 사인을 보냈다.
얼굴 양 옆으로 신선한 산소가 공급되고 있음을 볼의 촉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요환은 이중으로 보호된 자동문을 통과하여 이윽고 ‘소우주’ 안으로 발을 디뎠다.
‘소우주’ 안은 완벽한 무중력 상태의 공간이었다.
요환은 처음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발버둥 치고 있는 요환의 허리를 뒤에서 왓슨이 잡았다.
“자네, 내 말 잘 들리나?”
헬멧 위쪽으로부터 왓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박사님 잘 들립니다.”
“힘을 빼고 조용히 자네 숨결을 느껴봐. 처음에 중심을 잡는 것이 어려울 거야.”
왓슨은 요환의 허리를 치켜올려 주었다.
요환은 왓슨의 말대로 발버둥 치던 발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안 박사님, 양팔을 벌리세요.”
이번에는 캐서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환은 양팔과 양다리를 넓게 벌렸다.
그러자 어느 정도 무중력 공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자, 이제 가슴을 위로 치켜세운다는 느낌과 발로 공간을 밀어준다는 느낌으로 움직여 보게나.”
요환은 왓슨의 말대로 가슴을 위로 치켜세우면서 뒷발로 허공을 부드럽게 밀 듯 움직였다.
뒷발에 추진력이 생겨 그의 몸이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다.
“잘했어. 처음인데 잘하는군. 이제 저 앞에서 공전하고 있는 명왕성이 보이지? 거기까지 가보는 거야."
왓슨은 탁구공 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움직이는 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요환은 다리로 공간을 밀어내고 양팔을 앞으로 헤치며 명왕성을 향해 나갔다.
왓슨이 가리키는 곳에 다다르자 작은 태양계가 한눈에 들여다보였다.
“박사님, 정말 신기해요. 마치 제가 우주에 온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태양계를 제가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요환은 신이 난 아이마냥 ‘소우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박사님, 조심하세요. 행성들과 부딪히면 큰일 나요. 어렵게 인력을 계산해서 띄어 놓은 행성들이에요.”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요환을 보며 캐서린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 캐서린. 약간 부딪히는 정도라면 궤도 수정을 다시 하면 되니 말이야. 어차피 컴퓨터에 시뮬레이션 기록이 전부 저장되어 있으니 상관없어.”
괜찮다는 왓슨의 말을 듣자 요환은 더욱 신이 난 듯 ‘소우주’를 헤집고 떠다녔다.
요환은 명왕성, 해왕성, 천왕성을 차례로 넘어 토성 가까이 까지 갔다.
실제의 토성과 같이 고리가 둘려 있었다.
가장 많은 위성을 갖고 있는 행성답게 토성 주위를 몇몇 작은 구체가 돌고 있었다.
행성들의 자전, 공전뿐 아니라 위성들의 궤도까지 계산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득히 현 인류의 지식수준을 뛰어넘은 셈이다.
지상의 어느 과학자가 저것을 다 계산해서 구현해 낼 수 있을까?
요환은 혀를 내둘렀다.
이미 신의 수준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핫산과 바이트만의 실험 역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과학의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과학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어떠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왓슨의 ‘소우주’는 가히 신의 영역이었다.
“박사님, 이 고리는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토성을 넋을 잃고 쳐다보던 요환이 물었다.
“가스층으로 구성된 실제 토성의 고리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혼합 가스등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네. 다만 구에서부터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 실제 토성과는 다르지.”
요환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즐거움으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소우주 안을 누볐다.
토성과 목성, 화성을 넘어가자 파란색의 구가 눈에 보였다.
순서상으로 보자면 지구가 와야 하지만 요환의 앞에는 그저 파란색 구가 둥둥 떠 있었다.
다른 행성들은 실제와 굉장히 유사한 형태를 뗬지만 지구는 말 그대로 파란색 구 그 자체가 전부였다.
누가 봐도 우리가 아는 지구는 아니었다.
파란색 구를 멀뚱멀뚱 보고 있는 요환을 바라보며 왓슨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네. 다른 행성들은 어느 정도 그 외형 등을 유사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네. 단순한 가스 혼합물들을 구성물과 혼합 비율 정도만 바꾸어도 실제 행성들과 비슷한 모양과 특성을 유지할 수 있지. 하지만 지구는 실망스럽겠지만 저것이 최선이라네. 여기까지는 나의 영역이 아닌 것 같네.”
“지구만큼은 인간의 힘으로 비슷하게라도 만들기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자네도 연구를 하게 되면 그 단계를 알게 될 거야.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그 한계가 분명히 보이게 되지. 태양까지도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구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지. 신의 섭리란 참 오묘하단 말이야.”
요환은 자리에서 둥둥 뜬 채로 조용히 파란색 지구를 쳐다보았다.
‘신의 영역이라...’
왓슨이 말한 신의 영역이란 말이 그의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소우주 내부를 구경하고 나온 요환에게 캐서린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어 주었다.
요환은 헬멧을 벗고 캐서린이 건네준 머그잔에 입을 댔다.
향긋한 원두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내 걸작 ‘소우주’를 보니 어땠나? 지구 때문에 조금 실망해 보이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박사님, 여기까지도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 선 것 같습니다. 저는 평생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오히려 명문대학교에서 연구를 하던 제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이네요.”
누가 들으면 아첨하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모두 요환의 진심이었다.
“박사님,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인가?”
“행성들은 가스 혼합물로 만드셨다는 것은 대충 알겠는데 스타 더스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한 스타 더스트라는 것은 빛나는 작은 입자라고 생각했는데 박사님께서 말한 입자들이 보이지 않네요.”
“역시 자네가 흥미를 느낄 것이라 생각했네. 과연 천체물리학자로서의 민감성이 어느 정도 있는 모양이군.”
“민감성이라니... 무슨 말씀인지요?”
“저 스타더스트들의 정체는 바로 물리화 된 암흑물질 후보군들이라네. 자네가 알다시피 암흑물질들은 중력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 아마 자네도 느꼈을 거야. 몸이 계속 무거웠다는 것을.”
“네, 앞으로 나가는 것도 아주 힘들었어요.”
“잘 생각해 보게, 본래 무중력 상태라면 그렇지 않겠지? 자네가 어떠한 저항을 느꼈다는 것은 중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중력을 가진 입자들과의 마찰로 인한 것이라네. 바로 그 존재들이 우주먼지이자 암흑물질이라네.”
암흑물질이란 말을 듣자 요환의 동공이 커졌다.
요환은 유리관에 얼굴을 대고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소우주’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았다.
“핫산의 연구소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암흑물질을 물리화 하는 것에 성공했다네. 물론 가시화하는 것은 아직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야. 하기야 눈에 보이는 입자라면 암흑물질이란 이름을 바꾸어야 하겠지? 이 암흑물질들은 고질량 고밀도의 입자들이고 소량으로도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능가하는 엄청난 고농도 에너지를 내재하고 있다네.”
요환은 왓슨의 설명을 들으면서 만약 물리화된 암흑물질이 전쟁에 쓰인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았다.
분명 지구가 멸망에 까지 이르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요환에게 캐서린이 다가왔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단지 이 암흑물질이 무기로 사용된다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오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 들어서요. 이제야 제 연구를 반대했던 교수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군요. 저는 사실 암흑물질이 이렇게까지 무서운 물질인지 몰랐어요. 아직 밝혀진 것이 많이 없는 그런 미지의 물질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과학자들은 그 위험성을 감수하고 연구를 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의무라... 당신은 그것을 과학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는군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저는 저의 만족을 위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물론 노벨과 아인슈타인도 자신이 만든 다이너마이트와 한 통의 편지가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겠죠. 언젠가 암흑물질도 그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게 되겠죠. 그렇다면 역시 많은 사람들을 삼켜버릴 악마로 변해버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신의 영역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바벨의 후예에 온 것이고요.”
“안 박사님, 신의 영역은 인간이 넘볼 영역이 아니에요.”
“바벨의 후예 소속인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로군요.”
요환은 조금 놀랍다는 듯 말했다.
바벨탑 사건은 성경에서 나오는 신에 대한 반역사건으로 유명했고, 바벨이 후예라는 이름 자체가 그 유지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요환은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벨의 후예 모든 과학자들은 바벨탑을 쌓았던 옛 선조들과 같이 신에게 도전하려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저는 아버지 밑에서 연구를 하고 도와드리고 있을 뿐이지 신에 대한 도전은 인간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해요. 신에 대한 도전은 파멸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니 유감이군요.”
“당신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해요. 요환, 순수한 과학에 대한 열망은 좋지만, 신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연구는 위험한 것이에요. 신에 대한 도전 자체가 죄이며, 그 죄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죠.”
캐서린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캐서린, 당신의 말을 진지하게 가슴속에 새겨 둘게요. 그나저나, 옷을 좀 갈아입고 와도 될까요? 밖에 나오니까 이 우주복이 상당히 덥네요.”
요환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빨리 다녀오세요.”
요환의 이마에서부터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자 캐서린은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요환은 그런 순수한 캐서린의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