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과거)

by 프렌치힐

바벨의 후예에서의 첫 실험은 나쁘지 않았다.


MIT에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좋은 실험 환경과 더불어 이곳에서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요환은 그것이 결과에 대한 압박으로부터의 자유 때문이라 생각했다.


미 정부와 대학의 자금을 받아 연구한다는 것은 은행의 담보 대출과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학자로서의 명예를 담보로 한 대출이었다.


약속된 기간이 끝나면 과학자들은 실험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를 반드시 이끌어내야만 했다.


그러한 압박이 항상 자신이 일했던 곳에서는 과학자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연구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무언의 압박 또한 없었다.


모두가 단지 연구를 즐기는 것 같았다.


이런 편안한 마음이 오히려 그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첫 실험은 왓슨 박사와 함께 핫산 박사가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요환은 핫산에게 자신의 실험계획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핫산이 입을 열었다.


“실험 프로세스는 정말 완벽한 것 같네요. 뭐 하나 흠잡을 것이 없어요.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하나 걸리는 것이 있군요.”


“말씀해 주십시오. 박사님의 조언에 항상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요환은 엑시온에 대해서 아니 암흑물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핫산의 질문에 예상이나 한 듯 요환은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그렇게 잘 알지 못합니다. 저는 입자학을 세부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본 지식만 있을 뿐입니다.”


핫산은 염려하는 얼굴로 요환을 쳐다보았다.


“저도 솔직히 엑시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암흑 물질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엑시온에 대해서도 접할 기회가 있었죠. 요환, 엑시온은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에요.”


“그것은 이미 왓슨 박사님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핫산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항상 말이 많던 평소 때와 사뭇 느낌이 달랐다.


“왓슨 박사에게 설명을 들었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내가 다시 설명해 줄게요. 여러 가지 암흑물질군 중에서도 엑시온은 폭발력이 가장 강한 물질이에요. 그리고 사실 나도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폭발 시 그 위력이 핵폭발의 수십 아니 수백 배에 다다를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조심스럽게 암흑물질 후보군 중에서 다른 입자들을 추천하고 싶어요.”


핫산의 이야기를 들은 요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옆에서 서 있던 왓슨도 아무 말 없이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박사님,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그 폭발력 때문에 엑시온이 암흑 물질 후보군 중에서 블랙홀의 형성하는데 최적이라 생각합니다."


“블랙홀 형성에 필요한 것은 바로 폭발력이기 때문인가요?”


“네, 맞습니다. 왓슨 박사님께 귀띔을 듣고 어느 정도는 각오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위험에도 무릅쓰고 저는 연구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자신의 조언에도 당당하게 말하는 요환의 태도가 오히려 아니꼽게 느껴졌다.


핫산에게도 이상이 있다.


그에게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내걸 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


신에 대한 도전?


바벨탑 사건의 결말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신에 대한 도전은 무의미하다고 핫산은 생각해 왔다.


엑시온의 폭발력을 아는 이상 그는 이 실험에서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헤드마스터라는 자존심 때문에 마지못해 실험에 참가하였다.


이 위험한 실험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하하! 박사님이 이 친구를 왜 그리 아끼는지 알 것 같군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친구이지만 우리보다 배짱 하나는 큰 친구인 것 같네요.”


핫산은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요환, 저는 당신의 실험을 방해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물론 그 패기 넘치는 모습이 나 또한 자랑스럽고, 그리고 이 바벨의 후예를 이끌어갈 인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엑시온 실험만큼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해요. 다른 후보군들의 실험을 한 다음에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윔프나 다른 암흑물질 후보군도 제가 수년간 실험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을 확보해 두고 있거든요. 잘못하면 이 바벨탑 전체, 아니 이 섬 일대가 다 날아갈지도 몰라요.”


“박사님, 일단 박사님의 생각은 제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박사님 생각보다 더 안전한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할 것입니다. 제가 실험 브리핑을 해 드렸던 것처럼 굉장히 소량의 입자만 사용한 실험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저도 엑시온의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거든요. 하지만 폭발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큰 재앙이 될 것은 분명한 일이에요.”


핫산은 자신이 했던 말을 반복하며 요환을 설득하려 했다.


요환과의 대화가 거듭될수록 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옆에서 보기만 하던 왓슨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핫산,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요환이 실험을 진행할 것이지만 모든 통제는 내가 할 거라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왓슨이 거들자 그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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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간단한 브리핑을 마친 후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했다.


이곳에서의 첫 실험은 물리화 된 엑시온을 입자가속기로 회전시키는 것이었다.


오전에 시작된 실험은 저녁 늦게까지 지속되었다.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고대로 얼굴에 드러난 핫산과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바라보는 왓슨 박사, 그리고 요환의 조수 일을 도와주는 캐서린이 함께 실험실에 참가했다.


실험이 계속되었지만 요환이 원하는 성과와 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요환은 고개를 내저으며 시험관 유리벽에 얼굴을 대고 깊은 근심에 빠졌다.


“생각 결과가 제 예상보다는 잘 나오지 않네요.”


“이제 실험 첫날이라네. 자네도 알겠지만, 처음부터 원하는 성과를 이끌어내기는 힘들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을 잡고 가야 하는 프로젝트라네.”


“물론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몇 가지 개선할 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인지 말해주겠나?”


“지금 상태로는 백날을 반복해도 귀한 엑시온만 축낼 것 같습니다. 일단 제 가설에는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오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험 과정 중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저는 둘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첫 째는 투입하는 엑시온의 양이 너무 적거나 두 번째는 입자가속기의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왓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요환의 말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은 간단합니다. 엑시온을 더 투입하면 되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의 솔루션은 입자가속기의 속도를 더 높이면 되는데, 일단 현 상태로서는 이 이상 더 큰 회전력을 내기 위해서는 입자가속기 자체를 개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둘 중에 어느 하나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둘 다 문제가 되는지는 판명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둘 다 해보는 것이 좋겠군. 엑시온 투입량은 더 넣으면 되는 것이고, 입자가속기의 개량은 내가 하인츠에게 부탁해 보겠네. 하인츠 박사가 기계 설비 쪽으로도 재능이 있거든.”


그때 옆에서 잠잠히 이야기를 듣던 핫산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는 첫 번째 솔루션에 대해서는 반대예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이상 엑시온을 투입하는 것은 무리예요. 엑시온의 양이 증가된 상태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박사님, 아직 박사님께서도 정확하게 엑시온의 폭발력에 대해서는 모르시지 않나요?”


요환이 대꾸하듯 말했다.


“그렇죠. 하지만 모를수록 조심해야 하는 거예요. 분명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괜찮을 것이니 저를 믿어 주세요. 또 제 옆에 왓슨 박사님께서 함께 계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핫산이 계속해서 반대를 하자 요환도 슬슬 지쳐갔다.


“일단은 오늘 실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실험에서 엑시온의 양을 늘려 보도록 하지. 다들 돌아가고 수고했네. 요환은 잠시 나 좀 보고 가게나.”


하루 종일 있었던 실험 때문에 몸은 고단했고 실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음에도 요환은 즐거운 하루였다.


이제 자신의 꿈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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