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과거)

by 프렌치힐

바벨의 후예에서의 생활은 요환에게 설렘을 주었다.


그가 진정 원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부 때부터 박사과정을 밟아 교수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게 있던 MIT를 떠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현재는 휴직 상태지만 이곳 생활이 익숙해진다면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몰랐다.


바벨의 후예에 계속 머물러야 할지 아니면 다시 돌아가야 할지.


인도인 과학자 핫산은 우스갯소리로 이곳에 한 번 들어오면 뼈를 묻어야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에 왔다 다시 나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바벨의 후예가 비밀스럽게 그 존재를 유지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들은 비밀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남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이곳이 바깥세상 보다 훨씬 좋기 때문에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요환이 본 이곳의 과학과 기술은 가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MIT 공대 여느 박사의 연구보다도 혁신적이었다.


누구는 바깥세상보다 50년, 또 혹자는 100년은 더 빠른 하이테크놀로지라는 말하지만, 이 말들이 허언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를 가능케 하는 방대한 시설 역시도 매력적이었다.


어느 연구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시설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바벨탑이었다.


인류가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이룩해 왔는지, 그것도 이러한 지하에서 수십 년을 몰래 행해 왔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비단 연구시설뿐 아니라 생활을 할 수 있는 윤택한 복지시설도 마음에 들었다.


개인 생활공간과 편의 시설은 몇 성급 호텔과 비견될 수준이었다.


지하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라 음울한 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꽤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바벨탑 내부에는 영화관, 수영장, 간이 골프장 등 여러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바벨탑은 지하 낙원이었다.


무엇보다도 요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연구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연구를 하면서 그간 힘들었던 것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이는 모든 대학, 연구소에 소속된 과학자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떠한 대학과 연구소든 그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연구를 최우선으로 지원했다.


소위 유망하다는 연구에 돈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즐비하는 것이 과학계의 실상이었다.


그러한 재정적인 후원은 도리어 과학자에게는 연구실적 압박이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이곳, 바벨의 후예에서는 압박감이란 없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결과는 필요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열정이 있다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엄청난 물질적 후원이 있었다.


그 역시 어떻게 바벨의 후예가 이를 손에 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고 싶었다.


왓슨 박사는 앞으로 함께할 연구원들을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


요환의 연구소(혹은 왓슨의 연구소)에는 약 20여 명의 과학자들 함께 연구를 하게 되었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앞으로 블랙홀 실험이 성공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과주의의 압력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즐기는 이곳이야 말로 천국이 아닐까 싶었다.


요환과 왓슨 사이에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요환은 자신이 어떻게 블랙홀을 가지고 연구를 할 것인지 차근차근 왓슨에게 말했다.


“물리화 된 엑시온을 입자가속기를 통해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면 커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자네 이론이지?”


“네, 박사님. 어떤가요?”


“음...”


왓슨은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고민하는 왓슨의 모습을 보자 요환의 얼굴에도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론상으로는 괜찮은 것 같네. 엑시온도 핫산 박사가 실험에 필요한 충분량을 갖고 있고, 어차피 물리화도 성공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조금 걸리는 것이 있다네,”


“걸리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과연 엑시온을 통해 커 블랙홀을 만들었을 때 반대로 화이트홀도 생길지는 확신을 할 수 없다네.”


“블랙홀이 생기니 반드시 화이트홀이 생기지 않을까요?”


“물론 자네가 잘 알다시피 화이트홀이란 존재는 이론상으로 블랙홀이 있으니 그 반작용으로 화이트홀이 생길 것이라 과학자들이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어 낸 개념이지 실제로 관측된 적은 없다네.”


왓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을 요환은 고심에 빠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입구가 있으면 출구도 있는 법. 이것이 일반적인 과학적 원리지만 만약에 물리화된 엑시온과 같이 고농축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모든 것을 흡수한 후 그 반작용으로 화이트홀이 아닌 다른 식으로 에너지를 배출해 버릴 수도 있다네. 예를 들면 폭발이라던가...”


왓슨은 살며시 말끝을 흘렸다.


왓슨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런 위험성이 있군요. 전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네. 자네는 엑시온을 처음 접해보지 않았나? 하지만 내가 본 엑시온은 위험천만한 물질이라네. 아마 세계 유수한 과학자들도 이를 대충은 알고 있었을 거야.”


요환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요환을 보며 왓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네. 그렇다고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냐. 이곳은 바벨탑이라네. 우리는 위험 따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지.”


딱딱했던 요환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첫째, 엑시온을 통해서 블랙홀은 만들 수 있어도 화이트홀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만약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중력을 가진 블랙홀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의 양을 사용해야 하는가가 관건이라는 것이지. 만약 한 치의 오차라도 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발생하겠지?”


고농축 에너지 구가 폭발하는 상상을 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실험은 위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방법은 없지.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첫 발부터가 중요하다네. 우선은 자네가 생각한 이론대로 실험을 해보도록 하세나. 엑시온에 관해서는 핫산 박사가 연구를 많이 해 두었으니 내 실험실로 내려와서 함께 연구를 도와달라고 부탁 한번 해 보겠네.”


왓슨의 이야기를 듣자 요환의 얼굴이 더욱 환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각오는 해야 하네. 쉽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명심해 두게나. 모험은 항상 위험이 뒤따르지.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야. 옛날 바벨탑도 그랬었지. 자네는 신에게 대항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까지 요환은 수많은 실험들을 해왔고 많은 성과들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 그는 실험실이 아닌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정말 목숨을 걸고 실험에 임해야 했다.


까딱 잘못하면 이 바벨탑 전체가 엑시온의 폭발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또한 왓슨이 말한 ‘신에게 도전’이란 말이 캐서린이 했던 이야기와 겹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신의 존재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고 살았다.


과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신의 영역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너무도 당연했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과학은 이들 앞에서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감히 누가 자신이 하는 연구를 신의 영역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이를 논할 자격이 있다.


그는 막 신의 영역에 발걸음을 내딛으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일까?


그렇게 그는 바벨의 후예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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