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현재)

by 프렌치힐

요환의 이야기를 들은 아놀드 박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오랜만에 옛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데, 그리 좋지 않은 이야기라 유감이군.”


“죄송합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애초부터 바벨의 후예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사실을 말하자고 한 셀레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어 자신의 정체를 말해 버렸다.


요환이 당황하여할 말을 잃은 사이 셀레나는 바벨의 후예와 그들이 왜 왓슨 박사를 찾고 있는지 그간의 이야기를 아놀드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요환이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셀레나는 그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요환 역시도 셀레나의 말을 도왔다.


“어쩐지 자네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스캇이 생각나곤 했지.”


“왓슨 박사는 어떤 분이셨나요?”


요환이 아놀드에게 물었다.


“진취적인 친구였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려는 성격을 가졌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친구였다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앞 길 만을 보고 달리는 타입이거든. 하지만 왓슨은 달랐어. 그든 차가운 머리를 가졌지만 동시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내였지. 난 그런 그의 모습이 좋았어.”


“왓슨 박사는 언제쯤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오셨나요?”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거라는 표현이 더 좋으려나? 휴직계를 낸 뒤 다시 학교에 돌아오지 않았다네. 벌써 20년이 흘러버렸지만...”


요환은 아놀드 박사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본인 역시 MIT에 휴직계를 낸 뒤 바벨의 후예에서 2년이나 넘게 잠적을 감춘 상태였다.


그 뒤의 일은 자세히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현재는 하버드에서 교수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MIT에서는 아마 연락 두절로 인한 제명처리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년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어떻게 다시 자신이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이 바닥이 생각보다 좁기 때문에 바벨의 후예에서 있었던 2년간의 시간들은 그대로 그의 연구 공백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좋은 직장을 구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하버드 측에는 UN 협조를 받아 임시 휴직계를 낸 상태였다.


“박사님, 그렇다면 혹시 왓슨 박사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을까요?”


잠잠히 요환과 아놀드의 대화를 듣고 있던 셀레나가 입을 열었다.


“음...”


아놀드는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만약 왓슨의 행방을 말하게 된다면 그를 배신하는 행위가 아닌가?”


“아뇨,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도와주는 일입니다. 지금 바벨의 후예 내에 큰 균열이 생겼고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왓슨 박사님도 위험에 처한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 역시 그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네. 아까도 말했지만 그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20여 년이 넘었어. 내가 일부로 그의 행방을 숨겨 주는 것이 절대 아니라네.”


“저도 박사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혹시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그랬다면 진작 내가 찾지 않았을까?”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네. 나는 그와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되었어.”


“교수님, 그렇다면 왓슨 박사님이 예전에 살았던 곳이나 가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나요? 혹시 친척이나 부인에 대한 정보도 괜찮습니다.”


이번엔 요환이 입을 열었다.


“내 기억에 스캇은 미혼이었다네.”


“네? 왓슨 박사의 따님도 있는걸요?”


요환은 아놀드의 말에 깜짝 놀라 말했다.


“그렇다면 이 학교를 떠나고 나서 결혼을 했다는 말인가?”


“왓슨 박사님께서 학교를 떠난 지 20여 년 되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렇지.”


“따님의 나이가 올해로 30살입니다.”


“그렇다면 아마 친딸이 아닐 거야. 스캇은 정이 많은 사람이거든. 혹시 그의 부인을 본 적이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렇다면 입양했을 가능성이 크다네. 그는 항상 결혼은 싫지만 자식은 갖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든.”


캐서린이 왓슨 박사의 친딸이 아닐 거라는 아놀드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요환은 한 번도 그 두 부녀가 친부모 간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황상 보자면 아놀드의 말과 같이 캐서린이 왓슨의 친딸일 가능성은 낮았다.


“박사님, 정말 기억이 남는 것이 하나도 없나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놀드는 천천히 옛 일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생각해 보았다.


무려 20년 전이지만 그래도 왓슨박사에 관한 기억들의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 남겨져 있었다.


오래된 일을 억지로 기억해 내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날 듯 말 듯한 기억의 단편이 머릿속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뿌옇게 흐렸던 그의 기억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기억났어. 그래, 맞아.”


아놀드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말했다.


“항상 스캇은 그런 얘기를 했었어. 자신이 은퇴하면 고향에 돌아가서 살고 싶다고.”


“그래서 고향이 어디죠?”


셀레나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게나.”


아놀드는 머리를 감싸 쥐며 기억을 더듬었다.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왓슨 박사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 자네들 혹시 책을 좋아하나?”


무엇인가 떠오른 듯 감탄을 한 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책 이야기였다.


“네, 독서를 좋아합니다.”


“저도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읽고는 합니다.”


요환과 셀레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에밀리 브렌테의 ‘폭풍의 언덕’이란 책을 알고 있나?”


“저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읽어 본 적은 없어요.”


셀레나가 말했다.


“저는 읽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읽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왜 말씀하신 거죠?”


요환은 이상하다는 듯 아놀드에게 물었다.


“왓슨 박사는 항상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할 때마다 ‘폭풍의 언덕’ 이야기를 했거든. 그 언덕의 배경이 바로 요크셔 언덕이지.”


“아! 그렇군요. 요크셔 언덕이라면...”


요환이 말끝을 흘리자 아놀드가 말했다.


“요크셔 서쪽으로 강이 하나 흐르는데 그 강 이름이 하워스 강이라네. 그쪽에 강 이름과 같은 하워스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 있을 거야. 그곳이 바로 스캇의 고향이라네.”


“그런데 어떻게 가서 박사님을 찾죠?”


요환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하워스는 작은 시골 마을이라네. 그는 은퇴 후 자신의 고향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거든.”


“일단 감사합니다. 교수님.”


요환은 아놀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아닐세, 하워스는 여기서 한참 위로 올라가야 한다네. 리즈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니 일단 리즈를 향해서 가는 것이 좋을 거야.”


셀레나 역시 아놀드에게 감사하다는 표시를 했다.


“스캇을 만나면 꼭 전해주게나.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옛 친구를 한 번 찾아오라고!”


요환과 셀레나는 아놀드의 배웅을 받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나왔다.


“그곳에 왓슨 박사가 정말 있을까요?”


셀레나가 요환에게 물었다.


“일단은 가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셀레나?”


“저 역시도 가 봐서 나쁠 것은 없는 것 같네요.”


요환은 왓슨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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