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 박사의 연구실은 그날따라 더욱 엄숙했다.
활기차고 분주했던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암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치 결혼식 전에 부케를 들고 있는 신부의 기대감에 가까운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실험 2018년 3월 15일 제176번째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요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연구실 안에는 평소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마치 구경하듯 서서 실험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환이 신호를 보내자 캐서린이 입자가속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차례로 왓슨, 핫산, 바이트만 박사가 앉아 있었고 조금 옆에 떨어져서 전동 휠체어에 워커 박사가 앉아 있었다.
입자가속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제발...’
요환은 마른침을 삼키고 입자가속기를 지켜보았다.
‘오늘이 마지막 실험이 되었으면...’
이론상으로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블랙홀은 형성이 되었지만, 화이트홀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벌써 석 달이 넘게 동일한 상태였다.
실험이 계속 정체되자 사람들도 서서히 지쳐가는 분위기였다.
요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바벨의 후예 모든 과학자들이 함께 합동으로 연구한 실험이기에 어느 누구 탓을 할 수 없었지만, 실험의 진전이 없자 슬슬 연구소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있었다.
잠잠했던 핫산도 툭하면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우주 끈이 이런 식으로 허비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모든 박사들이 참여한 실험이기에 딴죽을 걸기도 힘들었다.
잘못하면 물리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화살이 돌아오기에 십상이라고 생각했기에 큰 소리는 내지 못했다.
요환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이 바로 캐서린이었다.
항상 남들보다 일찍 연구소에 나와서 실험을 하고 항상 늦게까지 남아 있는 그의 옆자리를 지켜주던 사람이 캐서린이었다.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하다가 잠깐 나누던 담소가 자주 오랜 대화가 되기도 하였다.
요환의 옆에는 항상 캐서린이 있었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둘 사이에는 사랑이란 감정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왓슨도 진작 둘의 사이를 눈치챘지만, 모르는 채 해주었다.
요환은 캐서린마저 없었다면 자신이 과연 이 고비를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실험이 계속 정체 상황에 있었을 때 워커 박사가 조용히 자신의 연구실로 요환을 불렀다.
그의 연구실에 왕래하는 사람은 요환밖에 없었다.
블랙홀 연구를 함께 하고부터는 이론적인 부분에 있어서 대화를 나눌 때 종종 요환을 그의 연구실로 부르곤 했다.
“안 박사. 내 생각에는 우리의 이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
철가면 뒤로 기계음이 들렸다.
“제가 봤을 때는 이론상으로 별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요환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우리가 세운 이론이 확실히 흠이 없어 보이지. 하지만 처음부터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네.”
요환은 워커 박사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쪽 자리에 앉아 보게나.”
워커는 요환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워커가 자신의 무릎 위의 노트북 버튼을 누르자 그의 뒤에 있던 화면에 두 개의 끈이 교차된 그림이 떠올랐다.
“간단해. 우리는 우주 끈 두 개를 중첩해서 만드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
다시 버튼을 누르자 그 두 개의 끈이 회전하면서 블랙홀이 되는 모습이 보였다.
“왜 우리는 우주 끈 두 개를 중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워커의 말에 요환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화면을 쳐다보았다.
“내가 만든 시뮬레이션이라네. 만약에 우리가 계산한 양의 우주 끈을 반으로 나눈다면 어떨까? 이건 네 개의 끈을 교차시켜서 만든 그림이라네.”
그의 말대로 이전의 끈들이 반으로 줄었지만, 그 수가 배로 늘어나 있었다.
이 네 개의 끈들이 서로 맞물리지 않게 교차되어 있었다.
“박사님 우주 끈을 두 개로 만들 때랑 네 개로 나눌 때랑 어떠한 차이가 있죠?”
“좋은 질문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우주 끈이 회전하면서 공간이 왜곡되지만 최근 내 연구로는 우리가 생각했던 블랙홀은 그 왜곡 정도가 불안정해서 화이트홀을 만들 만한 힘이 발생하지 않는다네.”
“제 계산은 틀린 것이 없었는데요?”
요환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론 그랬지. 자네의 계산은 완벽했지만, 그것은 블랙홀을 만드는데 완벽했을 뿐 화이트홀을 만들기에는 부족한 이론이었지.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은 우주 끈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주 끈을 더욱 많이 교차시키는 것이라네.”
워커가 다시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바뀌고 수식이 나와 있었다.
“내가 계산한 결과 약 4개 정도의 우주 끈을 중첩되지 않게 교차시킨다면 분명 화이트홀이 발생할 것일세.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된 화이트홀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12개 정도로 세분화시키는 것이 나의 계산이라네.”
화면상에는 복잡한 수식이 나와 있었다.
요환은 차근히 수식을 검토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지만 확실히 일리는 있었다.
요환은 공중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계산하듯 써가며 뚫어지게 수식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워커가 입을 열었다.
“저 위의 우주는 모르겠지만 이곳 지구상 위에 블랙홀을 만든다면 반드시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되어야 한다네. 우리가 만든 블랙홀은 출구인 화이트홀이 없기 때문에 만약 그 안에 무엇인가를 삼키게 된다면 그 물체를 에너지 삼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네. 우리가 여태까지 만들었던 블랙홀은 불안정한 형태이므로 기껏 5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지. 무엇을 삼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자네가 저 안에 들어간다면 한 3일은 멀쩡하게 입을 벌리고 있을 것이라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였다.
워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화이트홀이 발생한다고 쳐도 빨아들일 때의 중력과 내뱉을 때의 중력이 다르다면 자네가 화이트홀로 나오는 순간 몸이 산산조각이 날 거야.”
역시나 듣기에는 유쾌한 말이 아니었다.
“일단은 저 수식대로 12개의 우주 끈으로 블랙홀을 만든다면 확연히 입구가 작아진다네. 본래 우리가 만든 블랙홀의 크기가 지름이 약 1m 정도 되는 원형이라면 이 블랙홀의 크기는 크면 테니스 공 정도 크기에서 작으면 구슬 정도의 크기로 형성이 되지.”
워커의 설명을 듣자 요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박사님 이론에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이네요. 하지만 박사님 말씀과 같이 만약 계산이 틀려서 화이트홀의 힘이 더 작게 되면...”
“자네는 한낱 먼지가 되겠지.”
기계음이라 그런지 더욱 감정이 실리지 않은 차가운 음성으로 들려 오싹한 생각이 들었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군요.”
“내가 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혹시나 자네가 다른 계산방법이 있다면 자네 식으로 해도 괜찮다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주 끈을 2개만 교차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
잠시 어두웠던 요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박사님 감사합니다.”
그 후 워커의 말대로 더욱 세분한 12개의 우주 끈을 중첩하고 입자가속기의 속도는 더 높이기로 했다.
이번 실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요환은 공개 실험을 자청했다.
그리고 드디어 입자가속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요환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자가속기를 바라보았다.
입자가속기가 가동되자 굉음이 들리며 일시적으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빛은 완성된 블랙홀이 빛을 강하게 흡수하면서 일시적으로 한 곳으로 빛들이 모여 마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었다.
그 후로 블랙홀이 안정화되면서 주위의 빛만 흡수하여 검은 구의 모양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빛은 블랙홀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밝은 빛이 사라지자 연구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빛이 사라진 입자가속기 안에는 구슬 모양의 검은 구체가 둥둥 떠 있었다.
크기는 이전보다 작았지만, 전의 블랙홀보다 압도적인 에너지의 파동이 느껴졌다.
요환은 화이트홀이 형성되었는지 여부가 가장 궁금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화이트홀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실망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그를 보고 캐서린이 말했다.
“요환, 실망하긴 아직 일러요. 저쪽을 한 번 봐요.”
캐서린이 가리킨 곳은 입자가속기 밖의 허공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마찬가지로 골프공 크기로 주변 공간이 왜곡되어 일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바로 화이트홀인가?”
지켜보고 있던 왓슨이 벌떡 일어나 캐서린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다.
분명 일그러진 공간 주변으로 엄청난 에너지의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요환은 그제야 그것이 화이트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화이트홀을 본 적 없기 때문에 어떤 모양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실험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형성된 화이트홀은 이름 그대로 하얀색이 아닌 투명한 구체였다.
크기도 작은 터라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와-
연구실 안에 함성이 가득했다.
그동안 연구했던 왓슨 박사의 연구자들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과학자들은 박수로 그들의 노고를 축하해 주었다.
요환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멍하니 선 채로 화이트홀을 쳐다보고 있었다.
캐서린이 그에게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요환, 마음고생 많았죠? 수고했어요.”
요환은 말없이 캐서린을 안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왓슨이 가운데로 와서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아마 인류 최고의 발견의 현장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과 저는 처음으로 화이트홀을 본 사람들입니다.”
박수갈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요환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