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현재)

by 프렌치힐

‘진짜 총이 아니었구나. 나만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었지.’


요환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첨탑 아래로 내려왔다.


바이트만 박사도 요환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첨탑에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지면을 향해서 총을 쏜 것이었다.


그 역시도 모험이었다.


잘못하면 총을 쏘지 못한 채 땅에 처박혀 버릴지도 몰랐다.


또 총을 조금만 늦게 쏘더라도 블랙홀이 지면과 너무 가까이 형성되어 출구로 만들어진 화이트홀이 지하에서 생겨 버릴 수도 있었다.


운이 좋게 바이트만이 만든 화이트홀은 지면에서 약 1m 정도에서 아슬아슬하게 형성되었다.


등부터 떨어졌기에 충격이 조금 있었지만 바로 일어나 도망가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만약 1m만 더 높았다면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척추에 큰 타격을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짧은 순간 요환은 많은 고민을 했다.


이대로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면 절대 바이트만 박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 보았다.


딱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높은 곳에서 지면을 봐서인지 오금이 저리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상식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요환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이대로 바이트만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를 따라잡을 일말의 가능성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바이트만 박사처럼 똑같이 이 위치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당장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난간 위로 올라갔다. 난간 위에 선 그의 다리가 심하게 떨려왔다.


‘젠장’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수전증이 있는 사람처럼 손도 떨려왔다.


그 와중에 그는 권총을 꺼내어 지면을 응시했다.


조금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눈대중으로 지면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권총을 든 채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더는 지체해서는 안 됐다.


“박사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때 뒤에서 셀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요환을 따라 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이트만은 없고 요환은 난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셀레나! 나를 믿어요! 시간이 없어요.”


셀레나에게 모든 것을 말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끈다면 바이트만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밑으로 뛰어내렸다.


뒤에서 셀레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떨어지면서도 눈을 감지 않고 지면을 응시했다.


지면에서부터 11m쯤에서 총을 쏴야 했다.


바이트만이 한 것을 자신이 못할 리가 없다고 자기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요환은 짧은 시간에 중력가속도와 자신의 중량, 거리 등을 계산하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자신의 체감보다 더 빠르게 몸이 낙하되었다.


지면에 가까워지자 그는 총을 지면을 향해 겨냥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블랙홀 안으로 들어왔고 곧바로 화이트홀로 나온 요환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화이트홀은 지면에서 불과 30c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허공에서 형성되었다.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요환이 갑자기 지면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요환을 보고 소리를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요환은 재빨리 많은 인파를 피해 바이트만이 뛰어간 곳을 향해 달려갔다.


멀리서 달리고 있는 바이트만의 모습이 보였다.


바이트만은 요환 역시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뛰어내렸을 것으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환이 층계를 통해 성당을 빠져나온 시간을 생각해서 약간의 여유를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꽤 가까운 곳에서 요환이 그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박사님!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요환의 외침을 들었을 때 전혀 숨이 차지 않아 보였다.


반면 바이트만은 벌써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그는 요환에게 따라 잡힐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요환은 전속력으로 바이트만을 향해 달렸고 점점 거리는 좁혀져 갔다.


오전이라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았고, 마땅히 몸을 숨길만 한 건물도 없었다.


이제 둘의 거리는 더욱 좁혀져 요환이 손만 뻗으면 잡힐 만한 거리가 되었다.


요환은 계속 달리면서 바이트만을 불렀고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환은 손을 뻗어 바이트만을 잡았다.


“박사님!”


바이트만의 어깨를 잡자 그가 달리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 요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를 보고 독일어로 뭐라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독일어를 쓰는 바이트만을 요환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당신은 누군가요?”


바이트만이 영어로 물어보자 요환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박사님 지금 저랑 뭐 하시는 거예요?”


요환은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갑자기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 박사의 태도는 뻔뻔함을 넘어서 정말 자연스러웠다.


연기가 아닌 정말로 자신을 모르는 눈빛이었다.


그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바이트만의 어깨를 잡은 두 손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바이트만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30대 중반쯤 되는 사람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바이트만 박사보다 손 한 뼘은 더 큰 젊은 독일인이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전혀 보지도 못한 사람의 어깨를 잡고 자신이 흔들고 있는 꼴이 된 것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요환을 보며 앞의 사내가 다시 영어로 물어봤다.


“혹시 나를 아나요?”


이젠 목소리조차 달랐다.


요환은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붙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았다.


“괜찮으시다면 이 손을 놓고 말해줄 수 있나요? 그리고 내 이름은 바이트만이 아니에요. 사람을 잘못 보셨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요환이 그의 손에 힘을 풀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착각했나 봐요...”


요환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꼬리를 흘렸다.


“볼일 없으면 가던 길을 가겠습니다.”


사내는 요환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자신의 길을 걸었다.


요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요환은 곰곰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정리해 보았다.


성당을 나온 그는 멀리서 달리고 있는 바이트만 박사를 보았다.


그리고 부리나케 달려 그를 따라잡았다.


분명 자신과의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사람은 바이트만이었다.


아니, 그를 잡아 세웠을 때도 분명 바이트만이었지만 그가 고개를 돌리면서 그의 몸이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설마?’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단어가 있었다.


‘바이트늄!’


언젠가 바이트만의 박사의 연구실에 있을 때 그가 하는 연구를 참관했던 것이 기억났다.


바이트늄이 체내로 들어온 순간 요환은 지진을 경험했고, 창피하게도 책상 밑에 들어가 벌벌 떨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바이트늄이 만들어낸 ‘퍼펙트 일루젼’의 무서운 점은 말 그대로 단순한 환각상태가 아닌 복용자로 하여금 일종의 최면과 같이 실험자가 부여한 암시와 환각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깨어 있는 상태에서 최면에 걸린 것과 같았다.


이 무색무취의 약물에 본인이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언제부터 걸린 것일까?’


기껏해야 퍼펙트 일루전의 지속 시간은 10분 남짓.


시간을 계산해 보니 이미 그는 성당 첨탑에서 바이트만과 대화할 때 최면에 걸린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마 요환과의 대화 중 무색무취의 스프레이형 액체를 분사해서, 바이트늄을 요환의 체내에 주입해 그의 뇌파를 왜곡시켰을 것이다.


10분간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허상이란 사실에 요환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바이트만이 난간에서 떨어진 것도 그가 심어둔 암시일지도 몰랐다.


그걸 보고 자신도 따라 난간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뛰어내렸다는 사실에 다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요환을 바이트만 박사는 어디선가 지켜봤을 것이고, 요환으로 하여금 멀리 보이는 한 남성을 박사로 착각하게 만들어 쫓아가게 만들고 그는 유유히 이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바이트만 박사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허탈하게 자리에 앉아있던 요환에게 어느새 도착한 셀레나가 다리를 쩔뚝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요환에게 이상한 말들을 퍼부었다.


“박사님! 도대체 왜 바이트만 박사를 그냥 놓아준 거예요?”


“네?”


셀레나의 말에 요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셀레나도 최면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요환은 셀레나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하지만 셀레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요환. 분명 바이트만 박사였어요.”


셀레나의 말에 요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대체 셀레나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바이트만 박사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셀레나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요환과 셀레나는 독일 경찰의 협조를 받아 근처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바로 즉석에서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을 확인한 요환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영상 속에 나오는 자신은 분명 바이트만 박사와 대화를 하고 그를 그냥 순순히 보내주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바이트만 박사는 요환이 그를 잡았을 때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인 척 행동을 하며, 요환에게 모종의 방법으로 바이트늄을 투약한 거였다.


그리고 그가 건 최면은 요환이 바이트만 박사를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모습도 목소리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바이트만 박사를 보며, 반대로 요환은 지금 본인이 최면에 걸린 것이 아닌 10분 전에 걸려 그 최면이 이제 막 끝난 것으로 생각하게 유도한 것이었다.


바이트만이 처음 요환에게 잡혔을 때 모르는 척했던 행동이 신의 한 수였다.


결국, 그 행동으로 인해 요환은 자신이 이미 ‘퍼펙트 일루젼’에 걸려 있었고, 이제 그 최면에서 풀렸다고 믿게 만든 것이었다.


셀레나가 요환을 굳게 믿고 있어서 그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요환이 그냥 바이트만을 놓아준 것처럼 보였다.


바이트만은 이것까지 노려 셀레나가 요환을 의심하게끔 할 속셈이었다.


치밀한 바이트만의 작전에 속아 넘어간 요환은 기가 찼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셀레나, 몸은 좀 어때요?”


생각을 정리한 요환이 이제야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셀레나를 바라보았다.


셀레나는 요환 옆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아직도 걷는 것이 불편해 보였다.


그녀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멀리서부터 요환을 쫓아왔던 것이었다.


“괜찮아요. 아직도 조금 몸이 저리네요.”


셀레나는 대성당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요환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요환을 두고 대성당 안으로 들어온 셀레나는 그 남성과 바이트만 박사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성당 맨 앞쪽 의자에는 다른 남성이 앉아 있었고 의자 밑에는 네모난 가방이 들어있었다.


셀레나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모종의 거래를 하는 느낌이었다.


주위에 위험요소가 없다고 판단한 셀레나는 경계를 풀고 관광객인 척 바이트만의 바로 옆까지 다가갔다.


둘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였다.


남성과 대화 중이던 바이트만이 갑자기 등을 돌더니 셀레나 쪽으로 다가왔다.


셀레나는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관광객인 행세를 하며 성당을 구경하는 척했다.


바이트만이 더욱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옆을 거의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저려 오면서 하늘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면서도 셀레나는 끝까지 바이트만을 바라보았다.


바이트만은 그녀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후 첨탑 위로 올라갔다.


그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아마도 신경 이완제를 쓴 것 같아요. 아마 몸에는 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바이트만 박사님은 본래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 사람을 해치지 못하거든요. 더군다나 당신 같은 미인이라면 절대 손을 못 대는 성격이죠.”


요환이 미인이라고 말하자 셀레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요환은 그녀를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어 주었다.


셀레나는 요환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아직도 걷는 것이 불편해요?”


아직도 다리에 온전히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나저나 바이트만 박사님과 함께 있던 남자는 못 봤나요?”


“아마도 당신이 쓰러졌을 때 제 주위를 돌리고 밖으로 나간 것 같아요. 첨탑 위에는 바이트만 박사님밖에 없었거든요.”


요환은 바이트만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며 그와 있었던 대화를 셀레나에게 들려주었다.


“확실히 그가 왓슨 박사를 죽이지는 않은 것 같네요.”


셀레나가 약간 다리를 쩔뚝거렸다.


그런 셀레나를 요환이 부축해 주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그를 어떻게 찾아야 하죠? 바이트만 박사님도 핫산 박사 이야기를 했어요. 그가 바이트만의 돈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핫산이 돈 때문에 모든 일을 벌였을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그렇다면 셰이먼 교수를 굳이 죽일 이유가 없죠.”


요환의 말대로 핫산이 돈이 목적이었다면 셰이먼 교수까지 죽일 이유가 없었다.


“일단은 바이트만 박사를 찾아야겠어요.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니 그를 따라잡을 수도 있어요. 제가 독일 지부에 그를 수배해 둘게요.”


우선 요환과 셀레나는 뢰머 광장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바이트만 박사를 잡는 것은 독일 경찰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듯했다.


셀레나가 아직도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 잘 걷지 못해서 요환의 부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상태로는 이제 쩔뚝거리며 걷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요환에게 부축을 받으며 셀레나가 말했다.


“신경 이완제가 이 정도로 독하나요?”


“아니요. 보통이면 그렇지 않을 텐데. 그건 바이트만 박사님께서 만드신 거니까요. 그는 생명공학 분야의 대가예요. 전혀 당신 몸에 해롭지 않을 거라 제가 보장합니다.”


요환은 최대한 셀레나를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저에게 신경 이완제를 썼을까요? 그와 몸이 닿은 것은 잠시 스쳤을 때뿐인데.”


요환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엇인가 기억나듯 말했다.


“아마도 스치면서 당신의 몸에 뿌렸을 거예요. 액화 상태로 공기 중에 뿌려서 당신의 호흡기를 통해 신경을 마비시키는 거죠.”


“보통 신경 이완제이면 주사나 약물로 투입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런데 제 기억으로 박사님께서 동물을 이용한 실험을 하실 때 마취를 주사로 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뿌려서 하는 것을 종종 봤거든요. 조그만 실험용 쥐에게도 주삿바늘을 꽂지 못할 만큼 박사님은 마음이 여리세요.”


그렇게 둘이 말을 하는 사이 어느새 뢰머 광장까지 도착했다.


정오쯤 되자 뢰머 광장에는 관광객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한산했던 오전과는 달리 뢰머 광장은 사람들로 혼잡했다.


가까운 벤치에 앉으려고 셀레나를 부축하던 요환이 갑자기 몸이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박사님, 갑자기 왜 그래요?”


셀레나가 깜짝 놀라 요환을 바라보았다.


“방금 지나간 사람...”


순간 그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요환은 뒤를 돌아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벌써 그는 저 멀리 인파 속에서 사라져 갔다.


“박사님?”


“그 사람이에요. 파도바에서 왓슨 박사를 쏜 사람.”


“뭐라고요?”


요환은 부축하고 있던 셀레나의 팔을 뿌리치고 뒤를 돌아 달려갔다.


셀레나는 바닥으로 넘어진 채 손을 뻗어 소리쳤다.


이미 요환은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박사님! 안 돼요.”


요환은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그의 뒤를 쫓았다.


순간이었지만 자신을 스쳐 간 남성은 그가 파도바에서 어렴풋이 본 얼굴이었다.


비록 얼굴 전체를 보지 못했지만, 그가 지니고 있던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요환을 스치면서 웃고 있었다.


요환은 부아가 치밀어 아무 생각도 없이 그를 쫓았다.


곧 그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요환은 지체 없이 그의 등 뒤에 총구를 겨누었다.


사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당신 맞지?”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환은 다시 한번 총구로 그의 등에 찔렀다.


“손들어! 파도바에서 왓슨을 죽인 범인이 바로 당신이지? 당신 어떻게 여길 찾아왔어?”


사내는 요환의 말에 따라 두 손을 들었지만, 가만히 선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요환의 총이 진짜가 아닌 것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그의 협박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는지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한의 이마로부터 식은땀이 흘렀다.


“조용히 손든 채로 뒤돌아.”


요환은 그를 위협한 뒤 얼굴을 볼 심산이었다.


총을 들고 있는 손이 마구 떨려왔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여 사내를 경계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에 힘을 주고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사내가 엄청난 속도로 몸을 돌렸다.


어찌나 빠른지 마치 그의 모습이 잔상처럼 보였다.


그리고 복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껴졌다.


순식간에 뜨거움은 고통으로 변했고, 상대가 자신의 복부를 가격했음을 직감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요환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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