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과거)

by 프렌치힐

암흑에 가까운 검은빛을 띠는 구체는 허공 위에 떠서 울부짖듯 공명하고 있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검정에도 정도가 있다고 한다면 칠흑과 같은 어두움 밤을 상기시키는 색채였다.


아니 색이라고 하기에는 어둠이 짙었다.


색채 말고도 이전보다 훨씬 작아진 구체에서는 맨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강한 에너지의 흡입이 느껴졌다.


넓은 반경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주위의 빛마저도 흡수하기에 마치 구체에서 검은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 블랙홀은 화이트홀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육안으로 본다면 완벽한 투명. 화이트홀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실체를 왜곡시키는 느낌이었다.


전혀 색채가 존재하지 않지만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지는 구체가 역시 블랙홀을 마주 보고 공명하고 있었다.


요환은 조용히 입자가속기 쪽으로 걸어갔다.


“요환”


캐서린이 나직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그녀는 요환의 손을 굳게 잡고 있었다.


말을 잇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마치 전쟁터로 떠나는 연인을 붙잡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야만 했다.


요환은 캐서린의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자 앞머리 사이에 숨겨져 있던 이마가 드러났다.


요환은 살며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캐서린”


서로의 이름만을 불렀지만, 그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막상 블랙홀을 보니 덜컥 겁이 나는 요환이었다.


그만큼 블랙홀은 주위를 압도하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쉽사리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때 핫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화이트홀이 생겼다고 해도 저렇게 작은 구멍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갑니까? 나는 이해가 전혀 안 되네요. 그렇지 않나요? 바이트만 박사님?”


핫산은 팔짱을 낀 채 바이트만의 동의를 구했다.


생명공학 쪽의 권위자인 바이트만의 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더욱 피력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글쎄요. 저도 저 구멍으로 사람이 들어갈지 모르겠습니다. 다 생각이 있겠지요?”


바이트만 역시 초조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바이트만이 말을 마치자마자 옆쪽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블랙홀은 공간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저 블랙홀에 손을 대는 순간 무서운 속도로 왜곡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갈 것입니다. 제 눈에는 아주 큰 동굴 입구로 보입니다만...”


감정을 전혀 알 수 없는 기계음이지만 자신에 차 있는 어투가 느껴졌다.


“나 역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왓슨 역시도 내심 걱정됐지만, 워커의 말에 동의했다.


요환은 다시 블랙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묘한 끌림이 있었다.


요환은 두 눈을 꿈뻑거리며 한걸음 씩 발걸음을 옮겼다.


축제 분위기였던 연구실 안은 이내 다시 엄숙해졌다.


모두가 초조한 모습으로 요환을 바라보았다.


한 발자국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블랙홀만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새 블랙홀은 그의 앞에서 공명하고 있었다.


전과 달리 블랙홀은 아래위로 약간씩 흔들리고 있었다.


“요환, 빨리 들어가지 않는다면 블랙홀이 소멸해 버린다네.”


왓슨 박사가 재촉하는 말투로 말했다.


요환은 두 눈을 감았다.


‘나는 언제부터 미래로 가는 꿈을 꿨을까?’


언제부터 미래로 향하는 꿈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동기로 그 꿈을 갖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문턱에 와 있었다.


‘여기에 들어가면 얼마나 먼 시간이 흘러 있을까?’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블랙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요환은 고개를 돌려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있었다.


차마 요환이 블랙홀에 들어가는 것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요환은 마음을 가다듬고 손을 들어 블랙홀을 향해 가져갔다.


블랙홀은 더욱 심하게 아래위로 요동치고 있었다.


“요환 어서!”


재촉하는 왓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환은 두 눈을 감고 손을 갖다 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연구실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골프공 만한 검은 구체에 손을 댄 요환은 순식간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그의 몸이 접히는 듯이 보여서 몇몇 사람들은 요환의 척추가 꺾여버린 것은 아닌지 수군대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이윽고 수군대는 소리가 잦아들고 침묵이 흘렀다.


이제 모두 손을 모으고 요환이 무사히 블랙홀 안에서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캐서린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요환을 기다렸다.


약 10분 정도가 지나자 화이트홀 부근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공간이 심하게 일그러지면서 물결과 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화이트홀에서 토해내지 듯 요환이 튕겨 나왔다.


“요환!”


캐서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앉아 있던 왓슨과 다른 박사들도 모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숨죽여 요환을 바라보았다.


요환은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 동안 말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보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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