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다시 어둠이 그를 감쌌다.
‘이곳은 어디지? 블랙홀 안 인가?’
몸이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심장은 진정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요환은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손가락에 힘을 주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은 그의 정신세계마저도 파괴할 것 같았다.
그때 한 줄기 빛이 그에게 비추었다.
‘화이트홀인가?’
“요환-”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누가 나를 부를까?’
다시 애처롭게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요환은 귀를 기울였다.
“요환-”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던 목소리가 점점 가깝게 느껴졌다.
‘캐서린?’
캐서린이 그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캐서린은 죽었어.’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지 오래다.
점점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캐서린...’
가까이서 들을수록 그녀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잊을 수 없는 청아한 캐서린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이 모든 것이 한낱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 그가 아는 세 명의 사람이 죽었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그의 얼굴 밑으로 흘러내렸다.
눈물이 흐르면서 신기하게도 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요환은 다시 정신을 모아 손가락을 움직였다.
까닥-
검지를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요환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요환, 괜찮아요?”
흐릿하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캐서린?”
요환은 믿기지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한 캐서린이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정말 꿈이었을까?’
하지만 안개와 같이 흐릿했던 시야가 밝아지자 요환은 그녀가 캐서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해요. 요환. 전 셀레나예요.”
셀레나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요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뇨. 셀레나. 괜찮아요.”
요환은 허리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도 복부가 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의 복부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요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원인가요?”
요환은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아직 몸에 힘이 없었다.
요환은 자신의 왼손에 꽂힌 링거를 보았다.
“요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복부를 한 대 가격 당한 것으로 쓰러지다니, 저도 약골이 다 되었네요. 배 한 대 맞고 정신까지 잃을 줄이야.”
셀레나는 요환을 보고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배를 보세요. 그게 그냥 한 대 맞은 것 같나요?”
요환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복부를 보았다.
‘피?’
감겨 있는 붕대에는 흐릿하지만, 핏자국이 보였다.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나 보네요. 당신은 복부에 칼을 맞았어요. 살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예요.”
‘아, 내가 칼에 찔렸구나.’
요환은 멀뚱멀뚱 자신의 복부만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생명에 지장은 없어요.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와 혈관을 모두 비켜서 칼이 들어갔죠. 1cm 정도만 더 위에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갔다면 지금 당신은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몰라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삼 일정도 쉬면 바로 퇴원할 정도의 상처래요. 정말 다행인 줄 아세요.”
‘아니, 우연이 아니야. 놈은 일부로 날 죽이지 않은 거야.’
요환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다.
복부의 충격이 있긴 했지만, 칼에 찔렸다고 하기에는 고통이 아주 심하지 않았다.
요환은 자신의 왼손에 있는 링거를 뽑으려고 했다.
“요환! 뭐 하는 짓이에요?”
“캐서린, 바이트만 박사님이 위험해요. 놈이 분명 바이트만 박사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의 말을 듣자 셀레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셀레나의 표정을 본 요환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요환.”
셀레나는 조용히 신문을 보여주었다.
독일 신문사의 영문판 신문이었다.
신문의 첫 면 첫머리글자를 읽자마자 요환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탈옥 후 행방이 묘연했던 천재 과학자 바이트만 프랑크부르크에서 살해된 채 발견]
자신이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럴 수가’
요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언제 돌아가신 거죠?”
“어제요. 당신이 쓰러진 바로 그날이죠.”
“어제라니?”
어제라는 말에 요환은 깜짝 놀랐다.
“당신이 여기 입원한 지 벌써 하루가 지났어요.”
하루가 지났다는 말에 요환은 자신의 몸 상태도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자가 죽인 건가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아까 독일 경찰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사망추정 시간을 보니 당신을 찌르기 몇 분 전이더군요.”
요환이 그를 만났을 때 이미 그는 바이트만 박사를 죽인 상태였다.
그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바이트만 박사도 칼에 찔려 죽었어요. 뢰머 광장 뒤쪽 골목에서 시신이 발견됐죠. 그는 단 한 번에 급소를 맞아 죽었어요. 전문가들 말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즉사했을 거라고 그러더군요. 아마 사람들이 많은 터라 총을 쏘지 못했을 거예요.”
‘역시나 나를 일부러 살려 준거야.’
셀레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사내가 자신을 일부러 살려주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당신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셀레나는 머그잔을 요환에게 건넸다.
진한 커피 향이 그의 코를 자극했다.
“캐서린도 자주 저에게 커피를 타주고는 했죠.”
요환은 셀레나가 타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캐서린도 당신만큼 아름다웠죠.”
“요환...”
셀레나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요환이었다.
벌써 그가 미래로 온 후부터 세 명이나 죽었다.
무엇보다 요환에게 있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사랑하는 연인 캐서린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환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커피는 당신이 더 잘 타는 것 같아요.”
커피를 한 잔 마시니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곧바로 좀이 몰려왔다.
“요환, 눈 좀 더 붙여요.”
“그래도 될까요?”
“네, 그리고 있다가 당신에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요환은 누운 채 셀레나가 하는 말을 들었다.
“일단은 한숨 더 쉬어요. 요환. 옆에서 기다릴게요.”
대답할 힘도 없고 몸도 무거운 터라 요환은 고개를 끄덕인 채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