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환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주위에 모여 있던 과학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고 연구실 안에는 요환을 포함한 왓슨 박사와 캐서린 그리고 헤드마스터 과학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요환.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가?”
핫산은 무엇인가에 안달 난 사람처럼 요환을 재촉했다.
그러한 핫산을 보며 왓슨이 나무랐다.
“괜찮아요, 박사님. 머릿속에서 정리가 조금 필요한 것 같아요.”
캐서린이 머그잔을 요환에게 건네어 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은은한 커피 향이 흘러나왔다.
요환은 커피잔을 받고 한 모금 입을 대었다.
종종 캐서린이 그에게 커피를 타주었지만 사실 그녀가 타준 커피는 조금 썼다.
평소에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는 요환에게 있어서 캐서린의 아메리카노에는 시럽 몇 스푼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요환은 항상 내색하지 않고 캐서린이 타 준 커피 향을 음미하며 마셨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 요환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모두들 요환의 주위에 둥글게 모여 앉아 요환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워커박사도 여느 때와 달리 실험이 끝났는데도 자리에 남아 요환을 기다렸다.
“휴”
요환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일단은 안에서 시간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시간을 재어 보지 않았지만 제가 블랙홀 안에 들어간 후 약 10분이 지났다고 했는데 제 체감상으로도 딱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다음번에 블랙홀 안에 들어간다면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어 봐야겠어요. 혹시나 1분 정도는 더 미래로 왔을 수도 있으니까요.”
요환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꿈에도 그리던 블랙홀 안에 들어갔다가 나왔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시간 왜곡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1~2분 정도 미래로 온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괜찮네. 요환. 자네는 충분히 수고했어.”
왓슨은 요환이 상심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요환의 얼굴은 밝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어둡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실험이 완전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블랙홀 안을 처음 구경한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블랙홀 안은 어떻던가?”
이번에도 핫산이 요환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말했다.
“그게 말이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요환이 뜸을 들이자 모두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믿기지 않지만, 블랙홀 안은 세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세 영역?”
바이트만 박사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요환을 바라보았다.
“일단 바깥에서 볼 때는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의 거리가 약 3m 정도 되었는데 안에서는 확실히 더 길었어요. 블랙홀 안으로 들어선 후부터 거의 쉬지 않고 계속 걸었거든요. 처음 들어가서 조금 머뭇거리고 또 주위를 돌아보면서 걸었으니까 그 속도와 시간을 어림잡아 보면 웜홀의 길이는 약 500m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웜홀은 서로 다른 특성의 세 영역이 존재했는데 마치 각기 다른 세 개의 방을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영역 사이의 명확한 경계는 없었지만 뭔가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요. 그중 가운데에 있는 영역이 가장 길었고 또 가장 신비했어요.”
마치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났다 돌아온 모험가 같은 말이었다.
“일단 시간여행은 실패했지만, 블랙홀 안은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네요?”
요환의 옆에 앉아 있던 캐서린이 요환의 말을 거들며 말했다.
“확실히 블랙홀 안에 세 가지 영역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말이군. 요환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겠나? 자네가 말한 그 세 개의 영역에 대해서?”
왓슨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블랙홀은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후에 요환은 각각 영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명칭을 붙였다.
마치 각기 다른 방과 같다고 해서 ‘세 개의 방’이라고 불렀다.
이 ‘세 개의 방’을 블랙홀에 처음 들어온 순서부터 ‘꿈의 방’, ‘선택의 방’, ‘각성의 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선 그 골프공 만한 크기의 구체로 인간이 빨려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요환은 신기했다.
생명공학 전공인 바이트만 박사도 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인간이 작은 입구로 들어가게 되면 골절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연체동물이 아닌 이상 그 작은 입구로 성한 몸이 되어 들어갔다 나올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블랙홀에 손을 대자마자 그의 몸은 빨려 들어가듯 블랙홀 안으로 들어갔다.
1초의 시간도 안 될 듯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그는 블랙홀 내부로 들어와 있었다.
요환은 처음 블랙홀 안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는지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만져보았다.
허리가 약간 뻐근한 느낌이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요환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몸에 묘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꼈지만 워낙 빠르게 벌어진 일이라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마치 그의 몸이 분해되었다가 재조립된 느낌이었다.
블랙홀의 안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요환은 그 안이 무중력 상태 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중력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다만 지상과의 중력보다는 비교될 정도로 작은 중력이었다.
왓슨 박사는 이 상태에 ‘반중력’ 상태라는 새로운 단어로 이름 붙였다.
‘반중력’ 상태는 중력과 무중력의 중간이라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중력이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중력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중력이 있는 지상에서의 특징과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의 무중력 상태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묘한 공간이었다.
블랙홀 안에는 발을 디딜 만한 지면과 같은 공간이 없었다.
만약 블랙홀이 무중력 상태라면 그 공간을 둥둥 떠다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환은 허공을 그냥 걸어갔다.
지면이 보이지 않는 허공이었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마치 자기가 지면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일단 블랙홀 안에 들어오게 되면 자신이 들어왔던 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암흑 속에서 앞에 희미한 빛이 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곳이 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공간은 마치 묘한 분위기를 가진 영역이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몽롱한 느낌이 들었고 마치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술을 즐겨하지 않아 취해 본 적이 없었지만, 사람이 취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면 혹시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몽환적인 느낌의 공간이었다.
본래 블랙홀은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이를 지상에 만듦으로써 그가 만든 블랙홀은 우주와 지구의 속성을 모두 가진 공간을 만들었다.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형성된 ‘반중력’이 바로 지구상의 중력에 익숙했던 인간으로 하여금 몽환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였다.
웜홀의 첫 영역인 만큼 공간은 불안정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도 지속해서 공간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만든 블랙홀의 지속 시간은 약 5분 안팎.
5분이 지나자 블랙홀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10분 후 요환이 밖으로 나온 뒤 곧 화이트홀이 사라졌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그가 지체했다면 웜홀 사이에서 갇혀 버렸을지도 몰랐다.
블랙홀은 형성되자마자 붕괴가 시작되었다.
블랙홀이 아래위로 진동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입구(블랙홀)와 가장 가까운 공간인 첫 번째 방은 블랙홀의 붕괴에 의한 지속적인 공간 왜곡과 함께 ‘반중력’ 상태의 몽환적인 느낌이 합쳐져 마치 꿈속을 걷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서 요환은 이곳을 ‘꿈의 방’이라고 불렀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오히려 꿈을 꾸는 느낌을 들게 했다.
그렇게 약 2분을 걷자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경계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지 않고 애매모호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특성의 공간이 확연하게 존재했다.
요환은 그 공간을 “선택의 방”이라고 불렀다.
두 번째 영역은 매우 신비로운 곳이었다.
‘꿈의 방’ 끝자락 즈음에서부터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첫 번째 영역이 완벽한 어둠이라면, 두 번째 영역은 초저녁 혹은 동틀 녘의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경계를 넘는 순간부터 새로운 영역이라는 느낌을 받는데 순간적으로 배나 더 몽환적이 느낌이 든다.
발 한 발자국 떼는 것도 힘이 들어갈 만큼 강력한 중력이 느껴졌다.
고개가 떨구어 질만큼 센 힘이 요환을 끌어당겼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치 늪을 건너가듯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또한,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또 다른 수많은 자신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또 다른 요환이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이며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요환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명의 내가 있지만, 그 모두가 하나의 ‘나’였다.
요환의 이 말을 들은 다른 과학자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공간 안에 수많은 또 다른 내가 존재하며 이를 내가 모두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이었다.
성미가 급한 핫산은 못 믿겠다며 자신도 블랙홀 안을 들어가겠다고 난동을 부렸다.
마지못한 왓슨 박사는 핫산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잠시 후 블랙홀에서 나온 핫산은 마치 유령을 본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환은 이러한 현상을 ‘잔상 효과’라고 불렀다.
웜홀 중에 가장 가운데 있는 방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특한 영역이었다.
‘꿈의 방’이 공간이 왜곡된 영역이라면 ‘선택의 방’은 시간이 왜곡된 공간이었다.
시간의 왜곡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켜버린 공간이었다.
시간이란 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일직선 상에 놓인 하나의 규칙적인 체계를 말하지만, 이것이 왜곡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점으로 모이게 된다.
즉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과거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요환이 봤던 잔상들이 수많은 시간의 조각들 속에서 나타난 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 다른 개체 같지만, 요환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수많은 요환들은 과거와 미래의 ‘잔상’이었다.
‘선택의 방’은 가장 긴 공간이었다.
웜홀의 3분의 2 이상이 ‘선택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선택의 방 끝자락으로 오면 무거웠던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수많은 잔상들 중의 하나가 선택되고 나머지는 사라지게 된다.
요환이 이 영역을 ‘선택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마치 많은 또 다른 ‘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역이었다.
이 신비한 영역을 지나면 나오는 것이 세 번째 영역 ‘각성의 방’이었다.
‘각성’이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블랙홀 안으로 들어와 ‘반중력’ 상태였던 ‘꿈의 방’을 지나 중력이 세지는 ‘선택의 방’까지 지나게 되면 몽환적인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고 중력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영역이 나온다.
그래서 요환은 이 영역을 ‘각성의 방’이라고 불렀다.
이 영역은 앞의 두 방보다도 훨씬 짧았고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단지 앞에 보이는 빛이 더 밝아졌을 뿐이었다.
웜홀의 끝자락에 오면 ‘꿈의 방’에서부터 보였던 빛의 근원을 알 수 있다.
밝은 빛을 내는 구체가 암흑 가운데 떠 있는데 처음 밖에서 본 블랙홀의 모양과 크기와 흡사했다.
골프공 정도 크기의 둥근 구체가 허공에 떠서 진동하고 있었다.
요환은 직감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그 구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순간 처음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나며 바깥으로 내뱉어졌다.
요환은 몇 번의 실험을 반복하며 웜홀 안을 더욱 자세히 관찰하였다.
그 결과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은 블랙홀 안보다 바깥이 확실히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것이었다.
실험할 때마다 달랐지만 바깥에서 시간을 재면 안에서 잴 때보다 약 2-3분 정도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즉 이 블랙홀을 통해서 할 수 있는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고작 최대 3분 정도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블랙홀 안에서 내는 소리를 밖에서는 들을 수 있지만, 밖에서 내는 소리가 안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반대로 블랙홀 밖에서 안으로 전화를 걸면 받을 수 있지만, 블랙홀 안에서 밖으로 전화를 걸지 못했다.
즉 음파의 경우 안에서 밖으로의 전달만 가능했고 전파의 경우 밖에서 안으로의 전달만이 가능했다.
세 번째는 블랙홀을 통한 공간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요환이 만든 블랙홀과 화이트홀 간의 거리는 3m 정도 되었다.
하지만 입자가속기의 회전력을 크게 올리면 블랙홀과 화이트홀 간의 차이가 최대 10m 이상 벌어졌다.
대신 바깥에서의 거리는 10m이지만 웜홀의 길이는 더욱 짧아졌다.
특히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회전속도를 올리게 되면 기존의 세 개의 방들이 모두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렇게 만든 웜홀은 단지 캄캄한 암흑만이 존재했고, 중력의 이상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화이트홀이 벽을 넘어서도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실험 중 연구실 밖으로 화이트홀이 생성된 일도 있었다.
어느 공간이든 구애받지 않고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만들어 공간이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발견과 성과 속에서도 요환은 그리 기쁘지 않았다.
‘고작 3분의 미래밖에 가지 못하다니.’
그의 마음은 오로지 미래로의 시간여행에만 쏠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