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현재)

by 프렌치힐

“소개할게요. 이쪽은 스미스예요.”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요환의 병실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스미스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저는 안요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했다.


그런 요환의 표정을 봤는지 셀레나가 말을 덧붙였다.


“아까는 설명을 다 못 했는데 스미스는 UN에서 대테러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분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제 상관이기도 하죠.”


셀레나의 상관이라는 말에 요환은 왠지 모르게 더 긴장되었다.


“나는 스미스라네.”


그는 성 대신 자신의 이름만 밝혔다.


스미스의 목소리는 굵고 카리스마가 흘러넘쳤다.


그의 얼굴은 테러를 막는 사람보다 오히려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 곳곳이 상처투성이에다가 왼쪽 목 옆으로는 긴 흉터가 나 있었다.


‘완전히 테러리스트처럼 생겼는걸.’


험악한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상대를 압도하는 분위기는 영락없는 악당의 모습이었다.


그런 요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셀레나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책상에 앉아서, 근무를 하시는 분이지만 한 5년 전만 해도 바로 실전에서 뛰셨던 분이에요. 전 FBI 수석조사관이었고 이쪽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랍니다.”


굳이 셀레나의 설명이 없어도 스미스에게서는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그래서 어쩐 일로?”


“요환. 이번에 당신을 찌른 사람 얼굴을 확실히 봤나요? 확실히 파도바에서 본 사람이 맞나요?”


이번에도 스미스는 말하지 않고 옆에 있던 셀레나가 말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확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저번보다는 확실하게 본 것 같아요.”


“자네 상처를 좀 볼 수 있겠나?”


인사한 뒤로 아무 말이 없던 스미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요환은 허리를 말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아직도 상처 부위가 욱신거렸다.


스미스는 말없이 그의 상처 부위를 관찰했다.


“감탄스럽군.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야.”


셀레나는 스미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요환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일부로 그런 것 맞죠?”


“그래. 우리 요원 중에서도 저렇게 할 수 있는 이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거야.”


이미 요환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 스미스가 말했다.


“셀레나, 수술 없이 그냥 꿰매기만 했다고?”


“네. 의사 말로는 따로 수술이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큰 놈이 걸린 것 같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스미스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복부를 찔러 장기 손상 없이 그리고 큰 혈관을 피해 거의 피를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딱 저 부위를 찔러야 한다네. 세계에서 손꼽는 킬러들이 상대방을 해하지 않고 제압하는 방법이지. 저 부분에 칼을 찔리게 되면 순간적인 쇼크로 기절하게 되거든.”


스미스가 요환의 복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저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간다면 자네는 죽고 말았을 거야. 들은 바로는 뒤를 돌아보고 있던 상대가 갑작스럽게 등을 돌리면서 칼을 찔렀다는 것이 사실인가?”


“네. 사실이에요. 제가 총구를 겨누었는데도 서슴없이 저를 찔렀어요. 물론 총은 가짜였지만요.”


“녀석은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걸세. 아마도 자네가 총을 쏘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일 자신이 있었던 것이지.”


스미스는 고뇌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놈은 자네 몸에 칼을 1인치밖에 쑤셔 넣지 않았다네. 자로 잰 듯 딱 1인치를 빠른 속도로 찌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전 세계에 몇 명 없을 거야.”


스미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다.


요환은 자신의 몸에 칼이 들어온 상상을 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도 자네는 칼에 찔리는 순간 단순히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 당했다는 느낌만 받았을 거야. 그리고 바로 쓰러졌겠지.”


“맞아요!”


그가 말하지도 않은 정황들을 이야기하자 놀라웠다.


그는 마치 칼을 쥐고 있는 양 자신의 오른손을 가볍게 말아 쥐고 요환을 찌르는 흉내를 냈다.


“보통 킬러들이라면 자네의 몸에 이 주먹만 보일 정도로 칼을 박아 넣지. 하지만 녀석은 단 1인치만 자네의 복부에 칼을 찔렀지. 그러기 위해서는 팔을 휘두르는 힘과 속도, 칼이 들어가는 각도 그리고 뛰어난 동체 시력. 이 세 가지가 모두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네.”


파도바에서도 느꼈지만,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엄청난 킬러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또 그를 만나 두 번이나 살아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스미스는 자신의 셔츠 앞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요환에게 보내주었다.


“혹시, 자네가 본 자가 이 사람인가?”


요환은 스미스가 건네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사진을 보자마자 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맞아요. 이 사람이에요.”


사진 속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의 얼굴이 찍혀있었다.


요환이 봤던 것과는 달리 구레나룻까지 이어지는 수염은 없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뢰머 광장에서 언뜻 보았던 날카로운 눈빛이 분명 그가 확실했다.


“코드명 알제이(RJ). 본명은 아무도 몰라. 모두가 그를 알제이라고 부르지. 국적은 러시아. 나머지는 알려진 것이 없어. 그가 내 부하와 동료 6명을 골로 보냈지.”


스미스의 말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그에게 있어서도 사진 속의 남자는 증오의 대상임에 분명했다.


“이 사람은 테러리스트인가요?”


“아니. 테러리스트라기보다는 전문 킬러야. 의뢰를 받고 혼자 움직이는 킬러지.”


“하지만 파도바에서는 저와 캐서린의 뒤를 밟던 다른 남자들이 있었는데요?”


“나도 그 점이 이상하더군. 알제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 아마도 자네를 미행했던 자들은 그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었을지도 몰라.”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들을 미행했던 사람들은 요환과 셀레나를 쫓았을 뿐 전혀 위협을 주지 않았다.


사건이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우선 내가 궁금한 것은 그가 누구의 의뢰를 받았고 또 어떻게 자네가 있는 곳을 알았는지야.”


스미스가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핫산 박사가 거의 확실해요. 그리고 그는 제가 박사님들을 찾을 때마다 나타났어요. 아마도 박사님들의 위치를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저희가 도착했을 때 보란 듯이 그들을 죽인 것이고요.”


“가능성은 충분하네.”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여 요환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핫산 박사의 소재지도 찾아 주실 수 있을까요? 바이트만 박사를 찾았던 것처럼?”


“요환, 그건 어려워요.”


옆에서 조용히 있던 셀레나가 끼어들어 말했다.


“왜죠?”


“바이트만의 경우 고향이 독일이라 찾을 수 있었던 거예요. 핫산 박사의 경우 연고지가 인도이기 때문에 찾기가 어렵죠. 독일과 같은 EU 국가의 경우 우리 정보력이 상당하고 경찰 및 민간 협력까지도 가능하지만, 인도의 경우는 힘들어요. 정보도 부족하고, 그 넓은 땅 덩어리에 숨어 있으면 찾는 것이 너무 힘들죠. 물론 그가 자신의 조국에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 역시 아니지만요.”


“우선은 이렇게 하세. 핫산의 위치를 찾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네. 그 후에 나도 함께 동행하겠네.”


“네? 스미스 정말이에요?”


셀레나는 놀란 얼굴로 스미스를 바라보았다.


“자네 둘로는 나도 불안하고 또 그 녀석에게 갚을 빚도 있으니까. 자네는 괜찮겠나?”


갑작스러운 스미스의 제안에 요환은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나쁠 것이 없었다.


요환 역시도 이번에는 정말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번에 다시 그를 만난다면 그때 또 그가 요환을 살려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아닌 셀레나를 만난다면 분명 그녀를 죽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스미스. 잘 부탁드립니다.”


요환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스미스의 동행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요환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겨 있었다.


‘왜 그는 날 죽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내가 가는 곳을 알고 있었을까?’


‘혹시...’


요환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잊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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