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과거)

by 프렌치힐

“몇 분인가요?”


요환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42분 25초예요.”


캐서린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평소에 그가 쓰던 아날로그 손목시계가 아닌 스톱워치가 탑재된 전자시계를 팔목에 착용하고 블랙홀 안을 들어갔다.


그의 손목시계에는 10분 21초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30분이 조금 넘는군.’


요환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블랙홀에 들어갔다 나온 후 한 달 동안 실험이 계속되었다.


우주 끈의 양이 한정된 만큼 실험은 신중하게 계획되었다.


만약 기존에 있는 우주 끈을 전부 사용하게 된다면 모든 실험을 중단하고 버뮤다 제도로 잠수통을 메고 우주 끈을 찾으러 다녀야 할 판이었다.


블랙홀 안이 궁금하다고 떼를 쓴 핫산 외에 다른 사람들은 블랙홀 안을 체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우선은 미해결 된 문제를 푸는 것이 급선무였다.


요환은 한 달 사이 벌써 블랙홀 안을 수십 번이나 다녀왔다.


블랙홀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에는 흥분되고 두려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반중력’ 상태의 몽롱함도 이제는 적응이 다 된 지 오래였다.


그에게 블랙홀 안은 이제 또 다른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분명 그의 이론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워커 박사의 도움을 받아 화이트홀도 잘 만들어 냈다.


오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뜻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블랙홀 안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는 곧 그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에 기대감에 부풀어있었지만, 결과는 그의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자네 탓이 아니라네.”


왓슨 박사는 그런 그를 위로해 주었다.


“어쩌면 이 지구상에 블랙홀을 만든다는 사고 자체가 이론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지구라는 물리법칙 안에서는 시간 왜곡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네. 내 생각에 30분이라는 시간도 엄청난 것이야.”


엄밀히 말해서 그가 완전히 실험에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3분 남짓 차이가 나던 시간은 어느새 30분 정도로 늘었다.


하지만 그는 성이 차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가 원하는 시간여행은 단 30분짜리 미래 여행이 아니었다.


왓슨 박사가 소지하고 있던 우주 끈은 점점 양이 줄어가고 시간이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에 요환은 잠시 실험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를 왓슨이 불렀다.


“요환. 아마도 이쪽에 있어서 다른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다른 전문가라면 천체물리학에 있어서 다른 권위자가 있나요?”


요환은 왓슨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아마도 현 천체물리학에 있어서는 자네가 지구상 최고의 권위자일 거야. 그 누구도 블랙홀을 만들지 못했지. 아니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네. 이제는 자네가 나보다 더 뛰어난 과학자가 됐네. 내가 말하는 것은 천체물리학 쪽이 아니라네.”


“그럼 다른 분야를 말씀하신 것인가요?”


“공간학이라고 들어보았나?”


“공간학이요?”


공간학이란 말에 요환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였다.


“공간학이라는 학문이 있는데 학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학문이지.”


“처음 들어보는 학문입니다. 건축과 관련된 분야인가요?”


“건축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 어느 카테고리에 가깝기 어려울 만큼 독립적인 분야지. 말 그대로 공간을 연구하는 학문이야.”


요환은 공간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쪽에 최고 권위자가 있다네. 내 생각에는 시간의 왜곡 문제는 더 이상 천체물리학의 숙제가 아닌 것 같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의 이론은 완벽해. 워커 역시도 인정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공간과 차원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네.”


‘공간의 문제라...’


확실히 그의 이론에는 문제가 없었다.


왓슨의 말처럼 그에게는 공간에 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우리가 배운 물리적 공간과 차원에 대해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해석을 해 줄 거야. 아마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걸세. 자네만 찬성한다면 우리 연구실로 초대하고 싶다만.”


“당연히 저는 찬성입니다.”


“좋네. 그렇다면 자네가 직접 캐서린과 함께 가서 모셔오도록 하게나.”


“제가요?”


갑작스러운 왓슨의 말에 요환은 깜짝 놀랐다.


“요 1년간 육지로 나가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기분전환 할 겸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오는 것도 자네한테 좋을 거야.”


왓슨의 말대로 바벨의 후예에 들어온 1여 년 동안 육지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가끔 답답한 지하가 싫증이 나고 태양이 보고 싶을 때면 캐서린과 함께 섬 위로 올라간 적은 많았다.


특히 그는 주말에 섬 주변을 산책하거나 캐서린과 함께 먼바다까지 배를 타고 나갔다 오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자 그 역시도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요환의 마음을 눈치챈 왓슨이 그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요환은 그간의 실험을 중단하고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 요환의 마음을 알아차린 왓슨이 그를 격려했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게나. 바벨의 후예의 일원으로서 동료를 불러 모으는 것 역시도 자네가 배워야 하는 것이라네. 우리는 항상 좋은 자원을 필요로 하거든.”


갑작스러운 왓슨의 제안이었지만 내키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왓슨 말처럼 실험을 재정비하기에는 그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캐서린과 함께한다는 생각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그들이 바벨의 후예 공식 연인이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인 왓슨 역시도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연인과 함께 하는 바깥나들이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박사님 그분은 어디에 계신가요?”


“여기서 조금 멀지만, 자네에게는 익숙한 곳일 거야.”


자신에게 익숙한 곳이라는 말에 요환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사실 익숙하기보다는 자네의 고향과 가까운 곳. 바로 일본이라네.”


일본이라는 말을 듣자 요환도 가슴이 설렜다.


비록 그의 고향 대한민국은 아니었지만, 고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이곳에는 요환을 포함한 몇몇 동양인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인도인이었다.


같은 아시아 대륙이었지만 인도인은 거리가 느껴졌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모습을 지닌 많은 동양인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기뻤다.


오랜 시간 한국에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국에 대한 향수도 있었다.


“내친김에 지체할 것 없이 내일 바로 떠나게나. 내가 연락을 미리 해두겠네.”


“알겠습니다. 박사님.”


자신의 연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사랑하는 캐서린과 함께하는 오래간만의 바깥 여행에 그는 몹시 흥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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