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요환과 셀레나는 한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아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여유 부릴 시간은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요환, 몸은 괜찮아요?”
“덕분에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요환은 자신의 복부에 손을 대 보았다.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셀레나가 이틀 내내 옆에 있어 준 탓에 그는 생각보다 하루 일찍 퇴원할 수 있었다.
‘캐서린...’
그런 셀레나를 보니 더욱 캐서린이 생각났다.
항상 그가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었던 사람이 바로 캐서린이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요환이 없었을 것이다.
캐서린을 향한 그리움이 더욱 커질수록 그도 모르게 셀레나가 가깝게 느껴졌다.
“혹시 핫산 박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있는 정보가 있나요?”
셀레나가 독일식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녀의 작은 입 옆에 빵조각이 묻어 있었다.
요환은 자신의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 주위를 닦아 주었다.
셀레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그가 인도인이란 것 외에는 거의 알지 못해요.”
“우리 쪽에서도 애를 먹고 있는 것 같네요. 우선은 인도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인도 땅이 워낙 넓기도 하고 또 만약 그가 인도의 큰 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에 잠적해 있다면 도저히 찾을 길이 없어요.”
셀레나가 다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정말 핫산 박사님이 모두를 죽였을까요?”
요환이 근심 어린 얼굴을 띠며 말했다.
무릇 1년 전 (그의 기억 속에는 1년 전이지만 실제로는 4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가 처음 블랙홀 안을 들어갔다 나오는 데 성공했을 때 만해도 모두가 얼싸안고 기뻐했다.
왓슨 박사는 바벨의 후예 사람들을 모두 가족처럼 여겼고 요환 역시 그러했다.
아무리 핫산이 자신의 실험을 심하게 반대했다고 해도 왓슨을 죽일 이유는 없었다.
그가 아무리 돈에 눈이 멀었어도 바이트만을 죽일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핫산은 그랬다.
더욱이 핫산이 캐서린을 죽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생각할수록 일이 복잡해져 갔다.
지금 남아 있는 헤드 마스터는 단 두 명.
그중 핫산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내가 모르는 다른 음모가 있을지도...’
요환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셀레나를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만약 알제이가 내가 갈 곳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누군가 우리의 계획을 그에게 말해주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요환은 다시 셀레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요환, 또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요환의 시선이 느껴졌던지 셀레나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에요. 셀레나.”
갑작스러운 셀레나의 물음에 요환은 당황했다.
셀레나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식사에 전념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때 식사를 하던 요환 일행의 테이블 앞에 한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식사가 다 끝나지 않았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스미스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미스, 혹시 핫산에 대한 정보를 찾으셨나요?”
“아니, 그 친구 어디 숨었는지 쥐꼬리도 보이지 않더군.”
한껏 기대했던 셀레나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있을 법한 곳을 알만한 녀석을 찾았어. 어젯밤 알제이가 인도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더군.”
알제이란 말에 둘은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가능성은 두 가지. 하나는 놈의 목표가 핫산이거나. 그게 아니면 핫산이 그의 고용인이던가. 어쨌거나 그가 인도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 핫산과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번에야 말로 그를 꼭 잡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거야”
스미스의 눈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내가 괜한 오해를 했던 것 같군. 우리의 정보를 누군가가 빼돌린 것이 아니라 그는 이미 모든 박사들의 위치를 알고 있었어. 아마 핫산 박사가 그의 다음 타깃일 거야.’
“뉴델리로 향하는 비행기는 30분 후 출발. 자 어떻게 할 텐가? 느긋하게 베를린 관광을 하고 내일 비행기로 출발할 텐가? 뉴델리행 비행기는 하루에 한 번밖에 없더군.”
스미스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의 험악한 얼굴은 지난 시련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뇨. 지금 바로 출발하죠. 30분이면 충분해요.”
셀레나가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마저 입에 집어넣었다.
“30분이면 충분하다고요? 여기서 베를린 공항까지는 딱 30분이 걸리는데요?”
요환이 셀레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30분도 많아요. 저에게 5분만 주면 우린 비행기를 탈 수 있어요.”
그 말을 하더니 셀레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요환을 재촉했다.
“요환, 빨리 갑시다. 시간을 많이 벌지는 못했어요. 지금 가면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요환의 질문에 셀레나는 미소를 지었다.
“간단해요. 비행기를 좀 묶어 두었어요.”
“어떻게?”
“우리 쪽 독일 지부 사람들에게 뉴델리행 비행기에 테러리스트들이 위조지폐를 화물칸에 잔뜩 싣고 탔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죠. 아마 지금쯤이면 독일 경찰들이 난리가 났을 거예요. 일단 비행기에서 다 내리게 하고 비행기 안에 쌓아 두었던 짐도 다 빼고 일일이 검사할 거예요. 생각해 보니 여기서 커피 한잔하고 천천히 가도 충분하겠군요.”
셀레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나요?”
“뭐, 뒤처리는 제 상관이 하겠죠.”
셀레나가 스미스를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무표정으로 서 있던 스미스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자! 빨리 출발합시다. 당신도 알제이를 잡고 싶잖아요.”
‘그를 다시 만난다면 내가 또 살 수 있을까?’
요환은 문득 파도바와 프랑크부르크에서의 일이 생각나 두려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사람과 있다면 괜찮을지도.’
요환은 앞서 걸어가는 셀레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