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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Oct 22. 2022

금수저는 물려줄 수 없어도...

"긍(정)수저는 물려줄게!"

  요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수저 싸움이 한창이다. 누군가의 삶이 드러나는 순간 수저 계급부터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저 일상의 사진을 올렸을 뿐인데도 그 속에서 기가 막히게 옷 브랜드와 사는 동네를 추측하여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며 댓글로 전쟁이 시작된다. 이런 반면에 흙수저의 삶이라고 하며 글쓴이가 겪은 가정 형편과 어린 시절 생활들을 토로하는 글과 사진도 있다. 댓글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위로와 공감으로 가득 찬다. 댓글 중에는 본인이 더 심한 흙수저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비참했던 삶을 더욱 부각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보통 이렇게 수저에 대해서 계급을 나누는 것은 경제적인 형편을 기준으로 삼는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는 자산의 수준으로 수저의 색깔을 평가하는 게 바로 '수저 계급론'이다. 이는 우리나라 현실 상 젊은이들이 자수성가할 수 있는 확률이 점차 줄어들고, 잘 사는 부모에게 자산을 물려받아 더욱 잘 살게 되는 부의 대물림 현상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금수저의 기준을 찾아보니, 자산이 65억 이상이고 가계의 연소득이 7억 이상이며, 압구정 등 강남에 살고, 페라리 등 슈퍼카를 끌어야 한단다. 이 모든 기준이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흙수저를 볼까. 흙수저는 자산이 3천만 원 이상, 가계의 연소득이 2300만 원 이상에 부동산 자산은 없고 집은 월세이며, 차는 모닝이나 지하철을 이용해야 한다. 그 이하 계급도 있는데 이를 '손쓰기' 또는 '손 없음' 등의 용어로 아예 수저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수저론이 없던 나의 어린 시절을 보게 되면, 우리 집엔 차가 없었고 월세 반지하방에 오래 살았다. 당연히 모아놓은 자산은 없었고, IMF 직격탄을 맞으며 벌여놓은 사업이 무너져 빚만 쌓여있었다. 아버지는 파산 신청을 하고 일용직을 전전하셨고, 어머니는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셨다. 아마 그때 수저론이 나왔다면, 나는 아마도 흙수저 이하였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좋은 대학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삶에 변화가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긍정적인 꿈을 품고 있었고, 가계가 무너졌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님의 삶의 태도를 배우며 희망을 갖고 살아왔다. 그러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자신의 한계에 갇혀 생활했다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뿐더러 정신적으로도 패배감이 앞서 부정적인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이 긍정과 희망이 아니라 부정과 좌절로 가득한 삶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어린 시절과 확 달라진 건 아니다. 수도권 대학에 나와서 중견 기업을 다니는 지금 상황에서 어린 시절에 막연하게 품었던 꿈을 어느 정도 이뤄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은수저나 금수저로 계급이 상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는 나는 그저 이제 내가 밥벌이를 해서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나의 계급을 이대로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경제적인 관점으로 나눠진 계급만으로는 말이다. 아직 나의 꿈과 희망은 전진 중이고, 부모로 물려받은 긍정과 낙관의 가치는 그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세 살 딸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내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물론 아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지금부터 천천히 삶의 태도나 마음가짐에 있어서 어떤 가치와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더 맞겠다. 나는 부모로부터 아주 훌륭한 자산을 물려받았다. 바로 '긍정'이라는 자산이다. 이 긍정의 가치는 삶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며, 포기하지 않는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했다. 그래서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희망으로 극복해냈고, 나의 현재 상황을 남과 비교하며 좌절하지 않았다. 또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했다. 이런 긍정의 가치를 나는 나의 아이에게 전해 주려고 한다. 아이도 스스로 자연스럽게 긍정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지금껏 그래 왔듯 내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할 테다. 금수저는 물려줄 수 없어도 '긍(정)수저'는 물려주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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