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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05. 2022

위기를 거꾸로 하면...

"기위의 정신과 기회의 정신을 모두 갖추기"

  내 인생에서 큰 위기가 언제였는지 머릿속에서 천천히 꺼내어 본다. 어린 시절 학원비를 안 내고 그 돈으로 PC방에서 게임하고, 게임 아이템을 다가 엄마에게 걸린 적이 있다. 학원에서 학원비가 밀렸다고 엄마한테 전화를 한 것이다. 엄마는 나를 끊임없이 추궁한 끝에 난 결국 울면서 다 불어버렸다. 안 걸릴 줄 알았던 건가, 아니면 걸릴 줄 알았더라도 그보다 게임에 미친 듯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던 건가. 사실 그때 왜 그런 어리석은 마음을 먹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철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어쨌든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학원비 한 달 치를 홀랑 써버린 것은 내가 자초한 어린 시절 나름대로의 위기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학원 원장님께서는 이 학생이 공부를 꽤 하니까 장학금 명목으로 한 달을 공짜로 다니게 해 주셨고, 난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학원 숙제를 잘해갔다.


  또 다른 위기는 대학교 시절이었다. 학창 시절에 꿈꿨던 대학에 입학하니, 목표가 사라졌다. 그래서 그 비싼 등록금에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고 마셨다. 남중 남고를 나오고 공대까지 가버리면서, 그 시절 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치열했다. 열정적인 미팅과 동아리 활동으로 여차친구들을 만들었고, 동기들과 술 마시느라 집에 안 들어 간 적도 부지기수였다. 동기 중 한 명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었기에 거기서 신세를 많이 졌다. 아니면 술 먹고 PC방에서 밤새 게임하다 잠든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2006년 월드컵 당시 새벽에 광화문에서  응원하다가 시험을 보지 않았던 적도 있다. 당연히 대학교 1학년 때 성적은 처참했다. 1학기, 2학기 다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예상된 결론이라 위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 진짜 위기는 2학년 1학기에 찾아왔다.


  이미 두 번의 학사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한 번만 더 받으면, 한 학년이 유급되는 것이었다. 뒤늦게 알고는 부랴부랴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했다. 한 학년을 놀고먹으니 상당히 뒤처져 있었다. 나름 공부한답시고 했지만 학사 경고 학점인 총점 2.0의 커트라인을 겨우 넘겨 2.1에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행었지만, 그 순간엔 정말 위기였다. 2학년 2학기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버렸다. 군대 갔다 와서 정신 차리고 보니, 엎질러진 물이 아주 바닥을 흥건히 적셔 놓았다. 계절학기와 재수강, 그리고 한 학기에 총점 4점을 넘으면 한 과목을 추가로 들을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하여 학점 복구에 힘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졸업 학점은 3.6이 되었고, 취업하기에 무난한 학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 2학년부터 진행된 전공 학점은 3.8을 넘겼고, 결국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었다. 바닥을 쳤던 위기를 통해 다시 한번 인생의 고삐를 꽉 쥐게 된 순간이었다.


  취업하고 나서도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전공을 살려 입사했지만, 배치는 엉뚱한 팀으로 가게 된 것이다. 워낙 내 전공과 다른 분야라 이론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현업을 수행하다 보니 업무 습득이 느렸고, 다른 동기들보다 뒤처졌다. 도저히 일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결국 1년 만에 전환 배치를 요청하였다. 그 과정은 험난했고, 퇴사까지도 각오하며 진행했다. 퇴사를 목전에 둔 진짜 위기 상황에서 윗선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본 듯했다. 결국 나를 자르려던 사람이 한 발 물러나, 난 내가 원하는 부서로 배치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나니, 다양한 회사 직무에서 각자의 적성에 맞는 업무와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응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면 본인만 몰아세우지 말고, '그저 팀 색깔이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여 전환배치나 이직을 통해 본인과 맞는 팀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공무원이나 회사나 가끔씩 사회생활에 비관을 느끼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는데, 사회적으로 개인의 업무 전환을 유동적이고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겠다. 어쨌든 난 사회생활 첫 위기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지금의 커리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앞서 말했던 나의 인생의 위기들은 진짜 위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난 진짜 위기는 아무것도 성장하지 않고 인생이 정체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난 학원을 다니지 못할 위기에서 더욱 공부에 매진했고, 대학교 유급 위기에서 전공 학점을 평균 이상으로 올려놓았다. 회사의 퇴사 위기에서도 내 색깔의 팀을 찾아 경력을 더욱 탄탄하게 다졌다. 위기 속에서 극복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그 유명한 "위기를 거꾸로 하면, 기회가 됩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는 사람의 성장과 발전의 관점에서 위기를 바라본 것이고, 위기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엔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위기를 거꾸로 하면 기위가 됩니다."란 말이 유행이다. 즉, 아무런 말도 안 되고, 위기는 그저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는 뜻이 돼버린다. 이를 해석해보면 위기는 극복하지 못하는 대상이고, 그저 연약한 개인은 그 위기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 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한다. '기위'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 즉 지금 당장의 위기는 전체 인생을 통틀어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리적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를 거꾸로 하면 기위이고, 극복하면 기회가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나름의 기준으로 위기가 끊임없이 찾아온다. 이 위기 속에서 너무 좌절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는 '기위의 정신'과 그 위기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기회의 정신'이 모두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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