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똥이애비 Oct 23. 2022

감정이 메마른 내가 감성이 차오르는 순간들

"이성과 감성 사이, 부드러운 삶을 위해"

  나는 생각보다 이성적인 성향인가 보다. 이는 아내와 살면서 더욱 느끼는데, TV나 영화를 볼 때 아내는 자주 운다. 슬프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나와서 아내를 보면 어김없이 울고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에 감동은 있어도 겉으로까지 표현은 안 나온다. 이게 자라오면서 '남자는 살면서 딱 세 번만 우는 거야!'라는 강요가 뇌리에 박혀서 그런 건지, 아니면 MBTI 성격 유형 감사에서 ISTJ라는 '청렴결백한 논리 주의자'의 성향에 속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내와 함께 살다 보니 내가 감성보다 이성이 더 앞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또한 회사에서도 주변 동료들에게 '왜 이렇게 로봇처럼 일해?'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나는 그저 정해진 룰 안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은 것뿐인데, 동료들은 이 모습이 인간적이지 않아 보였거나 행동이 통통 튀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나 보다. 이런 내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런 순간들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면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을 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감성이 돋보이는 순간이 언제인지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가족과 함께 할 때

  아내 집에서도 내가 감정적인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나마 내가 밖에서 보다는 집에 가족과 함께 있을 때가 더 감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아내의 감성이 더 클 뿐이다. 집에서는 나름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할 때 더 많이 웃게 된다. 아내에게 농담도 자주 하고 아이의 재롱도 즐기면서 함께 웃는다. 이럴 때 행복인가 싶기도 한데, 이럼 감성적인 순간들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감정이라는 게 행복, 웃음, 기쁨과 같은 좋은 면도 있지만 슬픔, 울음, 분노와 같은 안 좋은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나 밖에서 이성적으로 누르고 있던 부정적 감정을 집에 와서 감성이 앞설 때 푸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아내에게 밖에서보다 더 자주 화를 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럴수록 집에서는 더욱 부정적 감정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어쨌든 나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할 때 이성과 감성의 경계가 쉽게 허물어져 감정 표현이 더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특별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군대에 있을 때 일본 멜로 영화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마도 군대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던 여자 친구에 대한 원망과 순수한 사랑을 했던 대학 시절의 그리움이 나를 새로운 문화로 이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러브레터> 등의 영화들이 인상 깊게 내 감정을 흔들어 놓았던 기억이 있다. 군대라는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감성에 젖을 수 있는 뭔가 아련하고 순수한 사랑야기가 필요했었나 보다. 그때의 메마른 땅 위에 뿌려진 단비 같은 추억이 남아있어 군 제대 후 여자 친구를 새로 사귀었을 때도 비슷한 류의 영화를 보러 간 적이 꽤 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너의 이름은>과 같은 영화들이 내 마음속 사랑이라는 감정을 증폭시켰다. 나는 영화보단 드라마를 잘 안 보게 되는데, 완결까지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되고 한 편, 한 편 기다리는 게 참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효율성을 따지는 난 여전히 감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 나마 본 드라마 중 <나의 아저씨>가 내 감성을 흔들어 놓기도 했고 여운도 오래 남았었다. 이렇게 나만의 취향의 드라마나 영화를 발견했을 때 내 감성이 한 껏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음주가무를 즐길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도 내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나 어스름한 저녁, 맛있는 음식, 잔잔한 음악, 고즈넉한 술집의 분위기, 끊기지 않는 대화거리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욱 완벽하다. 이런 날이 잘 없는데, 우연찮게 이 모든 게 겹치는 날에는 내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차오르는 감성에 취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행복감을 느낀다. 이 때는 일부러 이성의 끈을 잘 놓기도 하는데, 다음 날의 숙취로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숙취를 견뎌낼 만큼의 깊은 감성의 추억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간질인다. 이렇게 감성에 취해있을 때 글을 쓰거나 사람을 만난다면, 나의 솔직한 내면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해 술을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까지 듣고 부른다면 내 감성은 더욱 고조된다. 그래서 술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가게 되는 것 같다. 술만 마시고 끝내기엔 끓어오른 감정이 아쉽기도 하거니와 취한 김에 내 감성의 끝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내 취향의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내가 부르는 노래를 즐겨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내가 즐기는 음악의 취향은 옛 감성의 발라드인데, 특히나 김광석, 이문세, 잔나비, 이적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이 외에도 서정적인 발라드라면 내 감성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렇게 '음주가무'의 행위는 내가 평소 꽉 쥐고 있는 이성 끈을 자연스럽게 풀어주며, 그 빈자리를 감성으로 채워준다.


  이성적인 내가 감성에 젖어드는 순간들은 분명 있다. 반대로 감정적인 사람이 이성의 끈을 부여잡는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취향을 확실히 알고 다면 좀 더 내가 원할 때 감성을 차오르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황에 따라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나를 스스로 어느 위치에 갖다 놓을지를 알게 된다면, 삶이 좀 더 부드러워질 듯싶다. 회사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성이 가득한 내가 되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반대로 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창작의 활동을 할 때는 감성이 풍부한 내가 되어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도록 꾀한다. 이렇듯 이성과 감성의 끈을 스스로 풀었다 감았다 할 수 있도록 나만의 전략을 세워보는 것도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