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이성적인 성향인가 보다. 이는 아내와 살면서 더욱 느끼는데, TV나 영화를 볼 때 아내는 자주 운다. 슬프거나 감동적인 장면이 나와서 아내를 보면 어김없이 울고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에 감동은 있어도 겉으로까지 표현은 안 나온다. 이게 자라오면서 '남자는 살면서 딱 세 번만 우는 거야!'라는 강요가 뇌리에 박혀서 그런 건지, 아니면 MBTI 성격 유형 감사에서 ISTJ라는 '청렴결백한 논리 주의자'의 성향에 속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내와 함께 살다 보니 내가 감성보다 이성이 더 앞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또한 회사에서도 주변 동료들에게 '왜 이렇게 로봇처럼 일해?'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나는 그저 정해진 룰 안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은 것뿐인데, 동료들은 이 모습이 인간적이지 않아 보였거나 행동이 통통 튀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나 보다. 이런 내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런 순간들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면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을 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감성이 돋보이는 순간이 언제인지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가족과 함께 할 때
아내는 집에서도 내가 감정적인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나마 내가 밖에서 보다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가 더 감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아내의 감성이 더 클 뿐이다. 집에서는 나름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할 때 더 많이 웃게 된다. 아내에게 농담도 자주 하고 아이의 재롱도 즐기면서 함께 웃는다. 이럴 때 행복인가 싶기도 한데, 이럼 감성적인 순간들이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감정이라는 게 행복, 웃음, 기쁨과 같은 좋은 면도 있지만 슬픔, 울음, 분노와 같은 안 좋은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나 밖에서 이성적으로 누르고 있던 부정적 감정을 집에 와서 감성이 앞설 때 푸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아내에게 밖에서보다 더 자주 화를 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럴수록 집에서는 더욱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어쨌든 나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할 때 이성과 감성의 경계가 쉽게 허물어져 감정 표현이 더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특별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군대에 있을 때 일본 멜로 영화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마도 군대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던 여자 친구에 대한 원망과 순수한 사랑을 했던 대학 시절의 그리움이 나를 새로운 문화로 이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러브레터> 등의 영화들이 인상 깊게 내 감정을 흔들어 놓았던 기억이 있다.군대라는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감성에 젖을 수 있는 뭔가 아련하고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필요했었나 보다. 그때의 메마른 땅 위에 뿌려진 단비 같은 추억이 남아있어서 군 제대 후 여자 친구를 새로 사귀었을 때도 비슷한 류의 영화를 보러 간 적이 꽤 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너의 이름은>과 같은 영화들이 내 마음속 사랑이라는 감정을 증폭시켰다. 나는 영화보단 드라마를 더 잘 안 보게 되는데, 완결까지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되고 한 편, 한 편 기다리는 게 참기가 힘들기 때문이다.여기서도 효율성을 따지는난 여전히 감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그나마 본 드라마 중 <나의 아저씨>가 내 감성을 흔들어 놓기도 했고 여운도 오래 남았었다. 이렇게 나만의 취향의 드라마나 영화를 발견했을 때 내 감성이 한 껏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음주가무를 즐길 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도 내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나 어스름한 저녁, 맛있는 음식, 잔잔한 음악, 고즈넉한 술집의 분위기, 끊기지 않는 대화거리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욱 완벽하다. 이런 날이 잘 없는데, 우연찮게 이 모든 게 겹치는 날에는 내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차오르는 감성에 취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행복감을 느낀다. 이 때는 일부러 이성의 끈을 잘 놓기도 하는데, 다음 날의 숙취로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숙취를 견뎌낼 만큼의 깊은 감성의 추억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간질인다.이렇게 감성에 취해있을 때 글을 쓰거나 사람을 만난다면, 나의 솔직한 내면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해 술을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까지 듣고 부른다면 내 감성은 더욱 고조된다. 그래서 술 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가게 되는 것 같다. 술만 마시고 끝내기엔 끓어오른 감정이 아쉽기도 하거니와 취한 김에 내 감성의 끝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내 취향의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내가 부르는 노래를 즐겨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내가 즐기는 음악의 취향은 옛 감성의 발라드인데, 특히나 김광석, 이문세, 잔나비, 이적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이 외에도 서정적인 발라드라면 내 감성이스물스물 올라온다. 이렇게 '음주가무'의 행위는 내가 평소 꽉 쥐고 있는 이성의 끈을 자연스럽게 풀어주며, 그 빈자리를 감성으로 채워준다.
이성적인 내가 감성에 젖어드는 순간들은 분명 있다. 반대로 감정적인 사람이 이성의 끈을 부여잡는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취향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좀 더 내가 원할 때 감성을 차오르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황에 따라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나를 스스로 어느 위치에 갖다 놓을지를 알게 된다면, 삶이 좀 더 부드러워질 듯싶다. 회사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성이 가득한 내가 되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반대로 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글을 쓰는 것과 같은 창작의 활동을 할 때는 감성이 풍부한 내가 되어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도록 꾀한다. 이렇듯 이성과 감성의 끈을 스스로 풀었다 감았다 할 수 있도록 나만의 전략을 세워보는 것도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