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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13. 2022

오늘도 난 아이를 통해 배운다

"인생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3년 만에 결국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고, 지금은 꼬박 2년 하고도 4개월 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상상한 것 이상으로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래도 난 개인적으로 옳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아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것도 벅찬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도대체 뭘 배우냐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힐 수 있다. 지금부터 아이를 통해 배운 것들을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다.


신선한 눈

  36년의 삶을 살아오고 직장생활을 10년 동안 해오면서 내 눈은 동태눈로 변해버렸다. 그만큼 삶에 찌들어 있어 세상을 보는 눈에서 별다른 생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요즘 말문이 트여 나에게 유독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빠, 이거 뭐예요?"이다. 산책을 하다가 날아가는 잠자리를 보고도, 한가롭게 헤엄치는 오리를 보고도, 인사를 나누는 경비 아저씨를 보고도 아이는 궁금한 것투성이다. 이렇게 새롭고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다음으로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내가 할래!"이다. 택배 박스를 뜯을 때도, 귤껍질을 깔 때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내가 먼저 해버리면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서럽게 운다. 이게 그렇게까지 울 일인가 싶은데, 아이 입장에서는 아주 신선하고 재밌는 일 하나를 놓친 것이다. 이렇게 아이는 아주 신선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고, 실패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도전해 간다. 이런 아이를 보면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똑같은 일상과 반복적인 삶에서도 새로운 관점으로 보려는 노력 그리고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실행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말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예의를 차리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 진심이 담겨있지는 않은 순간이 많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에게는 예의라는 허물을 벗겨버린 채 직설적으로 얘기하게 된다. 바깥에서 예의를 한껏 차리는데, 집에서까지 그렇게 말한다는 게 피곤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로 인한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 보니 집에서도 아이를 위해 아름답고 예의 있는 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진심이 아닐지언정 이렇게 말을 주고받다 보니 집안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도 서로 존중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집에서 주로 이렇게 '좋은 말'만 듣다 보니, 아이의 입에서는 예쁜 말이 주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하는 말에 가끔씩 깜짝 놀랄 때도 있는데, 심지어 이런 말들도 한다.


"엄마, 고양이 무서워? 괜찮아! 내가 있잖아."

"아빠, 보고 싶었어!"

"우와, 할머니 이쁘다!"


별 말 아닐 수도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모든 가족들이 기분 좋게 웃게 된다. 아이의 아름답고 순수한 말들이 집안 분위기를 한순간에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한 줄 이미 알았음에도, 지난날의 나는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까운 가족들에게 더욱 막말을 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없을 때 서로 다퉜던 일들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다투더라도 아이가 들을 수 있기 에 예전보다는 차근차근 좋은 말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서로 어색해서 다투다가 웃으며 넘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의 예쁜 말로 인해서 또는 예쁜 말을 위해서 우리 가족은 더욱 화목해진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아이와 함께 하면 주변 이웃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할머니를 만나면 일부러 아이가 보도록 내가 먼저 인사를 더욱 크게 하기도 하고, 아이도 그 모습을 보고 씩씩하게 인사하기도 한다. 그럼 할머니는 기특하다는 웃음을 보내준다. 아이가 없을 땐 어땠을까? 그저 어색한 목 인사만 건네며 딱딱한 분위기만 흐를 뿐이었다. 아이와 함께 집 앞 마트를 갈 때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과자를 집어 스스로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그럼 아주머니는 대견스럽다며 그 과자 먼저 계산해주고 아이에게 직접 건네준다. 아이는 큰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아주머니는 "할머니랑 오전에 오더니, 아빠랑 와서 맛있는 거 사가네!"라며 웃어주신다. 그럼 나도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아이가 잘 먹어서요.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답한다. 아이가 없을 땐 어땠을까?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골라서 계산하고, 딱딱하게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면 끝이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나도 모르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되어버린다. 어린이집 학부모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고, 놀이터 아이들과도 얘기를 나눈다. 경비아저씨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이웃 할아버지에게도 사탕을 얻어먹는다. 아이가 없을 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이웃과의 소통은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잘 안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로 인해 이웃과 함께 사는 삶을 배웠고, 더욱 온기 있는 삶을 게 되었다. 


내려놓기

  나는 을 채찍질 하는 조금은 엄격한 성향을 갖고 있다. 특히나 정리정돈과 시간관리 관점에서 그런 엄격함을 주로 보이는데, 어려서부터 그랬으니 아마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향인 듯싶다. 아이에게도 처음엔 자꾸 이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목욕을 하기 싫어한다든지, 어린이집에 같이 가기 싫어한 적이 있다. 아예 대놓고 "아빠, 화났어."라고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말하기도 한다. 이러다가는 아이와 멀어질 것 같아서, 집에서는 좀 더 많이 나를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집을 좀 어질러도, 식사를 좀 느리게 해도, 어린이집을 좀 늦게 가더라도, 잠을 좀 늦게 자더라도, 이를 좀 대충 닦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로 인해 기다림의 여유를 찾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도 이런 엄격한 성향으로 피곤한데, 굳이 집에서까지 이럴 필요가 있을까? 가족에겐 성급하고 엄격한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내려놓고,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림의 여유를 즐기고, 굳어있는 표정을 풀고, 그렇게 나는 아이와 한 걸음씩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는 아이가 아빠와 목욕을 먼저 하겠다고 말하고, 어린이집도 함께 웃으며 등원하게 되었다.


  오늘도 난 아이를 통해 배운다. 아이와 함께 하는 날들이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더욱 인간적이게 만든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더 긴 세월이 남아 있지만, 그 끝에는 나도 나의 부모님이 말씀하셨듯이 '인생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더욱 깊게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와 인생을 함께 하겠다는 우리 부부의 결정과 다짐이 나의 개인적 성장과 행복에 있어서도 더 큰 인생의 축복으로 다가온다는 것에 지금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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