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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15. 2022

내 딸도 왼손잡이라니!

"아이의 왼손이 세상을 바꿨으면 참 좋겠다"

  28개월째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를 닮은 순간순간들이 훅 들어와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실제 생김새도 그렇지만 성향도 나를 굉장히 많이 닮아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유전자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아이가 자주 보이는 행동이 왼손과 왼발을 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드는 손도, 그림 그리기를 할 때 색연필을 쥔 손도, 풍선을 찰 때 드는 발도 모두 왼쪽이다. 아무래도 나의 왼손잡이 특성마저 닮아버린 듯했다. 사실 나도 어머니에게 이 왼손잡이 특성을 물려받았다. 또한 엄마의 외모도 많이 닮아있다. 이 말은 즉 아이도 우리 엄마와 많이 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장모님과 아내는 아이가 왼손을 주로 쓰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많이 했다.  왼손잡이면 세상이 오른손잡이 위주이기 때문에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나도 36년간 겪어왔기에 왼손잡이의 불편함을 아주 잘 안다. 공부를 할 때 필기를 하는 공책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써야 하고, 책을 읽고 넘길 때도 오른으로 넘기는 게 용이하다. 아버지는 그래서 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끔 만들었다. 정말 고역이었는데, 아버지는 두꺼운 펜글씨 따라 쓰기 연습 책을 건네주시며 매일 10페이지씩 따라 쓰기 숙제를 내주셨다. 사실 좀 억울한 측면도 있다. 힘도 잘 들어가지 않고, 정교한 움직임도 불가능한 손으로, 하고 싶지도 않은 숙제가 추가된다는 것이 그때 당시엔 짜증도 났다. 물론 아버지도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생각해낸 방식일 테다. 내가 어렸을 때는 왼손잡이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었고, 글씨를 잘 쓰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억지로 날 오른손잡이로 만드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쓴다. 하지만 아직도 악필이다. 왼손으로는 아예 쓰지도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세상이 변해서 글씨 쓸 일이 많이 없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나는 밥을 먹을 때도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든다. 이 또한 아버지의 철저한 오른손잡이 교육의 산물이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식사를 할 때만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해서 반찬을 집어먹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때나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는 모두 왼손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밥을 먹을 때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왼손으로 먹는 게 더 편하다. 단, 급할 때는 왼손엔 숟가락 오른손엔 젓가락을 들고 양손으로 먹기도 한다. 어쨌든 밥 먹는 손은 아무리 아버지라도 오른손잡이 교육에 실패했다. 지금은 아버지 앞에서도 당당하게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 이젠 아버지도 내가 왼손으로 밥 먹는 모습을 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도 결국 생존이 달린 밥 먹는 손은 유전자의 힘에 굴복하신 것과 다름없다.


  이 외에는 모두 왼손, 왼발을 사용한다. 공을 던지거나 발로 찰 때도, 청소기를 잡을 때도, 코를 팔 때도, 큰 볼 일(?) 후 뒤처리를 할 때도 모두 그렇다. 렇게 왼손을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만, 어린 시절 컴퓨터 마우스를 처음 쥐었을 때는 굉장히 어색했고, 사회생활에서 내 자리는 식탁의 맨 왼쪽이어야 했다. 또한 악수를 할 때도 왼손은 거둬야 했다.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왼손잡이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전 세계 인구의 10프로 정도만이 왼손잡이라고 하는데, 뭔가 내 존재가치가 특별한 느낌도 갖게 된다. 왼손잡이는 우뇌가 주로 발달하여 예술, 감성, 창의력이 좋다고 하지만 감성이 메마른 나를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긴 하다. 어렸을 때 강압적인 오른손 교육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뇌 발달로 나타난 듯하다. 그래도 난 여전히 왼손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왼손잡이임을 남들과 다른 나만의 가치로 여긴다.


  내 딸도 본인 선택의 여지없이 왼손잡이가 되어버렸다. 나를 원망한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난 이전 세대 교육 방식과는 다르게 아이가 왼손과 왼발을 자유롭게 쓰도록 할 것이다. 내 자식 세대에서도 분명 세상은 90프로의 오른손 위주의 환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이런저런 불편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왼손으로 글을 쓰다가 손날 부근이 까매질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 밥 먹을 때 놀림을 받을 수도 있고, 운동과 악기를 배울 때도 '왼밍아웃'을 해야 할 것이다. 왼손잡이용을 더 비싼 돈 주고 구매해야 할 것이고, 운전 연습을 할 때도 오른발 사용에 익숙해지느라 초보 운전을 떼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왼손, 왼발을 사용함에 있어서 당당하고 특별한 본인만의 특징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왼편에 서서 남들과 다른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남들과 서로 익숙한 손을 맞잡고 함께 나란히 앞을 보고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이의 왼손이 세상을 바꿨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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