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어떤 한 부장이 우수한 실적으로 상을 받았다. 난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팀에서 상을 받는 경우가 잘 없으므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난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그저 주변 동료들에게 소문으로만 들은 정보였다. 그 부장이 사실은 아랫사람이 작년에 낸 실적을 본인 성과만 살짝 입혀서 재구성(?)하여 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충격이었지만소문이기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실제 그 부장의 아랫 시람인 과장, 즉 당사자에게 직접 그 상황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다. 적잖이 충격받은 나는 겉으로는 위로를 전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과장님, 완전히 호구당하셨네요...'
호구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즉, 그 과장은 어수룩하게도 직속 부장에게 이용당하고 있던 것이다. 그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기도 하고, 혹시 나도 호구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다시 내 회사 생활을 되짚어봤다. 한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신입사원인 시절에 팀을 옮길 때였다. 1년 만에 팀을 옮기겠다고 말했을 때, 팀장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었다. 전공도, 사람도, 팀 분위기도 나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팀장은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사실 살짝 고마워서 남아있을까도 고민해보았지만, 장기적으로 내 미래를 위해선 이 팀을 떠나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팀장 윗 라인의 인사권자로 갈수록 내가 팀 옮기는 것에 태클이 심하게 들어왔지만, 퇴사를 각오하고 버텨냈다. 결국 좋게 좋게 팀을 옮기게 되었고, 그때 받은 고과는 D였다. 직장인들은 알겠지만 D라는 고과는 향후에 승진이 누락될 수도 있고,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나가야 하는 대상 1순위가 되어버리는 무시 무시한 고과이다. 팀을 옮긴다고 말했을 때 그렇게 공감해주던 팀장이 결국 나에게 D를 주고, 내 사수였던 사람에게 S를 주었다. 내가 팀을 옮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그 사수였는데도 말이다. 아무런 힘이 없던 신입사원인 나는 이전 팀에서 완전 호구당하고, 새로운 팀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가 직장을 디니면서 나도 모르게 실적과 고과 그리고 업무에서 호구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모르게 판이 깔리다 보니까 어이없게 당하고 나서 깨닫게 된다. 배신감과 억울함이 가득 차면서, 회사 생활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회사 생활에서 호구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보았다. 앞으로 얘기하는 상황과 전략들은 내가 10년간 몸담고 있는 한 직장에서 봐왔던 것들이다.
1) 귀는 열고 입은 닫는다
직장에서 호구되지 않기 위해서는 귀는 열고 입은 닫는다. 먼저 소문과 떠도는 얘기들을 즘 들을 필요가 있다. '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 나랴'라는 속담처럼 대부분의 회사에서 나는 소문은 뜬금없이 발생되지 않는다. 뭔가 계기가 있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 대상들을 잘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만약 좋지 않은 소문의 대상이 나에게 접근한다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행동해야 한다. 친절할 필요도 없고,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철저히 업무로만 그들을 대한다. 결국 그들도 사전에 어리숙하고 호구당하기 쉬운 인물을 타깃으로 삼기 때문에, 그들과 친해지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다. 오히려 호구당하기 쉬운 상황이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서 배신당하는 순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을 할 때도 자신의 일을 쉽게 떠벌리지 않아야 한다. 그 일과 성과를 눈독 들이며 조용히 군침 흘리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삭막할 수도 있는데, 직장이라는 게 친구 사귀러 다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과 사를 구분하여 상황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 내 성과와 보상은 철저히 지킨다
회사에서는 R&R이란 게 존재한다. 영어로 Role and Responsibility를 의미한다. 즉, 각자가 팀 내에서 맡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업무에선 내가 얼마나 일 하느냐에 따라 나에게 실적과 성과로 나타난다. 그 성과를 토대로 연말에 고과를 통해 보상을 받는다. 그렇기에 내 업무 영역을 명확히 하여 내 실적과 내 보상을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회사라는 게 grey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grey 영역이란 담당자가 불명확한 애매한 업무를 뜻한다. 이런 업무를 떠맡게 되면 내 성과로 뚜렷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보통은 팀 내 막내 또는 어리숙한 팀원들에게 이런 업무들이 떠넘겨지게 되는데, 일단 이런 grey 영역의 업무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호구에 가까운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다. 여기서 호구가 되느냐 안되느냐의 차이는 grey 영역의 업무를 인정받느냐 못 받느냐의 차이로 나타난다. 만약 이런 grey 업무를 받았다면, 꼭 보상을 철저히 요구하길 바란다.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막 이런저런 업무를 받아서 하다 보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혼자서만 야근하고 있는 그런 어이없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그러므로 일단 내가 맡은 업무에서 발생하는 성과를 온전히 나만의 보상으로 취득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일해야 '호구'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나만의 울타리를 만든다
호구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나만의 울타리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스스로 챙겨야 하겠지만, 사람도 마찬가지로 나의 영역으로 끌고 와야 한다. 즉, 내 편을 좀 만들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내가 호구당하고 있는지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조언을 해줄 뿐만 아니라, 내 편에 서서 내가 생각하는 요구사항을 팀 내에 어필할 수 있도록 지지해준다. 이런 강력한 인맥을 스스로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그래야만 호구당할 위험이 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결국 회사도 사람으로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내 편을 많이 만들어놓으면, 여론이 내 쪽으로 유리하게 쏠리게 된다. 이런 나만의 울타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내 업무 영역을 명확화 할 뿐만 아니라 내 인맥을 확실히 챙기는 게 중요하다. 업무 영역은 앞서 말했듯이 grey 영역의 업무를 최대한 방어하고 내 업무 분장에서 맡은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된다. 하지만 인맥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좀 필요한데, 일단 말이 많은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두 번째로 소문이 안 좋게 난 사람은 거리를 두는 게 좋고, 세 번째로 나와 업무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게 유리하다. 일을 하다 보면 '아, 이 사람은 나랑 일하는 게 비슷하네!'라고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장기적인 비전이 나와 유사하고, 일하는 방식도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울타리를 꾸려나가기 쉽다. 아무리 울타리가 허접해도 여러 명이 모이면, 누군가가 나 혼자 있을 때보다 호구 잡기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직장에서 호구되지 않는 현실적인 전략들을 살펴보았다. 이미 호구가 된 뒤에 그 사람에게 가서 따져봤자, 실적과 성과와 보상은 이미 그 사람 이름으로 회사 곳곳에 박혀있다. 즉, 이미 깨닫고 난 뒤에는 늦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전에 호구가 되지 않도록 배수의 진을 쳐 놓을 필요가 있다. 귀는 열고 입은 닫음으로써 회사가 돌아가는 판을 빨리 파악해 놓는 게 좋고, 내 성과와 보상은 철저히 챙겨서 남들이 눈독 들이지 않게 하며, 내 일과 사람을 챙겨서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내 영역을 침범하기 부담스럽게 만들어야 하겠다. 이렇게 미리 준비를 좀 해놓는다면, 눈뜨고 코베이는 그런 황당한 일들은 없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많고 그 속에서 우린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작디작은 영혼이므로, 장기적으로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글에서 처럼 본인의 마음을 지키는 그런 훈련도 때로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