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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25. 2022

친구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술집을 차렸다

"대박나라! 그래야 내가 2호점 차리지..."

  고등학교 시절부터 쭉 만나오던 친구들 중 한 명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술집을 차렸다. 한 회사만 10년 동안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친구의 그런 용기와 결단에 적잖이 놀랐다. 어쨌든 난 그 소식을 듣고 매상도 좀 올려줄 겸 고등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 그 술집처음 발걸음을 했다.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분위기는 서른여섯 먹은 아재가 올 법 한 가게는 아니었다. 20대 또는 30대 초반의 여자들이 사진 찍으며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아 보였다. 테이블이 6개 정도 있는 아담하면서도 따뜻한 골목 가게였고, 유동인구가 많이 없다 보니 알음알음 와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어색한 몸짓으로 한쪽 구석에 친구들과 함께 자리했다. 더 어색한 건 사장인 친구의 모습이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 장갑을 끼고 있었고, 못 본 사이 한창 더 후덕해진 모습으로 우릴 반겼다.


"어서 와. 와줘서 고마워."

"야, 너 메뉴 개발한다고 실험 많이 했나 보다."


내가 그의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토닥토닥 만지며 말했다. 그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본인도 사장된 게 조금 어색 듯싶었다.


"내가 베스트 메뉴로 쫙 깔아줄게. 좀 만 기다려!'

"퇴근하고 바로 왔더니, 배고파 죽겠다. 2인분 같은 1인분으로 부탁해!"


사장 친구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우리 세 명은 1년 가까이 만나지 못해서 쌓여 있던 근황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도 한 명 있길래 일단 술부터 시켜 한잔씩 마셨다. 매상을 올려줘야 하기 때문에 '서울의 밤'이라는 평소에 먹지도 않는 고급 증류주를 골랐다. 원래 안주가 나오기 전에 빈 속에 한잔 마셔줘야 입을 제대로 풀 수 있는데, 이 고급술을 한 잔 먹으니 말이 좀 더 깔끔하고 고급지게 나오는 것 같았다. 함께 앉아 있던 한 친구가 잔을 내려놓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회사는 다닐만하냐?"

"애는 잘 크냐?"

"제수씨랑은 안 싸우냐?"


셋 중 나를 포함해 아이가 있는 유부남 두 명에게 떨어지는 일반적인 질문들이었다. 답변은 항상 비슷하다.


"회사는 그냥 안 잘릴 정도로만 하고 다니는 거지 뭐..."

"애는 잘 크지, 내가 안 커서 문제지..."

"와이프? 얘기도 하지 말어라."


친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만다. 아마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한 명 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엔 난 이 친구가 사교성이 좋아서 우리들 중에 가장 빨리 결혼할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생각대로 되는 법이 없다. 우리 둘의 답변은 어차피 회사원유부남이 살아가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얘기들일 뿐이고, 나는 아직 총각인 친구의 화려한 근황을 듣고 싶었다. 아마도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듯했다. 그래서 난 총각인 친구에게 물었다.


"넌 어때? 뭐 재밌는 일 없어?"


그 질문을 듣자마자 친구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 내년 3월에 결혼해. 자식아!"

"왜 그리 빨리..?, 누구랑?, 언제부터...?"

"뭐가 빨라. 우리 서른여섯이야 지금. 넌 서른 살에 했잖아."

"아니, 나는 나고.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서른여덟도 안 늦다고. 왜 그렇게 서둘러야만 했는데?"


나는 이 친구에게 물어보면서도, 내가 어쩌다 서른 살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과거라는 필름을 돌려봐도 뚜렷한 이유를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중 사장 친구가 음식을 만들어와서 테이블에 놓는 순간에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와, 맛있겠다!


깐풍기, 리조또, 찹스테이크가 연달아 테이블에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배가 너무 고팠기에 일단 하나씩 하나씩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젓가락 춤이 테이블 위에서 순회공연을 한 차례 돌았을 때, 그제야 사장 친구가 옆자리에 앉아 우리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을 눈치챘다. 우리는 사실 배를 채우느라 맛을 잘 못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엄지손가락을 연신 치켜세우며 맛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제야 한시름 놓은 사장 친구의 표정이 한결 편해지고 있었다. 먹고 마시다 보니 타깃 고객인 20대 후반의 여성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일 두 번째 손님이었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아재들과 섞이고 싶지 않은 듯 우리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사장 친구는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갔다. 남은 우리 셋은 최대한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계속해서 술과 안주를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나는 오랜만에 확실한 명분으로 육아 땡땡이를 치고, 기분 좋게 취하고 있었다. 곰곰이 마시면서 생각해보니, 이런 분위기도 지금의 나와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취했나 보다.


  한 세 시간 정도 마시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이미 두 명의 여성분들은 다 먹고 나간 상태였다. 우리는 억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하찮은 직장인일 뿐이고, 내일도 우린 당연한 듯 정시에 출근을 해야 하므로 다음을 기약하고, 서로 오늘의 막잔을 아주 씁쓸하게 자신의 목구멍으로 들이밀었다. 오늘 마신 술 중에 가장 쓴 한잔이었다. 다시 한번 사장 친구와 의례적인 덕담을 나눴다.


"대박 나고, 돈 많이 벌어라."

"네가 성공해야 우리도 회사 때려치우고 2호점 차리지!"

"인스타나 유튜버로 홍보하면 곧 줄 서서 먹으러 올 거야."


  우리는 연말에 부부 모임을 이 술집에서 하기로 했다. 이번에 생각보다 매상을 많이 못 올려준 죄책감도 있고, 사장 부부가 꼭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곧바로 한번 더 모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사장 친구는 그날엔 특별히 우리만을 위해 가게를 열기로 약속했다. 세 부부들은 서로 본 적이 있지만, 결혼을 앞둔 친구 커플과는 첫 만남이 될 터였다.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오늘의 술자리는 여기서 그만 마무리하고,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한 상태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사장 친구는 가게 앞 큰길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해주고는 총총걸음으로 자연스레 본인의 텅 빈 일터로 다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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