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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Nov 29. 2022

내 인생의 월드컵

"세상을 이기고, 행복을 쟁취하라!"

  요즘 2022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물론 난 그 경기를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경기가 시작되는 밤 10시에 나는 아이와 잠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28일 월요일에 하는 가나전도 보지 못할 테다.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은 없다. 내가 원래 축구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어느 스포츠 건 경기 관람하는 것 자체를 즐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경기 결과만 관심 있게 보는 편이고, 심심하면 경기 하이라이트 정도만 찾아본다. 어쨌든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어 심각한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런 의미로 과거에 내가 겪었던 월드컵 시즌들을 되새겨보았다.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사실 그전 월드컵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한국이 그리 성적도 좋지 않았고, 나 또한 별다른 관심도 없었기 때문일 테다. 2002년만 하더라도 난 고작 중학교 3학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때의 열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편이다. 처음 16강에 진출했을 때만 하더라도 역사적인 순간이니, 역대급 성적이니 하면서 대한민국이 들끓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이 정도까지 우리나라가 축구에 관심이 많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개최지도 함께 겸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어쨌든 학교에 가면 축구 얘기가 한창이었고, 히딩크 감독을 '딩크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단체로 근처 공원에 모여 응원할 때는 미리 설치된 스크린에서 우리나라 축구 경기가 흘러나왔다. 이웃 주민들은 모두 붉은색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응원에 동참했다. 어린 시절 내 눈엔 참 이색적인 풍경들이었다. 축구 강국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꺾으며 우리나라의 응원 열기는 불타올랐다. TV와 뉴스에선 월드컵 재방송과 축구 선수들의 생애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4강 신화를 이뤘을 때 지나가던 사람들끼리 서로 부등껴 안았고, 이웃들은 친구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하나가 되었다. 중3이란 어린 나이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나도 뉴스에서 나온 것처럼 택시 위에 올라타 경적 소리에 맞춰서 잘 뛸 수 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어린 나이에도 이 날이 우리나라에 역사적인 날이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드디어 대학교 1학년. 난 월드컵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지난번 월드컵처럼 멋진 경기만 해주면, 응원은 내가 아주 제대로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예선전에서 토고를 2:1로 누르고, 프랑스와의 경기를 앞둔 날이었다. 새벽 경기였는데, 나는 대학교 친구들과 광화문으로 진출했다. 근데 문제는 그다음 날이 1학기 기말고사 한 과목의 시험 날이었다. 난 4년 동안 택시에 올라타는 걸 기다려왔고, 드디어 성인으로서 당당하게 밤새 즐길 수 있는 날들이 펼쳐졌는데 시험이라는 족쇄에 날 가둘 순 없었다. 응원에 정신이 나간 나는 다음 날 기말 시험을 과감히 패스하기로 했다. 마치 박지성의 송곳 같은 쓰루패스처럼 말이다. 어쨌든 모든 걸 잊고 자유롭게 응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결국 강적인 프랑스와 1:1로 비겼음에도 선방했다는 생각에 우린 마치 이긴 듯이 들떴다. 경기 종료 후에 아침이 밝아와도 광화문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인생에서 이 날만큼 월드컵을 신나게 즐겼던 때가 없었을 것이다. 시험을 패스한 과목은 결국 복학 후에 재수강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이때의 난 호주에 있었다. 난 왜 호주에서 우리나라 16강 진출 경기를 보고 있을까. 4년이 흐르는 동안 군대를 제대해서 복학했고, 영어 학원에서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사귀던 중간에 여자 친구가 1년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난 방학에 맞춰 한 달간 호주 시드니로 여자 친구를 보러  것이었다. 이 때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다. 실 월드컵을 해외에서 본다는 사실보다는 여자 친구와 해외에서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더 설레었다. 시드니 하버브릿지에서 호주 사람들과 여자 친구와 여자 친구 룸메이트 그리고 내가 한 공간에서 전광판을 바라보며 우리나라를 응원하고 있던 그때 그 장면 자체가 16강에서 패배한 아쉬움을 싹 가시게 만들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회사를 취업하고 직장 생활에 점차 적응해 가던 시절이었다. 회사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때 월드컵 경기를 봤는지 조차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아마 성적도 내가 기억하는 월드컵 중 최악을 기록했던 것 같다. 이땐 월드컵보다 내 회사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먼저였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결혼 후 신혼생활을 즐길 때였다.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로 인해 월드컵은 내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경기도 제대로 안 봤었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우리나라가 어떤 기록과 역사를 만들어낼까? 이제 사실 월드컵을 즐기기보단 내 인생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아마도 본선 조별 경기는 한 경기도 보지 않을 듯싶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아이를 재우는 시간 동안 경기가 시작될 테고, 아이와 함께 스르르 잠들어 버리는 순간 경기는 끝나 있을 것이다. 잠들지 않더라도 다음 날 출근이 부담되어 경기를 보며 늦은 밤까지 흥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좀 챙겨볼까 생각 중이긴 한데,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난 지금 아내와 아이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내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 함께 뛰며, 이미 나만의 월드컵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는 세상이다. '세상'이라는 강적을 이기고 '행복'이라는 우승컵을 쟁취하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게 뛰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이란 월드컵이 더욱 중요하다 보니, 실제 축구 경기는 더욱 멀어지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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