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 전환배치 제도를 통해 팀을 옮기게 되었다. 내년 1월 1일부로 정식 인사발령이 있을 것이고, 지금은 1:1로 전환 배치될 예정인 담당자와 서로 인수인계 과정에 있다. 좋은 건 퇴사나 일방적으로 한쪽에서 팀 배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1:1로 업무 전환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담당자 간 인수인계가 횔발하게 잘 이뤄진다. 각자 해왔던 업무에 대한 교육과 노하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업무 교환을 해나가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남은 12월 한 달 간에 서로 이런 식으로 인수인계를 해나가면, 내년에 팀을 옮기고부터는 어느 정도 각자가 새로운 업무를 해나가는 데 있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으리라.
내가 새롭게 옮겨 갈 팀은 사실 한 팀의 파트로 존재하던 조직 구성이 팀으로 격상된 신설 팀이다. 향후 회사가 성장하는 방향에 있어서 이 팀이 어느 정도 몫을 해줘야 하는 그런 부담감을 안고 있는 신생 팀이다. 새롭게 이 팀의 팀장을 맡게 된 사람도 젊지만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다. 업무처리가 깔끔하고, 말도 조리 있게 할 말만 딱 하는 스타일이다. 또한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전략적으로 볼 줄 알고, 팀 구성원들을 한 명씩 다독이며 이끌어갈 줄 아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존경할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충분히 멘토로도 삼을만한 인물인 것이다. 나는 전환배치가 확정되기 전 새로운 팀장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로가 생각하는 방향과 앞으로 팀을 이끌어나갈 방향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고, 각자가 모두 부담이 앞서 있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업무 역량 향상과 성공적인 팀의 안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담당자 간 인수인계 과정에 있었다. 하루 2시간씩 예정되어 있는 인수인계를 무사히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기존 업무를 마무리하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띵동'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 지금 팀의 팀장의 메일이다. 이 팀장은 내가 가고 새로운 인원이 오는 것에 탐탁지 않아한다. 현재 내가 소속되어 있는 기존 팀은 이미 업무가 안정화된 상황이다.10년 가까이 역할을 해오던 팀원이 하루아침에 빠져나가고, 다른 일을 해오던 사람이 내가 있던 자리에서 적응하려면 본인도 또 신경 써서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원이 오면 당분간 업무에서 버벅거릴 것이고, 다른 팀원들에게 업무적인 피해가 갈 것이 우려되는 듯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기존 팀의 팀장에게 다음과 같이 메일이 온 것이다.
"우리 팀만 들어올 수 있는 공용 폴더를 만들었으니, 업무 관련된 모든 자료를 하드 카피해서 옮겨 놓길 바랍니다. 그리고 팀원들은 각자 필요한 자료를 다운 받으세요."
이 메일을 받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미 담당자와 서로 업무 자료를 주고받으며 인수인계를 해오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본인의 피해의식만 가득해서 사전에 아무런 양해 없이 나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아무리 회사에서 쌓은 자료라고 하지만 10년 간의 노하우가 담겨 있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은 민낯의 자료들도 상당히 많다. 이 모든 것들을 '하드 카피'라는 절차로 그대로 넘겨주기엔 뭔가 찝찝했다. 나는 이 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기존 팀장에게서 일말의 지원도 받지 않았고, 업무로만 서로를 대할 뿐 그리 친분이 쌓여 있지도 않은 관계였다.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팀이 피해를 봤으니 이 정도는 꼭 해놓고 가라'라는 의무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회사를 퇴사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사무실 같은 층 바로 옆 팀으로 옮겨가는 것임에도 내년부터는 나에게 일절 업무 관련 얘기를 하지 않을 생각인 듯한 행동이었다. 나에게 인수인계받고 있는 담당자도 이 메일을 보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자료들 어차피 설명 듣고 스스로 이해해서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오히려 헷갈리기만 할 텐데 굳이 하드 카피가 필요한가요?"
인수인계 과정에서 전혀 필요 없는 절차임에도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아마도 과거 이력을 찾아보며 실수한 것을 찾아내고 근거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이래서 서로 오해가 쌓이기 전에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함에도, 이 팀장은 본인이 친한 일부 무리들과만 교류할 뿐 나머지 본인 팀에 속한 팀원들에게 조차 소홀히 행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인수인계라는 게 법적인 절차가 없고, 서로 도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후임자가 새로운 일에 조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인데, 제 3자의 과도한 의무와 요구는 나의 호의적 태도를 약화시킬 뿐이야.'
팀을 옮겨도 함께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일할 사람들이고, 기존 팀에 남아 있는 인원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어 나름 최선을 다해 담당자에게 인수인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반응을 해온다면, 나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난 1:1로 전환 배치될 담당자에게만 필요한 자료를 모두 말해주면, 공용 폴더에 올리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기존 팀장에겐 이렇게 메일을 보낼 생각이다.
"하드 카피는 정리되지 않은 자료와 데이터들로 인해 혼란만 가져오는 비효율적인 방식입니다. 이미 시스템 상에 정리된 보고서 형식으로 제 자료들이 업로드되어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것으로 하고, 담당자 간 협의하여 인수인계 과정에서 추가로 필요한 자료에 한해서만 모두 공유폴더에 옮겨 놓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후에도 제가 퇴사를 하는 것도 아니므로, 추가로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시면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인수인계는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에 워낙 불합리한 처사로 일방적 퇴사를 당한 경우라면, 인수인계는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본다. 이렇듯 어떠한 상황에서 내가 팀을 옮기게 되고, 회사를 나가게 되었는지에 따라서 인수인계의 농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즉, 인수인계는 담당자의 직접적인 권한이므로 후임자에게 그 수준과 정도를 조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회사나 팀을 떠나기 전 인수인계 과정에서 호의를 베풀었을 때,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호의를 지닌 사람의 태도를 충분히 바꿔놓을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