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썼을까.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서 어린 시절을 뒤적뒤적 찾아본다. 그래도 까마득해서 그저 추측할 뿐이다. 내 딸이 지금 세 살인데 동그라미를 겨우 그리고 있으니, 아마도 나는 다섯 살쯤이나 되어서야 글씨를 쓸 줄 알았을 테다. 글씨가 모이면 결국 글이 되는데, 유치원 때 그림일기를 썼던 게 처음 글쓰기의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초등학교에 가서야 글로만 구성된 일기를 썼고, 책을 읽고 독후감도 나름 쓰면서 A4 한 장을 글로만 가득 채워 보기도 했다. 글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을 눈으로 보이도록 실체화하는 과정이므로, 어린 시절의 나의 짧은 사고로는 글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점차적으로 나이를 먹어가며 삶을 통해 체험하고, 어떠한 현상에 깊게 고민하고,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들이 누적되면서 내가 쓴 글의 수준이 점차 올라갔다. 그러므로 난 살아온 세월이 글쓰기 실력을 어느 정도는 끌어올려준다고 믿는다.
따라서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다. 글씨를 쓸 수 있고,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면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할 수 있다. 내가 하루 동안 겪었던 일들을 써내려 간다면 일기 형식의 글이 되고, 책이나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쓴다면 감상문 형식의 글이 된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것을 글로 풀어내면 소설이 되고, 어떠한 현상을 보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이렇게 어떠한 형식을 갖추고 쓰느냐의 따라 글의 장르가 달라지지만, 결국엔 우리 모두 이런 모든 종류의 글을 나름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나만 보는 글이 아닌 '보이는 글'을 쓴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주목을 받진 못한다.따라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 위주의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렇게나 편하게 쓰던 글에서 갑작스레 막힘이 찾아온다. 나만 보는 이기적인 글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이타적인 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친한 친구에게 내 얘기만을 늘어놓다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심장 떨리는 상황에 놓이는 것과 같다.
나는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서 고려하는 사항이 몇 가지 있다. 먼저 글의 주제를 내가 잘 알거나, 실제로 체험한 것들 위주로 선정한다. 그래야 글이 자연스러워지고, 독자들이 보기에 내용에 대한 공감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간다면 어디서 들은 내용들 또는 상상 속 이야기들을 풀어서 쓸 수 있겠지만, 이는 진정 '작가'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두 번째로 흥미롭거나 재미있게 쓰기 위해 노력한다. 말도 마찬가지로 같은 내용도 얼마나 몰입해서 들을 수 있게 하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글도 그냥 앞 줄만 읽다가 스윽 넘겨버리거나 스크롤을 내려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내용에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할 필요가 있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해야만 독자를 글 속에 오래 묶어둘 수가 있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내가 쓴 글을 끝까지 온전하게 읽어 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보여주는 글'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주로 쉬운 용어와 짧은 문장을 구사하여 글이 술술 읽히도록 한다. 즉, 독자들이 읽는 즉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다. 내용이 어려운 글은 본인이 그 분야에 깊은 흥미를 느껴야만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글의 구조가 어렵고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글은 억지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소외되는 순간 '보이는 글'은 그저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휴지 조각과 같은 처지가 된다. 그냥 스쳐가는 독자의 발목이라도 잡으려면 결국 쉽게 읽혀야만 한다. 그래야만 허리도 잡고 멱살도 잡을 기회가 생긴다. 그렇게 완전히 사로잡으면 그 독자는 소중한 내 편이 되어준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행위지만, 나만을 위한 글이 된다. 반대로 '보이는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작가들, 수많은 조회수와 공감을 얻은 글들은 독자를 위한 그들만의 노하우가 녹아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사람을 강연가 또는 강사로 부르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 글이 정보성이 뛰어나서든, 공감을 많이 느껴서든, 단순히 웃기고 재미있어서든, 깊은 깨달음을 줘서든 많은 사람들이 글 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다. 나도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길 원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인터넷 인기글 또는 베스트셀러를 찾아 읽고 적용해보려는 일종의 벤치마킹을 하고 있지만, 그런 노하우들이 순식간에 채득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작가는 결코 '아무나'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