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는 평상시 어떠한 일을 할까? 설계자들은 설계 프로그램을 통해 도면을 그리는 일을 주로 할 것이고, 공정 엔지니어는 공장에서 원활한 생산을 위해 설비를 손보는 작업을 할 것이다. 나와 같은 분석 엔지니어는 분석 장비를 다루며 데이터를 해석하는 일을 할 테다. 이런 모든 엔지니어들의 공통점은 기계와 숫자와 기호와 그래프와 친숙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을 숫자 또는 기호와의 전쟁은 대학교를 거치며 골머리를 썩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대학교 시절 초반에는 어느 정도 교수님 수업을 따라가는 듯하다가 잠깐 조는 순간 교수님이 외계어를 하고 있는 경험을 많이 겪었었다. 회사를 취업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내가 배우는 기술과 노하우들로 밥벌이를 하게 된다. 교과 과정에서 배운 이론들을 써먹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어쨌든 다양한 공식들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공대 엔지니어는 점점 로봇처럼 감정이 메말라 간다. 삶의 대부분 깨어있는 시간 동안에 엔지니어로서 일하면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고 설득하는 일보다는 기계와 뚝딱거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분석 설비 앞에서 데이터와 씨름하다 보면 주변에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다.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나면 내가 설비인지 설비가 나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렇게 기계화되고 있는 나를 아내가 보고는 "로봇이랑 사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엔지니어링 회사에서는 이런 직원들의 딱딱함을 해소하고자 인문학 강의와 세미나를 추진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여 새로운 미래 아이디어를 창출하기를 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이런 강연 한, 두 번만으로 채워질 인문학 감성이 아니다. 인문학적인 감성의 중요성을 이제는 누구나가 다 안다. 하지만 이러한 감성을 꾸준히 갖기 위해서 공대 엔지니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메마른 사막에 물방울을 꾸준히 부어 곳곳에 오아시스를 만드는 작업과 같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공대 엔지니어가 꾸준히 인문학적 감성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가장 일반적으로는 영화나 공연을 보며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있다. 문화는 그 문화에 속한 구성원, 즉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삶의 태도와 양식을 배우는 것도 좋겠다. 앞서 말한 것들은 바쁜 회사 생활 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야 하지만 가장 손쉽게 일상생활에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책을 읽는 것이다.인문학적 교양서적을 셀 수 없이 많다. 철학, 역사, 소설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그중에 본인이 흥미가 있는 분야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독서가 인문학적 감성을 채우는데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려면 본인만의 노력이 필요하다. 독서의 중요성을 아무리 사람들에게 말해도 성인 기준으로 일 년에 4.5권 밖에 읽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엔 영상 콘텐츠가 홍수처럼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독서만을 유별나게 강조할 수는 없다. 양질의 영상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인문학적인 감성을 느끼는 데는 가장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 감성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얘기가 되겠다.
인문학 감성의 인풋은 앞서 얘기했듯이 영상 콘텐츠, 영화, 공연, 독서, 사적 모임 등이 있겠다. 그중 나 같은 경우엔 독서가 충분한 사색을 곁들일 수 있어 감성이 가장 오래 지속되는 듯했다. 그래서 지금도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있으며, 메마른 감정에 지속적으로 감성의 물을 뿌리고 있다. 어쨌든 본인만의 지속할 수 있는 인풋이 있다면 인문학적 감성을 느끼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 더 발전적인 방향에서 인문학적인 감성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내 것으로 체화하고 싶다면, 본인만의 글을 써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바쁜 직장 생활 동안에 인문학적인 감성을 쌓는 것도 힘든 데, 거기다 글까지 쓰라고 하니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글쓰기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인문학적 인풋이 들어왔을 때 느낀 바를 상기하여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짧게나마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 보는 것이다. 그 기록이 쌓이면 인문학적 감성에서 느껴왔던 나만의 감성들로 새로운 인문학이 탄생한다. 게다가 이를 잘 엮으면 인문 서적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이 어쩔 수 없이 글보다 숫자와 기호를 많이 보게 되는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인문학적 인풋과 아웃풋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가 일로서 하는 엔지니어링 기술들도 넓은 범위에선 사람을 위한 것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공대 엔지니어가 더 발전적인 성장을 이루고 싶다면, 남들에 비해 메마른 감정에 인문학적 감성을 꾸준히 뿌려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