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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Sep 02. 2022

직장인 10년 차, '물경력'임을 깨달은 순간

직장생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대처법

  나는 한 회사에서만 직장 생활을 쭉 해왔다. 그 경력이 어느새 10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10년의 세월을 알집(ALZIP) 파일 하나로 압축한 듯했다. 신입사원이었을 때 패기 있고 당당하게 건배사를 외쳤었다.  "회사가 있어야 내가 있고, 회사가 발전해야 내가 성장한다!"는 외침을 실천하듯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간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사수로부터 한 번 배운 것을 까먹지 않으려고 수첩에 빼곡히 업무 절차를 적었다. 1년에 수첩 두세 권은 거뜬히 써버렸다. 물론 야근도 밥먹듯이 했다. 그땐 그게 당연한 듯했다. 치열하게 일했고, 그 대가로 나름 팀에서 인정을 받았다. 진급도 했다.


  직장인 6년 차쯤 되었을 때 사수가 다른 팀으로 가버렸다. 본인의 장기적인 꿈을 위해 옮긴 것이라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사수이자 멘토였던 사람, 직장 생활하며 가장 의지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없어지자 나는 당황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이 배로 커졌다. 잠깐 우리 팀과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자면,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 분야의 연구 조직이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는 이 직무가 없는 경우도 많고, 있다고 해도 내부적인 지원 업무의 성격이 강하다. 그중 내 업무는 더욱 세부적인 연구로 추려진다. 그러니 웬만해선 다른 팀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고, 더욱이 다른 회사의 이직 기회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새삼 내 사수가 대단했다고 생각되었다.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이 회사에만 목메어한다는 사실을.


  직장인 6년 차가 넘어가는 순간 부랴부랴 이 물경력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물경력이란 지금까지 직장 생활에서 익힌 노하우와 경력이 사회적인 흐름 상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 그동안 쌓은 역량을 펼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나는 우선 고민했다. 물경력이지만 이 경력도 인정해주는 곳이 있을까? 이직 사이트에서 내 직무와 하나라도 비슷한 공고가 있으면 최대한 이력서를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다른 팀으로 옮긴다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간 15군데 정도 경력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중 14군데 서류에서 탈락, 1군데 면접에서 탈락.


  큰일이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너무 힘든 직무였다. 그 순간 팀 내부에서도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직장인 8년 차 때는 팀장님과의 면담을 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직원의 역량 향상을 위해 팀 내부 업무 순환을 제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금 늦었지만 업무 스펙트럼을 넓혀 놓으면 이직 시장 등 다른 영역에서 기회를 최대한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팀장님 입장에서도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사실 팀에 20여 명의 담당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각자의 업무 영역이 명확히 구분된다. 순환 배치를 하면 담당자들끼리 서로 경쟁도 되고 업무 공백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었다. 팀장님은 나의 주장을 받아들여 제도적으로 업무를 확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셨다. 이후 내 역량은 차츰 넓어질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역량을 넓힌 후 다시 이직 시장에 도전할 생각이다. 이미 경력이 10년이 넘어 이직 시장에서의 몸 값이 높지는 않지만, 빠른 시일 내 물경력을 탈출하여 직장 생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것이다.


  직장인 10년 차. 물경력임을 깨닫는 순간 회사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개인 생활에서도 준비를 해야 했다. 이 회사가 어는 순간에 나를 내쳤을 때 생계를 유지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내가 물경력이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얻은 핵심 역량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10년의 세월을 회상하다 보니 결론을 도출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의 핵심 역량은 '현상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데이터화 하여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 직장에서 얻은 핵심 역량을 어떻게 개인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내 관심사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나는 운동을 꽤 오래 해왔고, 독서와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고 있으니 이 분야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1) 운동과 식단을 통해 내 몸을 분석(혈압, 인바디 등)하고

        이를 기록하여 나만의 깨달음을 공유하기(수익화)

  2) 독서를 통해 얻은 정보를 기록하고 이를 조합하여

        글쓰기를 통한 나만의 창작물 만들기(수익화)


  내가 오랜 시간 걸쳐 고민한 결과가 고작 이정도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미 레드오션 일 수 있다. 아마도 그럴 확률이 더 크다. 하지만 베트도 많이 휘둘러야 홈런을 치듯이 시행착오를 겪고 계속 도전하다 보면 부업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나만의 색깔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내 핵심역량이 되고, 도전에 실패하는 것 또한 내 스토리가 된다. 나는 기회가 왔을 때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진정 '인생의 물경력'이라고 본다. 직장 생활을 통해 본인이 물경력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면(아마도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좌절하지 말고 올바르게 방황하기를 바란다. 또 그 방황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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