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이하여 부부모임을 갖기로 했다. 1박 2일로 평창에서 놀 계획을 세웠다. 숙소도 평창에 있는 펜션으로 미리 예약했다. 세 커플이 함께 가는 여행이므로 최소한 방은 두 개가 있어야 했다. 세 커플 중 유일하게 우리 부부만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우리 가족을 염두에 두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코스로 정했다. 사실 두 커플 중 한 커플은 딩크족이고, 나머지 한 커플은 딩크족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 따라서 우리 모임 중 내 딸만 유일하게 아이였다. 그것도 세 살 난 어린아이였다.
우리 가족은 카시트와 여러 가지 아이 짐으로 인해 차를 끌고 가고, 두 커플은 차 한 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 목적지인 칼국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내 딸이 좋아하는 메뉴였고, 다른 부부들도 간단히 먹기 좋다고 했다. 사실 저녁이 메인이기 때문에 점심을 먹어도 우린 저녁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 골목 어귀에 있는 이 작은 식당은 테이블이 딱 네 개 있었다. 소박하고 예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우리 가족이 먼저 도착해서 식당을 둘러보니, 이미 두 테이블은 자리가 차 있었다. 한 자리에선 할아버지 두 분이서 메밀전과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시고 계셨고, 나머지 한 테이블은 단란한 다섯 식구의 가족 식사 자리였다. 우리 가족은 구석에 남은 테이블로 가서 자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커플이 함께 도착해서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배가 고팠기에 바로 주문을 했다. 식당에 있는 메뉴를 쭉 보고는 메밀전, 감자전, 들깨칼국수, 칼국수 옹심이를 시켰다. 이 부부모임은 5년 정도 유지되고 있다. 1년에 적어도 3번 정도는 모임을 가졌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근한 모임이다. 그래서 가벼운 근황 얘기로도 우린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아이가 말을 잘하기 시작해서 이전엔 이모, 삼촌이라고만 말했었는데, 이번엔 각각 이름을 붙여서 ○○이모, ○○삼촌이라고 소개했다. 아이가 한 번씩 그 이름을 따라 하면서 외우려고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어른 여섯에 아이가 하나이다 보니, 모든 어른이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었고, 우리 부부는 숨통이 좀 트이는 듯했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들이 정갈하게 나왔고, 우리는 무리하지는 않으면서도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을 만큼 맛있게 먹었다.
두 번째 코스는 인형 박물관이었다. 이 또한 고맙게도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잡은 장소 중에 하나였다. 다행인 건 이들 중 '키덜트'성향인 사람들이 있어서 이 장소를 얘기했을 때 반가워했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비 인형부터 시작해서 마블, 스타워즈 피규어 등 꽤 값이 나가 보이는 작품들도 있었다. 아이는 버튼을 누르면 몸이 움직이는 인형을 가장 좋아했고, 어른들은 옛 추억에 빠질 수 있어 꽤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한 30~40여분 가량 둘러보니 모든 전시가 끝나고 기념품 샵에 도달해 있었다. 볼 만했지만 인당 8천 원이란 가격이 조금 비싸게 느껴지긴 했다.
다음은 카페로 가서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 하며 좀 쉬기로 했다. 아이를 위해 고양이와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알아보았다. 급하게 알아본 것치곤 카페 분위기가 꽤 좋았다. 내부는 크리스마스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고,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도 있었다. 테이블은 다섯 개가 전부였지만 전체적인 인테리어가 깔끔하면서도 따뜻했다. 가장 좋았던 건 우리 일행 외엔 손님이 없어서 아이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씩 아르바이트생 표정만 좀 살필 뿐이었다. 알고 보니 고양이와 강아지는 카페 옆 가정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었고, 야외에서만 키우고 있어서 주인 허락을 받고 만져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아이와 잠깐만 보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어른 여섯에 아이가 하나이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아이 사진을 여섯 개의 핸드폰 카메라로 모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카카오톡 채팅방에 실시간으로 업로드되었다. 우리 부부는 그저 사진 모델을 하고 있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숙소에 가기 전 시장과 마트를 들러 필요한 식료품들을 샀다. 여행 오기 전에 미리 메인 메뉴는 각 부부들이 준비해 놓았다. 한 부부는 가리비와 석화와 막창을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받아놓았고, 다른 한 부부는 하이볼을 먹기 위해 1리터짜리 양주 두 병을 마트에서 미리 사놨다. 따라서 이 메인 메뉴를 빛나게 해 줄 것들만 몇 가지 더 사면되었다. 장을 다 보고 숙소에 도착하여 한 팀은 요리를 시작했고, 한 팀은 하이볼 제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 먹을 것을 따로 준비했다. 여러 번 모임을 하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공적인 저녁 식사를 위해 모두가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녁 6시쯤이 되어서야 모든 세팅이 완료되었고, 하이볼 여섯 잔과 뽀로로 음료수 한 잔을 높이 들며 '짠!'을 외칠 수 있었다.
아이는 정말 고맙게도 8시가 채 안되어서, 내 품에서 잠들어버렸다. 어른들 얘기하는 게 재미없기도 했을 테고, 여행의 피로도 쌓여있었을 테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는 우리 부부는 다른 부부들을 보며 외쳤다.
"파티는 이제 시작이야!"
꽤 많은 술과 음식들이 비워지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마음속 얘기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가 있는 부부가 우리가 유일하다 보니,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얘기들이 다뤄졌다. 사실 이런 아이 문제는 어느 정도 친하지 않으면 터놓고 말하기 힘들지만, 우리들은 워낙 편하게 지내왔던 사이라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의견들을 주고받았다. 아이를 낳은 우리 부부는 주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힘든 과정이지만, 이만큼 보람 있는 것도 없어!"
"만약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난 아이를 낳을 거야."
"내 아이라서 그런가 너무 예쁘고,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뭐라도 해주고 싶어!"
아이가 아직 없거나, 아예 딩크를 선언한 두 부부는 대략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태어날 아이가 불행해할까 봐 낳을 자신이 없어..."
"좀 더 사회적으로 아이를 낳은 환경이 갖춰지면, 그때 생각해 보려고!"
"지금 아이가 없는 삶이 너무 좋고, 우리 부모님들처럼 아이를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 않아."
각자 삶의 가치관 속에서 부부 사이에 아이의 유무가 결정되고 있었다. 과거에는 무조건적으로 부부가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부부 사이의 많은 대화를 통해 아이를 갖는 것을 선택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이를 갖거나 갖지 않기로 결정한 생각들은 서로 존중받아야 하고,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부부와 나머지 두 부부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리 술이 취해도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아이가 있는 삶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음을 말해주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아이가 없는 삶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음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8시가 넘은 시간에 전 날 일찍 잠들었던 아이가 우리 부부를 깨우고 있었다. 다른 부부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새벽까지 마신 술로 인해 숙취가 꽤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받치며 아이의 부름에 몸을 일으켰다. '우리 행복한 거 맞지?'라는 눈빛을 오가며 서로 피식거렸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모, 삼촌한테 아침 인사해볼까?"라고 부추겼다. 아이는 신나서 방문을 열고 외쳤다.
"이모 삼촌, 아침이에요! 잘 잤어요?"
이 쾌활한 아이의 말에 나머지 어른들도 억지로 일어났음에도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 아이가 있든 없든 아이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는 모두에게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