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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싸움 말리는 법

"내 딸아, 좀만 더 크면 읽어보렴!"

by 똥이애비

오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빠가 딸의 핸드폰 검색 기록을 우연히 보고 마음이 찢어졌다는 사연의 글을 보았다. 딸의 핸드폰 검색 기록엔 '엄마, 아빠 싸울 때 말리는 법', '엄마, 아빠 이혼'이라는 검색어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면, 나 또한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남녀가 함께 살다 보면 부부싸움은 생길 수밖에 없고, 나도 아이가 말을 못 알아들을 때는 아이 앞에서 싸운 적도 꽤 있다. 지금도 아이가 세 살 뿐이지만 이젠 말귀를 알아듣고 모방을 하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최대한 아이 앞에서는 피하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부부싸움이라는 게 갑자기 감정이 격해져 터져 나오는 것이므로, 아이 앞이지만 참기가 어려운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아마도 누군가 한 번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부모님이 싸웠던 장면들이 뇌리에 박혀있다. 그 어린 시절엔 부모님이 싸우는 게 꽤 충격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아버지께서 IMF로 사업이 무너졌던 날엔 한동안 어머니와 싸운 날이 안 싸운 날보다 많았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나름 풍파를 겪고 나니 우리 세 식구는 더욱 끈끈해졌다. 그래도 최대한 아이 앞에서의 부부싸움은 피하는 게 좋다. 아이에게 엄청난 위축감을 주고, 대인관계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딸에게도 최대한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안 보여줘야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에 어쩌다 한 번쯤 의도치 않게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수도 있을 테다. 만약 그럴 경우 아이가 커서 이 글을 검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대처법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우리 부모님이 지긋지긋하게 싸웠을 때 내가 어린 나이에 겪었던 경험들을 함께 녹였다.


1) 주변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알린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엔 집에 전화기가 한 대씩 있었다. 그리고 전화기 밑 서랍에는 주변에 사는 가까운 친척들이나 이웃들의 집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이 있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어김없이 싸우면, 난 울면서 수첩을 뒤져 가장 가까이 사는 막내 이모네 집에 전화를 했었다. 나중엔 하도 전화해서 전화번호를 외웠었다.


"이모, 빨리 와봐! 엄마, 아빠 또 싸워!"


이 전화를 하는 시늉만으로도 어머니, 아버지는 싸움을 멈춘 적도 있었고, 진짜로 이모가 집으로 찾아올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은 날도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얘기하길 그때의 내가 울면서 전화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쓰렸다고 했다. 그래서 싸움을 멈춰야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지금은 초등학생만 되더라도 본인의 핸드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이 작전을 써볼 수 있다. 부모님이 언성이 높아지며 싸우려고 할 때 핸드폰을 열고 가장 가까운 어른에게 전화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해보자.


"할머니, 엄마 아빠 또 싸워요!"


2) 스스로 자리를 피한다.

가장 쉽고 흔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집이 좁아서 부모님이 싸울 때 아무리 멀리 가도 내 방구석이었다. 거기서 이불까지 뒤집어써야 그나마 싸우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부모님이 싸우면 밖으로 나가버리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PC방이든 친구 집이든 좀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들어가면, 싸늘한 분위기가 집 안에 감돌았다. 어차피 며칠 지나면 풀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싸우는 장면을 보지 않은 것 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밤에 싸우거나, 싸움이 심각해져서 이혼 얘기까지 나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릴 적 우연히 이혼 얘기를 들었을 때 충격은 상당히 컸다. 부모님이 밤에 싸워서 미처 밖으로 나가지 못할 때는 최대한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귀마개 또는 요즘 나오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무선 이어폰도 좋다. 방 문을 굳게 닫아서 안 보이고 안 들린다면, 최소한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을 테다.


3) 녹음하고 들려준다.

내가 어렸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뛰어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아이가 없던 신혼 초에 아내가 나와 싸울 때 핸드폰으로 내 목소리를 녹음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선 아내는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다가, 가 분이 좀 풀린다 싶으면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 소리는 정말 나라도 듣기 싫은 괴성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화를 내거나 부부싸움을 할 때 난 좀 더 말을 가려가면서 하게 되었다. 만약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면,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있을 때 녹음 버튼을 눌러놓자. 그러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최대한 싸우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호기심으로라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싸움이 잦아들었다 싶을 때 핸드폰을 다시 가져와 녹음 파일을 엄마, 아빠 핸드폰으로 전송하고, 내 핸드폰에 있는 녹음 파일은 바로 지운다. 그걸로 할 몫은 충분히 해냈다. 그 이후로는 부모님의 태도 변화만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다.


아이의 관점에서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 말리는 법을 정리하였지만, 결국 어른인 부모의 태도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살아가면서 부부싸움이 없을 순 없지만, 가장 좋은 건 아이 앞에서는 부부싸움을 피하는 것이다. 그게 좀 어렵다면 아이 앞에서만큼은 큰 소리도 조금 낮추고, 막말도 줄이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겠다. 누구보다 소중한 내 아이가 평생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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