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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13. 2023

재택근무가 더 힘든 이유(feat. 육아)

"나 다시 회사로 돌아갈래!"

  코로나19 이후로 회사에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었다. 젠 주기적으로 재택근무 활용이 가능해졌지만, 이 제도를 나는 잘 활용하진 않는다. 그 이유를 차근차근 말해보려 한다. 과거 코로나 유행이 심했을 당시에 재택근무를 꽤 오랜 기간 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처음 재택근무가 도입되었을 당시 회사도 직원도 우왕좌왕했다. 집에서 원격으로 회사 PC와 연결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초기에는 재택근무를 하면 돈 받고 집에서 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다. 쉬는 건 아니고 육아를 전담해야만 했다. 아내는 공무원이지만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한다고 말하면 아내와 장모님은 좋아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도 코로나로 인해 장기간 등원이 불가한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나와 아이만 덩그러니 집에 놓여있었다.


  재택근무 초기엔 어떠한 원칙이나 규칙이 없었기에 집에서 컴퓨터만 켜놓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 지나니까 업무가 쌓이고,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 회사에서도 느낀 듯했다. 재택근무를 도입한 지 몇 주 안되어서, 회사는 재택근무 제도의 기본 규칙을 마련하여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1) 회사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상시 접속해 있을 것

  2) 회사 메일이나 전화가 오면 즉각 대응할 수 있을 것

  3) 재택근무 시 업무 결과를 퇴근 전 메일로 보고할 것


이렇게 회사에서 정한 규칙을 따르려면, 재택근무 시간 동안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워졌다. 당연히 재택근무도 돈 받고 일하는 근무시간이기에 회사에서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정해진 대로 하면 업무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재택근무라고 말하면, 아내와 장모님은 여전히 그냥 내가 집에 있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회사 규칙이 정해진 다음에도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나와 아이는 줄다리기를 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위해서, 아이는 아빠와 놀기 위해서 내 몸을 서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재택근무 제도 정착기에는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아내에게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이젠 예전처럼 재택근무 할 때 아이를 돌보기 힘들어졌어."


아내는 의아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왜? 지난번에는 아이랑 같이 있었잖아."


"그때는 재택근무 초기라서 회사 지침이 없었어. 그래서 아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이젠 계속 PC 앞에서 일해야 해. 화상으로 회의도 참석해야 하고..."


아내는 떨떠름 한 표정이었지만, 어느 정도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엄마한테 말해서 재택근무 하면서 바쁜 일 있거나 회의 있을 때는 집에 와서 잠깐 아이 좀 봐달라고 말할게."


하지만 장모님이 오시는 거라서 심하게 바쁜 날이 아니면, 쉽게 부탁을 하진 못했다. 일이라는 게 예측이 불가능할 때가 많기 때문에 조금 여유 있다고 생각해서 장모님께 와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은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오고 메일이 날아왔다. 그럴 때 나는 아이와 씨름하며 업무 대응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은 타 부서 담당자에게 급하게 전화가 온 날이었다.


"여보세요? 급하게 확인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아이에게 다리를 붙잡힌 채로 난 컴퓨터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전화를 받았다.


"아, 예. 말씀하세요."


답을 하는 와중에 아이는 아빠 다리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소리까지 빼액 질러댔다.  소리를 들었는지 타 부서 담당자가 말했다.


"죄송해요. 집이신 줄 모르고 전화드렸네요."


"아, 아닙니다. 재택근무 중이라서 그래요..."


서로 머쓱한 상황에서 나는 아이에게 조용하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그걸 알아듣고 조용히 본인 장난감 놀이를 하러 자리를 비켜주면 그건 아이가 아니다. 당연히 더 크게 소리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그럼 나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도 못하고, 메일로 보내주시면 바로 답장을 드리겠다고 말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에 나는 나대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가 집에 있으니까 같이 놀고 싶으니,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아내와 장모님은 집에서 일이 되겠냐며, 적당히 일하면서 아이도 돌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다 정 급하면 장모님께서 와주신다고 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만다. 정말 급하고 바쁠 땐 몇 번 장모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만, 적당히 바쁠 땐 장모님 도움을 매번 받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아이와 씨름하며 버텨낸다. 그나마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어린이집 등원이 가능한 날이면 숨통이 트이지만, 이마저도 안 되는 날이면 피가 말리는 순간의 연속이다. 겨우겨우 재택근무 시간이 끝나서 PC를 끄고 한 숨 돌릴라고 치면, 아이는 설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내 손을 끌고 본인 방으로 간다.  나는 아이 손에 이곳저곳 끌려 다니며 속으로 이렇게 다짐한다.


'재택근무 제도가 주기적으로 활성화되어도 나는 그냥 회사로 출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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