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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an 12. 2023

팀장과 팀원의 간극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새로운 팀에서 일하게 된 지 이제 2주 정도 지났다. 물론 지난 연말부터 팀에서 하는 행사나 회의는 대부분 참석하였지만, 공식적인 인사발령 이후 소속이 완전히 변경되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이 팀에서 나는 구성원들 중 중간 정도의 연차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팀장과 팀원들 사이에서의 간극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다.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새롭게 꾸려진 팀의 신임 팀장과 파트에서 팀으로 승격되었지만 본인 위치는 달라진 게 없는 팀원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다른 팀에 있다가 이제 막 들어온 나는 아주 재밌는 장면들을 연출해 낸다. 같은 팀이더라도 개개인이 회사에서 처한 상황에 따라 마음가짐과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늘은 상황 별로 팀장과 팀원의 숨겨진 간극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다른 부문과 협업할 때

  새롭게 꾸려진 팀이다 보니 회사 내부에서도 이 팀에 대 홍보가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도 팀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회의가 잡혔을 때 적극적으로 팀의 성격과 업무를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관점에서 팀장은 각 담당자들을 끌고 다니며,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팀 업무 소개를 하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협업하기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고는 새로운 기회와 팀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살짝 과장되게 얘기한다,


"우리 팀에는 최신식 분석 설비가 있어서, 의뢰만 주시면 언제든 정확한 분석 데이터 도출이 가능합니다."


"팀원들이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라서 문의만 주시면 기술적인 지원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새롭게 진행해야 할 연구 과제가 있고,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담 없이 연락 주세요."


대략 이런 식으로 의 능력과 가능성을 포장한다. 옆에서 듣고 있는 담당자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최신식 분석 설비는 있지만, 정확히 분석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발 담그고 있습니다. 전화하셔서 물어보시면 금방 바닥 드러납니다.'


'제 코가 석자라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러한 담당자의 염세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회의는 아주 좋은 분위기 속에서 흘러간다. 타 부문 같은 경우엔 본인들 일을 덜어주거나, 지원해 주거나, 협업하겠다고 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다른 부문과의 협업의 자리는 팀장에겐 희망으로, 팀원에겐 회의감으로 남게 된다.


추가 업무가 생겼을 때

  앞서 얘기한 회의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팀장이 개인적으로  명함을 뿌리고 다닌 노력의 결실일 수도 있을 텐데, 기존 업무에 덧붙여 새롭게 추가되는 업무가 이곳저곳에서 쏟아진다. 새롭게 팀을 꾸리며 일을 벌여야 하는 팀장의 입장에서는 속으로 웃고 있지만, 겉으로는 팀원들을 다독인다.


"일이 많아져서 어떻게 해? 조금만 고생하면 금방 자리 잡힐 거야. 파이팅!"


팀원들은 기존 업무도 처리 못해서 허덕이고 있는데, 팀장은 자꾸 까치처럼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면서 나뭇가지들을 물어와 둥지를 넓히고 있으니, 나보고 일에 치여 죽으라는 소린가 싶다. 그럼에도 직접 표현하진 못하고 똥 씹은 표정만 할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팀장이 판을 벌이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피해를 받는 팀원이 생기고 혜택을 받는 팀원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존부터 하던 일을 계속하며 추가된 잡일까지도 떠 앉는 경우가 피해자고, 새롭게 팀에 배치된 나나 신입의 경우는 기존 업무가 없기에 새로우면서도 많은 인풋이 들어가는 주요 업무를 맡게 되면서, 새로운 팀 방향에 맞춰 성장할 수 있는 수혜자가 된다. 팀장은 새롭게 일을 벌이면, 피해자와 수혜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고과와 같은 보상을 적절히 분배해야만 할 것이다.


회식할 때

  팀장은 팀이 회식을 하면 단합의 기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실 때도 '나도 마시고, 옆사람도 마시는데 넌 왜 안 마셔?'라는 반강제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팀장은 다 같이 '짠'을 하는 만큼 서로 협력하려는 의지가 다져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게다가 본인이 생각하는 팀의 방향과 각 팀원들의 성장 방향을 반복적으로 일장 연설을 하고 있으니, 팀원들은 잔소리 같은 그의 말을 허공을 바라보며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팀원들은 오랜만의 회식에서 편하게 농담도 주고받으며 즐기고 싶지만, 팀장이 말할수록 분위기는 더욱 진지하고 숙연해져서 함부로 누구도 나서질 못한다. 구석에서는 팀원들끼리 몰래 속닥거리기도 한다.


"야, 빨리 팀장 택시 태워서 집에 보내."


"나도 그러고 싶지... 팀장 몰래 2차 어디 갈래?"


"팀장은 이렇게 회사 얘기만 할 거면, 그냥 회의실에서 

회의하는 게 낫지 않냐?"


"그러게... 맨날 똑같은 얘기 지겨워 죽겠네."


팀장은 술의 힘과 시끌한 회식 분위기를 빌어 이런저런 얘기들로 자연스럽게 팀원들이 좀 더 자신과 발을 맞춰 의기투합하기를 바라지만, 팀원들은 팀장처럼 워커홀릭이고 싶지 않다. 받은 만큼 일하고 남은 시간엔 가족과 보내거나 개인 취미 생활을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다. 애초에 이러한 동상이몽 속에서 회식으로 팀장과 팀원들 간에 서로 의지를 다진다는 게 어불성설인가 싶기도 하다.


팀의 미래를 전망할 때

  팀장은 본인이 새롭게 팀을 꾸리고 있기에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중요한 일을 벌이고 업무를 확장해서 팀원을 늘리면,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위에서 인원은 계속 채워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팀원이 많아지고, 업무 영역을 더욱 넓히면 팀을 두 개로 나누어 실로 승격할 수 있고, 팀장은 실장으로 올라가 임원까지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지만, 나름 비전을 그리고 하나씩 채워나간다는 생각에 들떠있는 듯하다. 하지만 팀원은 이런 팀장의 허황된 미래를 들으며, 이게 단기간에 가능한 일인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본인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되기 시작한다. 물론 팀이 커지는 방향에서 구성원이 성장하고 기회도 많아지는 건 사실이고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것은 맞지만, 얼마나 더 오래 고생을 해야만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고생만 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회사 정책 상 팀이 사라지거나, 팀장이 바뀌게 된다면, 본인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차라리 이런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느니, 현재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 명의 장밋빛 미래와 다수의 흙빛 미래 사이에서 팀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지 심히 궁금해진다.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지만, 팀장과 팀원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특히, 새롭게 팀을 꾸리는 신임 팀장인 경우엔 더 그렇다. 팀의 역할을 과장하고 싶은 팀장과 본인 일 만큼은 축소하고 싶은 팀원 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일을 벌여서 신나는 팀장과  일에 치여서 죽상인 팀원 간의 간극도 있다. 회식에서 단합하려는 팀장과 집에서 쉬고 싶은 팀원 간의 간극이 존재하고,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팀장과 장밋빛 현재를 살고 싶은 팀원 간의 간극도 있다. 이 정도면 팀장과 팀원은 상극인 듯싶지만, 그래도 아이러니하게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굴러가는 게 팀이다. 아마도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확연히 다른 극성이라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 끌어당기는 힘은 팀장이 팀원을 배려하는 마음이 클수록, 팀원이 팀장을 믿는 마음이 클수록 더욱 커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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