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팀장과 1박 2일 국내 출장을 다녀왔다. 새롭게 팀을 꾸리며 공격적인 개발 협력을 위해 관련 기관들을 순회하기로 한 것이다. 목표는 경남지역 기관 세 군데 도장 깨기이다. 한 군데는 창원에 있고, 두 군데는 대구에 있다. 수도권에서 출발하는 우리는 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1박 2일 일정을 꾸린 것이다. 팀을 옮기자마자 신임 팀장과 함께 가는 출장이라 부담이 앞섰다. 일단 출발하기 전에 숙소 예약부터 해야 했다. 첫날은 창원에 갔다가 대구에서 마무리를 할 예정이었으므로, 대구 쪽으로 숙소를 알아보았다. 출장비에 맞춰 숙소를 알아보려면 방 하나짜리로 예약을 해야 했다. 오랜만에 '여기어때' 어플을 열고 숙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숙소는 아래의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어야 했다.
1) 남자 둘이 들어가도 이상하게 비치지 않을 것
2) 방은 하나더라도 트윈 베드일 것
3) 방문할 기관과 가까운 위치일 것
고심 끝에 비즈니스호텔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트윈 베드 숙소로 결정했다. 가격도 합리적이었고, 방문할 기관과도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출장 당일 새벽 6시에 기상했다. 팀장을 태우고 창원에 있는 기관에 오후 1시까지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팀장은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나에게 미안했는지 스타벅스 커피 두 잔을 들고 차에 탔다. 차를 타고 내려가는 4시간 반동안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회사 얘기부터 개인적인 얘기들까지도 다 풀어놨음에도 차는 여전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로 말할 거리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때쯤 나는 음악을 틀었다. 휴게소를 딱 한 번만 들리니, 예상보다는 이른 시간에 창원에 도착했다. 방문할 기관 근처 김치찌개 전문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계란 프라이를 셀프로 무제한 먹을 수 있어서 나름 만족했다.
드디어 첫 번째 기관에 도착하여, 우리가 온 목적을 밝히고 서로 협력하기로 의지를 다졌다. 첫 방문임에도 환영과 조언을 아끼지 않아서 우린 고마워했다. 2시간가량의 미팅을 마치고, 1시간을 더 운전하여 대구에 있는 두 번째 기관에 4시 반정도에 도착했다. 첫 번째 기관도 친절했지만, 이 두 번째 기관은 더욱 친절했다. 기술 협력 의지를 서로 확인하고는 해당 기관 부장이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팀장과 나는 내려오는 차 안에서 대구에 왔으니 뭉티기에 소주 한잔 하자고 미리 얘기를 해놨지만, 기관의 제안에 수긍하기로 했다. 방문한 기관의 부장이 말했다.
"저녁식사 하려는데, 못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팀장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곱창 빼고 다 괜찮습니다. 제가 곱창은 못 먹어서요."
메뉴를 고심하고 있는 기관 담당자와 부장을 보며, 나는 속으로 뭉티기를 외쳤다. 부장이 내 속마음을 읽은 것인지팀장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저녁 식사로 원하던 뭉티기를 먹게 되었다. 당연히 어색한 자리에서는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술과 함께 먹은 쫀득한 뭉티기는 내 입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술을 함께 마시며 기관의 연혁과 과거에 있었던 재미난 일들을 들었다. 우리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서로를 공적인 위치에서 알아가고 있었다. 처음 만난 자리이고 일로 만난 사이이므로, 사적인 얘기는 아무리 술이 들어가도 자제하는 편이었다. 네 명이서 5시 반부터 시작한 저녁 식사 자리는 8시 반이 되어 끝이 났고, 소주 7병과 맥주 3병이 비어 있었다. 얼큰하게 취한 우리는 다시 한번 기관의 환대에 감사 인사를 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생각보다 팀장이 많이 취해 있어서 우리끼리 2차를 가지는 않았다. 나는 대리를 불러 미리 예약한 숙소로 가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결국 9시쯤 숙소에 들어왔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팀장은 바로 취해서 잠들었다. 같은 방에서 자려니 어색할 뻔했는데 미리 뻗어줘서 고마웠다. 나는 짐정리를 좀 하고 팀장이 누워있는 자리 바로 옆에 있는 침대에 누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5시간이 넘는 운전과 처음 본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생활을 했던 게 생각보다 기력을 많이 소진하기도 했고, 술도 어느 정도 알딸딸하게 취하니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누워서 핸드폰을 켠 지 10분도 안되어 잠이 들었고, 그렇게 긴 하루가 끝났다.
눈을 뜨니 아침 7시쯤이 되었다. 9시 반까지 세 번째 기관에 가야 했다. 숙소에서 대략 30분 거리이므로,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팀장을 보니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팀장의 눈은 말똥 했다. 팀장이 일어난 나를 보며 말했다.
"어제 나 사고 친 거 없지? 기관 사람들한테 이상한 말 한 거 있어?"
기억이 흐릿한 모양이었다. 나도 그 심정을 알기에 팀장을 안심시켰다.
"아무 일 없었어요. 되게 젠틀하게 마무리하고, 숙소로 무사히 왔어요."
그제야 팀장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우리는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TV를 틀었다기 보단 방이 비좁아 방음이 잘 안 되었고 화장실이 반투명으로 되어 있기에 볼일 보기가 민망해서 아무 소리나 틀어 놔야 했다. 그렇게 TV로 눈을 돌리며 서로의 민망함을 애써 모른 체했다. 시간이 되어 숙소를 나섰고, 금세 세 번째 기관에 도착했다. 실질적으로 세 번째 기관이 우리가 목적으로 한 개발의 키를 쥐고 있는 기관이었다. 우리는 앞선 기관들보다 더 장황하게 우리와 협력해 주기를 요청했다. 해당 기관의 상무와 담당자는 선뜻 협력의 뜻을 밝혔고, 그렇게 회의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경남 지역의 세 군데 기관을 돌아보니 기술 개발 방향의 윤곽이 보였고, 현실적인 업계 동향을 파악해 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평화로웠고, 우리는 소기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해야 할 과제와 일들도 산더미이지만, 그럼에도 이번 1박 2일 출장은 나름대로 업무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신임 팀장과도 개인적으로 한층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3시간 반 정도 운전하는 동안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술 취해 일찍부터 깊게 잔 것도 있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짬뽕 순두부로 해장한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기관들의 환대와 협력의 의지를 아낌없이 보여준 것이 나를 더 든든하게 했다. 팀장을 중간에 내려드리고, 난 차에서 나오는 음악의 볼륨을 키우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와 실컷 놀아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일찍이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