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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들

"부모의 효율적인 육아를 위해"

by 똥이애비

아이를 30개월 동안 키워 오면서 아이의 주장이 점점 강해지는 걸 느낀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떼를 쓰는 횟수가 많아지는데, 들어줄 수 있는 게 있고 도저히 들어주기 힘든 게 있다. 보통 들어줄 수 있는 것들은 즉각 해결해 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친다. 하지만 도저히 들어주기 힘든 것들, 예를 들어 옷을 안 입는다든지, 양치를 안 하겠다든지, 집에 안 들어가겠다든지 하는 것들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님에도 아이는 계속 떼를 쓴다. 심하면 길바닥에 누워서 울고 불고 할 때도 있는데, 이를 진정시키려면 결국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이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들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늘어놓게 되는 일이 많아지는데, 이러한 거짓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육아가 더욱 수월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은 상황 별로 아이에게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경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진다는 사실부터가 아이에게 하는 선의의 거짓말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벌써 코가 하늘에 닿았을 니 말이다.


밥을 안 먹을 때

아이가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 것부터가 부모 된 입장으로서 큰 걱정 중에 하나이다. 아이를 생각하며 애써 차린 밥상을 아이는 잠깐 깨작대고는 안 먹는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이럴 때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하는데, 거짓말을 해서라도 아이가 한 숟갈이라도 더 먹기를 바란다. 보통은 아이의 이 말부터가 시작이다.


"아, 그만 먹을래. 배불러."


정성껏 차린 밥상을 두, 세 숟갈 밖에 먹지 않았음에도 그만 먹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야속하기만 하다. 분명 밥상을 다 치우고 나면 배고프다며 간식을 달라고 할 게 뻔한데, 밥상이 차려져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먹여야 한다. 그래서 부모는 다음과 같은 거짓말들을 늘어놓는다.


"골고루 많이 먹으면, 아빠처럼 키 크고 힘 세져."


"세 숟갈만 더 먹으면, 아빠가 맛있는 까까 사줄게."


"밥 잘 먹어야지 밖에 나가 놀 수 있는데?"


이렇게 하나씩 거짓말을 하면, 아이가 넘어올 때가 있고 그래도 안 먹는 경우도 있다. 도저히 안 먹을 때는 어쩔 수가 없지만, 아이가 살짝 넘어오는 것 같은 경우엔 거짓말이 더욱 구체화된다.


"봐봐, 시금치 먹으니까 힘 세지는 게 느껴지지?"


아이는 부모의 확신에 찬 질문에 갸우뚱하면서도 주먹을 꽉 쥐며 답한다.


"응, 아빠처럼 힘 세져."


이렇게 거짓말에 넘어오는 순간 세 숟갈 이상은 더 먹일 수가 있다. 그럼 부모로서는 아이의 밥을 잘 챙겨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죄책감이 덜해진다. 실제로 잘 먹었을 때는 아이가 원하는 간식을 주기도 하는데, 보통 배불러해서 잘 먹지 못한다. 그럼 부모로선 성공한 것이다.


어린이집 가기 싫어할 때

아이가 잘 가다가 가끔씩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할 때가 있다. 보통은 내가 회사 연차이거나 휴가일 때 등원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아내나 장모님께서 평소 등원을 하다가 아빠가 집에 있으면 아이는 주말인 줄 알고 어린이집에 안 가는 날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내가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어김없이 아이의 떼가 시작된다.


"나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처음엔 당황했는데, 이젠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준비해 둔 거짓말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이 까까 나눠준대."


"어린이집 안 가면 선생님이 슬퍼하실 거야..."


"오늘 어린이집에서 재밌는 놀이 엄청 많이 한대."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생각하다가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준비해 둔 거짓말을 모두 사용했음에도 아이가 안 간다고 버티는 경우엔 마지막 한방을 준비한다. 나는 옷을 주섬 주섬 입으며, 아이에게 말한다.


"아빠 먼저 어린이집 가 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집에서 아빠랑 놀려고 생각했던 아이는 아빠가 먼저 나가려고 하니까 벌떡 일어나서 자기가 직접 신발부터 신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도 갈래"라고 말한다.


잠을 안 자려고 할 때


아이는 기본적으로 잠을 자면 죽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밤만 되면 안 자려고 버틴다. 9시가 넘어가면 나는 슬슬 잠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일단 목욕부터가 문제다. 아이는 목욕을 하면 자야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애초에 목욕부터 안 하려고 한다. 여러 가지 목욕놀이 장난감으로 꼬시거나, 몸에 보이지 않는 벌레가 있다고 말하면 거의 넘어온다. 목욕을 다 하고 좀 놀다가 보면, 아이가 먼저 말한다.


"나 안 잘래. 더 놀 거야!"


부모가 먼저 말도 안 했는데, 아이가 먼저 저런 얘기를 꺼내는 경우는 좋은 신호다. 왜냐하면 본인이 졸리다는 것을 인지했고 그것에 대해서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나는 빠른 육퇴를 위해 거짓말을 섞기 시작한다.


"토끼랑 곰인형도 졸리대. 우리 같이 침대로 갈까?"


"아빠, 엄마는 졸려서 자러 가야겠다."


"푹 자야지 아빠처럼 쑥쑥 커."


앞서 얘기했지만 아이는 자면 죽는 줄 알기 때문에 이 정도 거짓말로는 잘 넘어가지 않는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지만, 억지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좀 더 잠자는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해 난 아이에게 떡밥을 던진다.


"똥이가 불 끌 수 있어?"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하는 시기라서 본인이 소파 위로 올라가 불을 끈다. 어두컴컴 해졌으니까 어느 정도 분위기는 조성되었고 마지막으로 아빠는 잠자리에 누우면서 아이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아빠 먼저 잘게. 잘 자, 똥이야."


아이는 그럼 울먹이면서 침대로 가며 말한다.


"안녕히 주무 주세요..."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는 아이를 달래며 아이의 말을 고친다.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해야지. 엄마랑 침대에 누워서 책 좀 읽다가 자자 그럼."


아이는 바로 안 잔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기뻐하지만, 침대에 누운 아이는 금세 잠이 들고 만다.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나도 피곤에 지쳐 금방 잠이 든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지만, 그건 들켰을 때 아이가 느낄 배신감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먹으 가자고 하고는 치과 가는 것과 같은 거짓말들이다. 앞서 내가 얘기한 정도의 선의의 거짓말들은 아이가 알게 되어도 크게 배신감 느낄 일이 없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선의의 거짓말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크게 없을 듯싶다. 러므로 이가 말도 안 되는 떼를 쓸 때 부모가 지치지 않기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아이를 돌볼 수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 선의의 거짓말들은 나중에 아이가 커서도 부모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차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니면 거짓말을 당했다는 기억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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