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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본 엄마의 모성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랑"

by 똥이애비

아이를 낳기 전 아내를 보며 마음속으로 걱정했던 게 있었다. 3년의 신혼생활을 하면서 점차 아내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단점이라기 보단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먼저 아내는 나보다 훨씬 잠이 많았다. 평일에도 회사에 지각을 가끔 하는 편이었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늦잠을 잤다. 나는 아무리 오래 자도 9시나 10시면 눈이 떠졌는데, 아내는 깨우지 않으면 12시나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어떻게 한 번에 그리 오래 자는 건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는데, 오후 1시쯤 일어나서 아내가 나에게 한다는 말이 이랬다.


"우리 이제 아침 먹자!"


나는 진작에 혼자 아침 먹고 헬스장에 갔다 와서 밀린 집안일을 하다가 그녀의 뒤늦은 말을 듣고는 어이없어했었다. 늦게 일어나니 집안 일도 항상 밀려 있었는데, 아내는 손이 느려서 하나를 하더라도 오래 붙잡고 차근차근하는 편이었다. 요리를 하더라도 엄청나게 벌리면서 해서 주방이 엉망진창이었다. 주말에 늦잠 자고 아내가 말하는 아침이라고 하는 점심을 해 먹고, 전쟁 난 주방을 치우고, 집안일을 좀 하다 보면, 어느새 또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아까운 주말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에 난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내가 좀 더 일찍 일어나 빠릿빠릿 움직이며 집안일을 함께 나눠서 미리 끝내놓고, 남은 시간에 나와 생산적인 취미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내는 체력도 약했다. 아내가 살아가는 동안 숨쉬기 운동 외에 제대로 된 운동을 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여자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내가 몇 번 억지로 헬스장에 끌고 간 적이 있었는데, 2킬로 핑크 덤벨을 들고서도 아내의 앙상한 팔이 바들바들 떨리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어댔었다. 이렇게 아내가 체력도 약하고 근력도 거의 없어서 아이를 낳는 것도 그렇고 안아주는 것 또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내가 덤벙대는 것도 걱정이었다. 지하철을 타면 반대로 타거나 핸드폰을 하다가 몇 정거장을 지나쳐서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함께 나가면 그렇게 끼고 살던 핸드폰을 집에 놓고 오기 일쑤였고, 식당이나 술집에 핸드폰을 놓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간 적도 꽤 많았다. 또한 아내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야 까먹지 않는 듯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그녀에게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가끔 아내가 멍하니 나를 보며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뭐 하려고 했더라?"


아내가 집안일을 하던 중간에 내가 말을 걸어서 그 얘기를 듣느라고 하던 일을 멈췄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정신이 들고서는 내게 묻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회사에서도 이러느냐며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내는 그럼 회사에선 되도록 하나씩 차근차근하니까 괜찮다고 말했지만, 회사 일이란 게 하나씩 떨어지는 게 아니므로 난 심히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3년의 신혼생활 후 아이를 낳아 3년째 키워오고 있다. 신혼생활동안 아내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이를 지금껏 키워온 아내의 모습을 보고선 단지 나만의 기우였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내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육아를 잘 해내고 있었고, 오히려 내가 아내를 통해 배우는 게 많았다. 잠이 많던 아내는 아이가 신생아 때 2시간에 한 번씩 수유하는 것도 바로바로 일어나서 해냈다. 게다가 아이가 새벽에 우는 소리를 들으면 즉각 일어나 나보다 먼저 아이를 돌보았다. 신혼 때 핸드폰 알람을 세, 네 번 연속으로 맞춰도 잘 못 일어나던 아내가 아이 울음소리에는 즉각 반응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4.3킬로로 아주 튼실하게 나왔다. 다른 신생아보다 훨씬 큰 상태였는데, 아내는 아이를 꽤 오래 안을 수 있었다. 아이를 안고 오랜 시간 모유 수유를 하다가 어깻죽지와 목덜미에 담이 와서 정형외과에 간 적도 있었다. 체력이 좋지 않은 아내였지만, 아이를 안고 수유하고 재울 때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아이를 챙기는 것에 있어서도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아이와 외출을 할 때면 본인 핸드폰도 잘 간수하지 못했던 때와는 달리 아이의 이유식, 숟가락, 빨대컵, 간식, 기저귀, 손수건, 물티슈, 애착인형까지 하나도 놓치는 것 없이 가방 하나에 필요한 건 다 챙겨 넣었다. 요즘은 어린이집 준비물도 나보다 훨씬 잘 챙긴다. 아내는 선생님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꼬박꼬박 문자를 보내며,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는 역할도 해낸다. 이렇게 사사로운 것들은 모두 아내가 미리 준비하고 챙겨 놓기에 나는 그저 아이와 맘 편히 놀아주기만 할 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3년과 신혼생활의 3년의 아내 모습은 너무나 큰 격차가 있었기에 나는 그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 무엇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우리 딸 덕분이었다. 엄마로서의 아내는 아이를 향한 모성애가 가득해서 30년이 넘게 가져온 본인의 성향과 습관까지도 순식간에 바꿔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신혼생활 3년 동안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털 끝만큼도 바뀌지 않았던 것들이 말이다.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건가 싶어 속은 기분도 들긴 했지만, 그만큼 아내의 모성애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걸 짐작하게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는 또 어떠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도 나의 육아 생활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지금까지 본 아내의 모성애는 아빠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고, 아내가 있기에 아이가 더욱 생기 있게 커가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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