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이제 꽉 채워서 네 살이 되어간다. 이 번 6월 달로 넘어오면서 태어난 지 35개월이 되었고, 이젠 더 이상 개월 수로 따지는 게 의미가 크게 없어 보인다.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 보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가 점차 더 익숙해지고 있다. 개월 수로 따지지 않다 보니까 아이가 더 빨리 자라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인 것일까. 미운 네 살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이가 밉다기 보단 신기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어떻게 이런 조그만 아이가 나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할 수 있지? 나름 운동도 꾸준히 해왔는데도 말이야. 참 신기해.'
아이의 체력은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인이 방방이를 10분 이상 연속으로 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아이는 키즈카페 가면 방방이는 물론이고 한 시간 반동안 쉴 틈 없이 뛰어다닌다. 체력뿐만 아니라 아이가 네 살이 되니 점차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있는 것도 나에겐 꽤나 신기한 일이다. 정말 애기일 땐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의 먹고 자고 싸는 활동을 전적으로 부모가 도맡아서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가 혼자 숟가락을 잡고 젓가락질에 관심을 보여서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더불어 시간이 좀 지나자 혼자 볼일을 보고 손을 씻기까지 했다. 더 이상 기저귀는 필요 없다며 기저귀와 작별 인사를 했고,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유아용 변기에 '쉬야'를 하고 다시 침대로 올라와 잠을 청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자기만의 주장도 강해지고 있다. 이러니까 미운 네 살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긴 한데, 내가 모르고 습관적으로 과자 봉지를 뜯어서 아이에게 건네어 주면 아이는 방방 뛰며 오열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뜯으려고 했는데, 왜 아빠가 뜯었어?!"
아이는 나에게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싶다. 이와 연계하여 아이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할 수 있는데, 왜 아기는 못해요?"
아이는 스스로 밥 먹고, 양치하고, TV를 끄고, 침대에 올라가는 것과 같이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인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흐뭇하게 보며 답한다.
"아기는 아기라서 못하고, 똥이는 언니라서 할 수 있지!"
그럼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똑같은 행동을 몇 번이고 스스로 반복한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이런 게 아이를 키우는 재미라고 할까.
지난주에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네 발 자전거를 사주기로 했다. 생일보다 한 달 이르지만, 지금부터 사줘야 날씨가 좋을 때 바깥에서 자주 아이를 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똥이야, 생일 선물로 이 자전거 사주는 거야"
한 달 뒤 아이의 생일이 되면 아이가 또 선물을 찾을까 봐 미리 신신당부하며 얘기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이미 삐까뻔쩍한 새 자전거에 쏠려있었다.아이가 빨리 타고 싶어 해서 자전거를 사자마자 근처 공원에 넓은 공터로 갔다. 아이는 안장에 앉아 페달을 굴리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굴리는 것을 몰라서 역방향으로 굴리며 왜 안 가냐고 물었다. 나는 손으로 페달과 아이 발을 함께 누르며 정방향으로 굴려주었다. 앞으로 나아가도록 감을 익혀주기 위해서였다. 꽤 오랜 시간 태워봤지만, 잡아주고 끌어주느라 내 체력이 거의 고갈되어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루 만에 페달을 밟는 감을 찾는 것은 아이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듯싶었다.
다음 날 퇴근을 하고 집에 가니, 아이가 나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아빠와 자전거 타러 가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의 그 간절한 눈을 보고 있으면,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은 눈 녹듯 사라진다. 아이와 함께 집 앞 놀이터 근처 공터에서 자전거 연습을 했다.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으로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너무나 빨리 네 발 자전거에 적응해서 나와 멀어지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우면서도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정말로 순식간에 아이는 할 줄 아는 게 하나 또 늘어버렸다. 언젠가 한 번 TV 육아 프로그램에서 아이가 빨리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한 것을 보았을 때 힘들어 죽겠는데 빨리 키우고 쉬어야지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인터뷰처럼 아이가 조금은 천천히 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